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다. 하나둘씩 꽃이 피고 구름 한 점 없이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면 기분이 좋아진다.
무슨 변덕인지 평소에 나를 짓누르던 피곤함이 싹 사라지고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 놀고 싶어 진다. 이런 날에 집에 그냥 있는 것이 미안해서일까? 조그마한 손을 잡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집 근처의 놀이터로 향한다.
놀이터에 가면 아이는 친한 친구가 있나 주변을 살핀다. 아마 오늘은 친한 친구가 없었나 보다. 놀이터에 가면서도 친구들 누구누구 왔을까 얘기하면서 갔는데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애써 담담한 척 하지만 그래도 실망한 모습이 얼굴에 선하다. 나한테 다시 오는 모습을 보며 아는 친구가 없니라고 물었다.
"괜찮아 혼자 놀면 되지"
예전에는 이 말을 들을 때면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잠시 후 같은 유치원 친구도 아빠 손을 잡고 왔다. 놀이터에 아이를 데리고 온 아빠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동지애(?)가 생긴다. 서로 이름을 부르며 손을 잡고 방방 뛰는 모습을 보니 덩다라 나도 안심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유치원에서 매일 보는 친구인데도 저렇게나 반가울까 싶다.
이렇게 우리 아이처럼 친구와 같이 노는 아이들도 있지만 엄마 아빠와 놀거나 혼자 노는 아이들도 많다. 그중에서는 신나게 노는 우리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때면 우리 아이를 살포시 불러서 저기 있는 친구는 혼자 왔나 봐 같이 놀아보는 건 어떨까?라고 물어본다. 잠깐 생각하다 "좋아!" 하고 달려가서 "우리 같이 놀래?"라고 물어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같이 놀자며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다 같이 온 엄마 아빠를 제쳐두고 같이 신나게 놀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도 그렇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같이 놀 수 있는 또래 친구가 최고인 것 같다. 그럼에도 낯을 가리는 몇몇 아이들은 같이 노는 것을 거절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이한테 물어본 내가 더 머쓱하지만 아이는 웃으며 같이 놀기 싫대 하면서 달려온다. 그러고는 다른 친구랑 놀기 위해 다시 뛰어간다.
놀이터는 부모에게 엄청난 시련의 장소다
정말 혹독한 곳이다.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상처받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처음에는 놀이터에 가면 또래 친구들과 알아서 잘 놀 줄 알았다. 근데 또래 친구들은 있어도 전부 처음 보는 친구들이었다. 아이와 놀이터에 갔는데 친구가 매번 있을 수는 없다. 특히나 아빠들끼리는 약속하고 가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친구들이 없는 경우도 태반이다.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만큼이나 나도 무척 긴장했다. 다 아는 친구들끼리 놀고 우리 아이만 덩그러니 혼자였다. 처음에는 나랑 놀다가 무리를 지어 신나게 노는 친구들을 보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다. 그때마다 "친구들하고 놀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같이 놀자고 얘기해봐"라고 쉽게 내던졌다. 말은 참 쉽다. 다른 친구들이 먼저 같이 놀자고 하면 좋겠지만 그랬던 적은 거의 없었다. 아이는 두려워서 내 손을 꼭 잡고 있다가 용기를 내서 말을 건다.
"같이 놀기 싫대..."
아이가 안쓰러웠다. 도대체 왜 같이 안 논다 하는 걸까? 사람 많으면 더 재밌는 거 아냐? 거절한 아이가 밉기도 하고 괜스레 더 크게 "아빠랑 재밌게 놀면 되지!!"라고 외쳤다. 아이가 상처받는 것이 두려웠다. 아이는 그 아이들이 노는 것을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 온 다른 친구에게 한 번 더 용기를 내었고 이번에는 같이 놀기에 성공했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이런 경우만 있으면 좋겠지만 하루 종일 거절당할 때도 있었다. 안쓰러웠다. 그렇게 집에 올 때마다 오늘 친구들이 안 놀아줘서 기분이 어땠는지 물어봤다.
"속상했어"
그럴 때마다 "속상했구나 상처받지 않아도 돼. 다른 친구들도 많잖아"라고 말해줬다. 항상 아이가 같이 놀자고 물어볼 때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가 정말 대견했다. 어른들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쉽지 않은데 아이는 자기와 같이 놀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매번 그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상처받고 아물고 또다시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같이 아팠다. 그럼에도 아이도 지켜보는 나도 용기를 냈다. 상처받고 아물기를 반복하는 그 과정 동안 부모인 나는 지켜보면서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기다려줘야만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봐 주었다. 아이가 상처받을 때면 항상 기댈 수 있는 아빠가 있다는 것과 아이를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도 많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쉽지 않았다. 혹시나 아이가 좌절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인간관계를 두려워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아이는 점점 단단해져 갔다. 또다시 거절당한 어느 날 다시 한번 기분이 어땠는지 물었다.
"괜찮아 다른 친구랑 놀면 되지 나 친한 친구도 많아"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자라 있었다.
항상 아빠가 여기 있을게
나는 우리 아이에게 함께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고 싶었다. 놀이터는 작은 공간이지만 그 울타리 속에서 아이뿐만 아니라 나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이에게 쉽지 않은 것은 어른도 쉽지 않다. 항상 혼자 있는 아이가 있으면 먼저 다가가는 것을 알려주고 친구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는 법을 알려주고 상처받아도 이겨낼 수 있도록 꼭 안아준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나도 내 주위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와 같이 나도 조금 더 성숙해짐을 느꼈다.
"아빠 이제 저기 앉아 있어 나 친구랑 놀 거야"
이제는 내가 붙어있지 않아도 될 만큼 씩씩한 아이가 된 것 같다. 처음에는 아이가 상처받는 모든 상황이 두려웠지만 놀이터에서 처럼 언제나 옆에서 내가 붙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아이가 커갈수록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서야 하지 않을까? 홀로 서있는 아이가 안쓰럽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상처를 받는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뒤로 물러서려 한다.
"엄마 아빠 저기 앉아 있을게"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걱정하지 말고 놀다 와 여기서 계속 기다릴게"
어떤 어려움에서도 아빠가 항상 너와 함께 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느끼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