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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넬 Aug 14. 2024

현상수배

요즘 날씨가 더워 창문을 자주 열어두는데, 작은 날벌레들이 자꾸만 방충망 사이로 들어왔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좀 더 촘촘한 미세벌레 방충망이 있길래 교체하기로 했다. 


숨고에 올려놓고 견적을 받아 비슷한 최저가 중에 기왕이면 가까운 곳에 계신 고수를 모시기로 했다. 

몇 번 생각해도 숨고 가 참 네이밍을 잘한 것 같다. 

파트너, 전문가, 프로, 협력업체라는 호칭보다 '고수'라는 칭호가 전문성과 존중, 친근함을 동시에 담는 호칭인 것 같다. 



약속시간에 딱 맞춰 벨을 누르고, 미소를 지으며 방문한 고수는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분이었다. 

방충망을 모두 떼어내 주차장이나 옥상 같은 곳에서 작업한 후 다시 창틀에 끼우는데,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 외부에서 작업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시원한 물과 음료수를 준비해 드렸다.

 

두어 시간이 지난 뒤, 교체를 마친 방충망을 집 안으로 들이고 마감 작업을 하는데, 곳곳의 물받이 구멍과 아래위 틈새까지 꼼꼼하게 메운 뒤 주의사항까지 설명해 주는 고수의 모습이 썩 야무지고 신뢰가 갔다. 



그런데 몇 시간 후 밖에 나가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건물 입구에 종량제봉투가 반쯤 터진 상태로, 방충망 쪼가리와 부자재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고, 내가 드린 물과 음료수 병도 그 근처에 있었다. 

아무리 봐도 우리 집에 방문했던 고수의 흔적인데, 그렇게 꼼꼼하고 성실한 분이 뒷정리를 이렇게 날림으로 하고 갔다고?

분노보다는 의아한 마음이 들어 고수에게 전화를 해보니, 본인도 매우 놀라면서 종량제봉투에 넣어서 제대로 묶어놨고 이럴 리 없는데, 아무튼 어질러져 있으니 지금 당장 와서 치우겠다고 한다. 


알고 보니 윗동네에 고물수집하는 아줌마가 동네를 헤집고 다니면서 쓰레기봉투를 찢고 본인 필요한 것만 빼가고 수습도 안 해둔 채 난장판을 만들어두고 가는 것이었다. 



범인을 잡아서 조치하는 건 나중의 일이고, 고마웠던 분이 그대로 고마웠던 분으로 남아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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