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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넬 Aug 28. 2024

나는 네가 밉지 않다

아침 출근길의 버스는 항상 북적거린다.


정류장에서 멀찌감치 선 버스를 열심히 달려가 탔더니 맨 뒤에 한 자리 앉을자리가 보인다.

휴 다행이다, 지하철 타기 전 십여 분을 버스 안에서 편하게 가겠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승객들이 계속 타고 버스가 출발하며 조금 복작거린다 싶을 때쯤

네댓 자리 앞에 임산부 배지를 단 여성 분이 눈에 띄었다.

멀리서도 핑크색 임산부 배지가 보일 정도였으니 가까이에서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모두가 피곤한 출근길에 선뜻 자리를 양보하는 이는 없었다.

저마다 자신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게임이나 SNS 따위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쩌면 눈앞에 선 임산부를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리라.



내가 앉은 맨 뒷자리는 많이 흔들리기도 하고, 급정거하면 위험하기도 하니 이 자리에 앉으시라고 양보해야 하나, 바로 앞의 다른 분들이 양보하지는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나에겐 너무 길고 초조했다.

더 고민하다가는 나까지 임산부의 어려움을 방관하는 이들 중 한 명이 되고 마는 것만 같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50m쯤 이동했을 때가 돼서야 나는 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분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 맨 뒷자리이긴 한데, 괜찮으시면 여기라도 앉으시겠어요?"


그러자 그분은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하고 내 제안을 사양했다.

별로 반갑거나, 환영하는 기색이 아니라 그저 당황스럽고 대화를 얼른 끝내고 싶은 기색이었다.


차라리 그냥 자리를 비워놓고 일어날 걸 그랬나 싶었다.

머쓱하게 맨 뒷자리로 돌아가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앉았고,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조용한 버스에서 나와 그분의 대화는 주변에 분명히 울렸을 텐데, 본인의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전히 필사적으로 본인 휴대폰에만 몰두한 척하고 있었다.


지하철 역에 도착해서 그분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함께 훈훈한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 사람들이 밉지는 않다.




누가 부탁하지 않더라도 손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생각이다.

그리고 멋진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것 또한 내 목표일 뿐이다.

그냥 제 한 몸 편하고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사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들이 틀린 것이 아니며 그래도 피해는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어딘가, 대견하기도 하다.

이 세상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그래서 어쩔 건데 라는 마음으로 사는 이들도 흔하니까 말이다.



예전의 나를 돌아보면, 참으로 자주 분노하고 화를 내던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라면 버스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소리를 치며 화를 냈을 것이다.


난 왜 그리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이 싫었을까?

그러지 말아야 한다며 주변 이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라고 강요했을까?


돌아보니 그 이유는 나 자신의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서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도 편하고 싶고, 나도 이득을 봤으면 좋겠다는 유혹에 흔들렸기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고, 분노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던 게 아닐까?




대학 때 친하게 지냈던 후배 하나가 농담처럼 나에게 형은 착한 거 빼고 뭐 있냐는 말을 했었다.

그냥 애매하게 웃고 넘어갔지만 당시 나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고, 결국 그 후배를 멀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이라면 당장 받아쳤을 것이다.


"그럼 너는 뭐 없는 애가 뭘 믿고 착하지도 않냐?"



나와 같지 않은 이를 미워할 필요 없다.

누군가 알아주기를 기대할 필요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사람으로 사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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