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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크무슈 Jun 11. 2022

아이슬란드 - 동행자들과 첫날밤

(25) 아이슬란드 - 동행자들과 첫날밤


낯선 사람들이 모여 한 차에 탑승해 레이캬비크 시내를 내달리고 있다. 서로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공항에서의 첫인상과 첫인사가 그다지 강렬하지 못했던 탓인지 여전히 어색했으나,

그럼에도 이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바쁘게 움직이며 조잘거린다.


알고 보니 둘은 이미 친구였고, 또 일전 온라인으로 동행자를 구해 여행한 경험이 있는 듯했다.

비온 뒤 레이캬비크 시내


청사에서 유심이다 뭐다 이것저것 구매하느라 제대로 얼굴을 익히지 못했다. 나도 렌터카 업체에 전화해 픽업 서비스를 요청하고 보험약관을 확인하느라 허둥거렸다.


사실 아이슬란드 여행 계획의 대부분을 이 친구 둘이서 짜 놓은 상태라, 무임승차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나름 바삐 움직였다. 이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했어야 할 텐데.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길 바란다.



우리가 열흘간 함께할 차량에 탑승하니(밀폐된 공간에 자리를 붙여 앉으니) 그제야 얼굴을 보며 통성명을 하게 됐다. 이름, 나이, 고향 따위를 묻고 나면 할 말이 없다. 겨우 대화 거리를 짜낸 다는 것이 운전 이야기, 날씨 이야기, 사실 그날 밤 차 안에서 나눈 대화의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는다.


궂은 날씨에 심각한 운전자들과 해맑은 씨리양, 그리고 여전히 준비 중인 막내군.


그럼에도 우리는 열흘 가까이 함께 여행길에 올라야 한다.


인생의 1/3여를 살아오면서 개인적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인복이 많다'인데,

어색함을 이겨내려 대화를 즙짜듯 짜내면서도, 이 친구들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에는 의심이 없었다.


듬직하면서 장난기도 다분할 것 같은 또래 남자 친구 송 군,

함께 온 곰살스러운 홍일점, 씨리 양.


우리 셋 말고도 오스트리아에서 합류한 열 살 차이가 나는 막내 군이 있는데,  하루 일찍 입국한 관계로 예약한 숙소에 먼저 체크인하기로 했다.




레이캬비크 시내는 꽤 차분한 분위기였다.

하필 적당히 눈이 쌓인 덕분에 북유럽 감성을 파노라마로 느끼며 숙소 근처로 미끄러져 갔다.

눈 내린 숙소 창밖


숙소를 찾으니 막내 군이 문을 열어준다.

뽀얗고 순둥순둥 한 것이 또 숨김이 없어, 어쩜 이렇게 좋은 사람들만 모였을까 다시금 생각나게 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첫 번째 숙소는 돌아와서야 알게 되었지만 ‘꽃보다 청춘’에 나왔던 아파트먼트라고 했다.

걸을 때마다 페브릭 재질의 바닥재가 사각사각하는 느낌이 생생히 기억난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눈 오는 레이캬비크는 곧 함께할 저녁식사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참을 수 없어 맥주 몇 병을 창 밖에 꺼내 두었다.

극풍을 한껏 품어 목젖을 시원하게 씻어 내리길 바라며.




함께 장을 보고, 저녁을 차린다. 다들 뜨거운 물에 한 차례 피로를 씻어내고 마주 앉으니 그제야 실감이 나는지 배시시 한다.

전혀 인연이 닿을 이유가 없었던 사람들이 각자의 시공간에서 날아와 한 곳에 모였다.



마주 앉아 건배를 한다. 반가움으로 어색함을 묻어본다. 앞으로의 여행을 기대하며 잔을 비운다.


파릇파릇한 막내 덕분에 평균 연령이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가 30년 정도의 분량으로 쌓여 있다. 다음 날의 계획이고 뭐고, 우선 먹고 마시며 서로를 알아가는데 집중했다.


송 군은 근엄해 보이려 하지만 즐길 때는 아주 놓을 줄 안다. 그 덕분에 주변 인사 중에서는 꽤나 인기가 있어 보인다.


요거트를 야무지게 먹는 송군과 나


씨리 양은 똑 부러지는 것이, 줄곧 그렇게 살아왔음이 느껴진다. 건강하고 쾌활하며, 에너지가 느껴진다. 여행 중 식단을 꼼꼼히 챙겨주었다.


곰살맞은 씨리양과 나


막내 군은 오스트리아에서 유학 중에 합류한 수재다. 언젠가는 대단한 석학이나 연구원이 되어있지 않을까.

막내 군은 우리가 쫓아다니며 챙겨야 했다. 그 덕에 재미있었다.


언제였던가, 막내 군이 쓰레기 봉지를 우비랍시고 쓰고 나온 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막내군과 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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