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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Ju Aug 07. 2022

휴가철 여행기 Prologue : 독일인들에게 휴가란?

한국 vs 독일, 여름휴가를 보내는 방식에 대한 고찰

유럽 5개국 10일 여행, 지금 당장 네이버 창에 '유럽 패키지여행'을 써넣으면 그와 같은 제목으로 관련 사이트가 수십 개 줄지어 뜬다. 예전에 비해 많이 유럽 패치화 된 지금, 그런 여행은 상상만 해도 기운이 다 빨릴 정도로 피곤하게 느껴지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유라시아 대륙 저 끝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수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사는 사람이 유럽 여행을 한 번 떠나려면 비행기를 타고 십 수 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그를 위한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도록, 우리는 유럽에 머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거쳐 지나가는 모든 유명 관광지에 발도장을 찍고 국경을 하루에 두 개 정도씩은 기꺼이 넘어준다.



오래전 아직 한국에 살던 시절, '여행'은 내 머릿속에도 바쁘고 정신없는 모습으로 연상됐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일단 한국인들의 여행에서는 쉬러 온 건지 공부하러 온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일단 그곳만은 완벽하게 섭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국내여행이나 가까운 중국, 일본 여행을 하는 방식만 보아도 느껴진다. 새벽 여섯 시에 기상해 씻고 꼭 조식을 챙겨 먹는 것으로 그날의 여행 일과가 시작되니까(잠이 많은 나는 어린아이 시절, 잠자는 나를 조식을 먹으러 가자며 깨우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러니 토종 한국인인 내가 촘촘한 일정의 여행을 떠올리는 건 당연한 거였다.


요즘에야 제주도, 혹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소도시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이라고 하지만, 내가 한국에 살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그게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니다) 제주도 여행은 당일치기나 길어야 주말을 껴서 3박 4일로 다녀오는 곳이었다. 지금도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국내여행'이 의미하는 바에 '일주일 이상 가만히 눌러앉아 느긋하게 쉬다 오는 것' 보다는 '최대 3박 4일 동안 쉬면서 동시에 둘러보고 올 곳은 다 보고 오는 것'이 더 가깝다.


세계 GDP 순위 불변의 4위, 유럽에서는 1위 자리를 뺏기지 않는 독일이지만, 의외로 독일인들은 사치품에 관심이 크지 않다. 사람 나름이라고 한다면 별달리 할 말이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년 정도 전쯤에나 입었을 것 같은 옷들이 길거리 상점들에 널려있을 만큼 독일인들이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건 독일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사실이다. 덕분에 독일에서 산지 꽤 되었으면서도 독일이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친구가 '아니, 그러면 이 사람들은 돈을 대체 어디다가 쓰는 거야?'라며 화들짝 놀라는 일도 있었다.


'독일인들은 휴가를 가기 위해 돈을 번다'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에도 수많은 국가들이 있기 때문에 이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을 통틀어 '유럽인'이라고 뭉뚱그린 채 '유럽인들은 다 이래'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유럽인들은 '(여름) 휴가'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여기서의 '휴가'는 한국에서 흔히 떠올리는 '휴가철에 떠나는 여행'과는 결이 다르다.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 달 동안 자기 자신이 정의하는 '휴식'을 진정으로 취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 방식도 다양하다.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떠나는 배낭여행부터 캠핑카를 직접 끌고 수백 킬로를 이동하는 원거리 여행까지. 유럽 전체를 모두 돌아보고 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호수나 바다 앞에 자리를 잡고 하루 종일 물과 육지를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다수다. 한국에서 나고자란 나에게는 이런 시간을 한 해 정도는 건너뛰어도 그다음 일 년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유럽인들에게는 다음 여름까지 한 해를 위한 일 년 치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으로 결코 건너뛸 수 없는 '연례행사'다.



한국인들이 정의하는 휴가철 여행과 유럽인들이 정의하는 그것은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중 무엇이 옳고 른지 따질 수는 없다. 솔직히 대한민국은 북한으로 인해 한반도 끝에 고립되어있으니, 지리적으로 섬과 다를  없지 않은가. 해외로 나가기 위해 무조건 배나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  해외로 진출하는데 진입장벽이  크다는 뜻이다.  같아도 돈과 시간을 들여  멀리   떠날  뽕을 뽑고자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라도 최대한 많은 것을 눈에 담기 위한 여행을  거다. 그리고 휴가에 대한 문화적 인식과 그를 위한 제도 차이도 분명히 있다.  함께  여름휴가를 즐기는 분위기의 유럽인들은   동안 휴가를 낸다고 해도 적어도 눈치가 보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한국과 유럽의 '여름철 휴가를 보내는 방식' 중 어떤 것이 낫다고 결론 내릴 생각이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이번 8월 말, 2주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독일인들과 이탈리아로 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그리고 그 여행기를 네이버 블로그가 아니라 이곳 브런치에 작성할 예정이다. 이 글은 앞으로 이곳에 올라올 여행기의 첫 번째 편이자 빌드업일 뿐이며, 이탈리아로 2주 동안이나 떠나게 된 이유, 그리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방식에 대한 사전 설명이다.


지난 삼 개월 동안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바쁜 시간을 보냈다. '독일 유학 일기'를 몇 편만 올려놓고 거의 반년 동안 사라졌던 이유다. 한국에서는 블로그에라도 글을 꾸준히 올릴 수 있었지만, 독일로 돌아오고 나서는 네이버 블로그에 조차 손을 댈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여름휴가를 떠나 나의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조금 둠으로써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다면, '독일인들과 함께 보내는 여행'을 더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아 주말을 맞이하여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게 됐다.


아직 여행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천천히 들고 오겠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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