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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Sep 10. 2022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

미국에 엄마와 동생이 다녀 갔다

학사 과정 4년에 석사 과정 1년.


내가 학생 신분이던 5년 간 우리 가족은 한 번도 미국에 와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미국 여행은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나도 섣불리 가족들을 초대할 수 없었고, 가족들 입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번의 졸업식 모두 내 부모님과 동생의 자리는 친구들이 대신 채워주었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매력에 혼자만 흠뻑 빠져 지내는 게 죄송스러워 졸업을 하고 돈벌이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바로 엄마부터 초대했다. 비록 짧은 일주일이었지만 엄마가 뉴욕의 모든 아름다움을 눈에 담고 가길 바랬고, 여기서 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음식들을 다 맛보고 갔으면 했다. 엄마가 살면서 큰딸과 둘이 뉴욕 이곳저곳을 누비며 돌아다니던 2018년 어느 가을날을 회상할 때마다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길 바라며 더 열심히 돌아다녔다.


평소 잘 걷지 않는 우리 엄마는 하루 이만보씩 걸으며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불평 한 번 없이 나를 잘 따라다녔다. 사실 일주일이면 시차 적응하기만도 벅찬 시간인데 엄마는 하루 종일 돌아다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 저녁 갖가지 반찬을 만들어 나의 냉장고를 채워두기에 바빴다. 하루는 멸치볶음, 또 하루는 고추장아찌. 우리 가족은 원래 아침을 잘 먹지 않는데 엄마는 미국에 와 있는 일주일 내내 사과라도 깎아 아침을 내어주었다. 지난 5년간 밥을 못 차려준 게 아쉬워 한 끼라도 더 챙겨주고 싶었던 걸까? 치워도 치워도 똑같은데 엄마는 매일같이 같은 잔소리를 하며 내 방을 정리했다. 


일주일은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고 어느새 한국으로 돌아가는 엄마를 배웅해줘야 할 날이 왔다. 처음으로 우리 둘의 입장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항상 떠나는 쪽은 나였다. 인천공항 출국 게이트 앞에서 엄마와 아빠와 동생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등을 보이며 돌아서는 건 내 쪽이었단 말이다. JFK 공항 출국 게이트로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끝까지 지켜보았다. 혹시라도 엄마가 열린 문 틈 사이로 내게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려고 뒤돌아봤을 때 내가 그 자리에 없다면 씁쓸해할까 봐.


엄마가 아예 보이지 않자 돌아서려는데 카톡이 왔다.

"엄마 탑승 게이트에 잘 도착했어. 감기 걸리니까 얼른 들어가."


떠나는 순간에도 내 걱정뿐인 엄마의 마음에 결국 못 참고 눈물이 터져버렸다. 엄마가 떠난 집에 돌아와 처음으로 남겨진 사람의 쓸쓸한 마음을 느꼈다. 엄마랑 먹다 남은 매그놀리아 푸딩도 냉장고에 그대로 남아있는데 집이 너무 조용하다. 싱크대 옆에는 이틀 정도 익힌 후 냉장고에 넣고 먹으라며 엄마가 담아주고 간 배추김치 한 포기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뚜껑을 열고 김치 한 조각을 집어 먹으며 두 딸을 모두 외국에 보내고 둘만 남겨진 집에서 엄마, 아빠는 이런 공허함을 얼마나 자주 느꼈을지 상상해 보았다.


엄마가 다녀간 다음 해, 동생도 일주일 간 뉴욕에 다녀갔다. 아무래도 엄마보다 체력이 더 좋은 동생이기에 더 열심히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필라델피아로 당일치기 여행도 가고 엄마가 맛 본 대부분의 것들을 동생에게도 똑같이 맛보게 해 주었다. 내 동생은 쇼핑을 좋아해서 소호, 5번가, 아울렛 등에 자주 데려갔는데 이것저것 대보며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좋은 걸 하나라도 더 사주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쉬워 돈을 많이 벌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동생을 한국으로 보내는 날도 엄마를 배웅할 때와 똑같이 슬펐다. 동생과는 재잘재잘 수다를 하도 많이 떨어서 그런지 갑자기 텅 빈 오디오가 낯설게 느껴졌다. 문이 닫힐 때까지 계속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고 가길래 씩씩하게 잘 간 줄 알았는데, 동생이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옷장을 보는데 언니가 옷을 너무 안 사 입어 속상했다며 동생이 집에 가서 막 울었다고 했다. '옷은 그냥 필요 없으니까 안 사는 건데 왜 울고 난리래~' 하고 웃어넘겼지만 동생의 사랑이 느껴져 코끝이 찡했다. 그날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없는 집에 남아 모두를 하염없이 그리워하며 남겨진 사람의 슬픔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다음 해인 2020년, 나는 결국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의 품으로 돌아왔다. 우리 가족은 10년 만에 완전체가 될 수 있었다. 가족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큰 안정감을 얻게 되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을까. 


오늘은 추석을 맞아 가족끼리 와인바에도 다녀오고 CGV에 가서 영화도 보고 왔다. 이런 작은 순간순간들이 너무 소중해 오늘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더는 내 욕심 때문에 떠나는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고. 이렇게 넷이 꼭 붙어 있는 행복을 최대한 오래오래 붙잡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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