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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희 Mar 09. 2022

헌책방에서 느끼는 추억의 한 페이지

        

어둑한 골목길에 환한 불빛이 반가웠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향수가 느껴지는 책 냄새.     

수북이 쌓여 있는 낡은 책들이 천장을 뚫고      

들어간다.      

이런 모습이 정감이 갔다.     

               

     

전철역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강동도서관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근처에 도서관도 있는데      

책 대여점이 있는 게 의아했다.     

드문드문 한두 사람이 들어갔다.     

단골 고객이 꾸준히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밖에서 구경하니 주인이 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와서 편하게 보라는 뜻인데     

미안해서 들어가진 않았다.     

     

내부 통로도 비좁은데,      

빌리지도 않을 거면서     

어슬렁어슬렁 사진이나 찍고 있으면      

좋아할 리 없을 것이다.      

               



한때 동네마다 이런 종류의 책 대여점,     

 비디오 대여점 등이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조카들 보고 싶어서     

언니 집에 놀러 가면,     

언니는 소설, 형부는 무협지 시리즈 등을      

보느라 정신없던 모습이 떠오른다.      


언니는 중학교 졸업하고 만화방을 차린 적이 있었다.

아주 작은 가게였지만,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을까

대견한 생각이 든다.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언니였다.

돈 벌어 집에 도움을 주려고 시작한 만화방이었지만

본전도 못 건진 사업이 되고 말았다.

만화를 빌려가서 감감무소식이니 회수하러 다니기만 바빴다.

밑천이 있어야 새로운 만화 시리즈를 사 오는데 자금 회전이

전혀 안되었던 것이다.

결국 6개월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학교 진학은 하지 못했지만 언니는 늘 독서광이었다.     

나는 언니처럼 책 중독에 빠져 본 적이 없다.     

책 읽는 것에 마냥 게을렀다.     

     



그런데도 책방 앞에서 향수를 느끼는 건 왜일까.     

아마도 어릴 때 다녔던 만화방 때문일 것이다.     

몇 살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무던히도 들락거렸다.      

사실은 만화 빌려오라는 아버지 심부름이었다.     

'두꺼비 만홧가게'를 들어가면      

책 특유의 텁텁한 냄새가 났다.     

벽에는 철사줄이 가로로 쳐 있었고     

만화책을 나란히 진열해 놓았다.     

십 원에 몇 권 빌렸던 것 같다.     

주몽 이야기, 장화홍련전, 심청전, 흥부전 등등.     

온 식구가 배 깔고 누워      

만화 삼매경에 빠졌다.     


     


만화 내용도 건전했다.     

나는 그림 보며 읽는 시늉만 하다가  어느 순간

만화를 보면서 저절로 한글이 익혀졌던 것 같다.     

우리 때는 취학 전에 따로 공부시켜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우리 집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커서 읽었던 만화 중에 독고탁 시리즈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엄희자의 순정만화도 가슴 콩닥거리며 기다리곤 했다.     

     

오래전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며     

헌책방 앞에서 미소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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