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여행 중 건축과 미술을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MOMA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유명한 현대 미술관을 내가 직접 방문하다니! 티켓을 끊을 때까지만해도 어떤 작품들을 구경하게 될까 너무 설렜고, 친구와 함께 야간개장을 하는 날 일부러 시간을 쪼개어 방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 인생의 첫 현대 미술관이, 이렇게 두려운 존재가 될 줄은.
전 층의 전 작품을 보면서 든 단 하나의 생각은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였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는 관용구가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뭘 보고 있는 건지를 모르겠었다.
난해하게 그어진 선, 모든 게 낙서같아 보이는 그림들... 같이 온 친구는 감탄하면서 미술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고,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조용히 그림 감상에 빠져 있었다. 예술을 즐기는 모든 지성인들 사이에 혼자 바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건 꽤나 당혹스럽고 괴로운 감정이었다. 심지어 그곳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였고, 옆에 붙어있는 작품 설명으로 극복해보려던 미술 까막눈은 영어의 문턱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렇게 내게 현대 미술관은 나를 짓누르는 커다랗고 무거운 공간이 되어버렸고, 예술의 영역은 감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중 『인생, 예술』이라는 책을 만났다. 백색의 고급 한지에 둘러싸여 우리 집에 도착한 예술을 통해 인생을 논하는 책.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걸 내가 읽는다고 뭘 알 수 있기나 할까? 이 책을 내가 손에 쥐게 된 이상 잘 읽고 잘 이해하고 잘 써야할텐데. 어떡하지. 3년 전 MOMA에서의 기억이 불현듯 나를 엄습했다. 나는 그 이후로 전 세계를 덮쳐버린 바이러스때문에 미술, 예술, 회화같은 것들은 접하지도 못했다.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로 유명한 에디터이자 국제갤러리 디렉터 윤혜정 작가가 스물여덟 명의 작가와 스물여덟 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작가 본인의 삶의 조각들을 고백하는 이 책은, 정말 이 책의 표지와 꼭 닮아있다. 차분하기에 고급스럽고, 우아하며 담백하다. 그렇기에 경험과 사유에 깊이가 생겨나고, 진정성이 느껴진다. 책을 펼치자마자 "유명하거나 그렇지 않은 작가, 더 알려지거나 덜 알려진 작품은 있을지언정 이유 없는 작품은 없습니다."라는 문장에 연필로 밑줄을 그었고 나는 이 책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나는 원래 책에 밑줄을 치는 전용 샤프를 갖고 있는데, 어쩐지 이 책은 꼭 연필로 그어야 할 것 같아서 오랜만에 필통에서 4B연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현대미술은 너무 어렵다"라고들 말합니다. 네,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컨대 천문학이나 우주과학이 어려운 학문이라고 해서 별을 보거나 우주를 꿈꾸는 행위를 포기하진 않습니다. 별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듯, 미술 작품과의 만남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라는 문장을 만나자마자 왠지 이 책을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고 예감했다.
그 예감은 곧 확신이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의 시간은 창백하고 납작해졌다. 그러나 룸은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예술의 일상성으로, 디자인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그 시간을 다시 께우고자 한다. 그녀가 말한바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다른 기준으로 수용하고 다른 태도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평범한 삶을 꾸리는 내게도 많은 걸 시사한다. 바쁘고 정신없이, 가끔은 절망스럽고, 가끔은 눈곱만 한 희망에 일희일비하는 일상에는 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 삶을 구조화하는 X축과 Y축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시공간일 것이고, 널 뛰듯 춤추는 그래프는 시공간에서 행해진 무수한 선택의 결과물이다. 나의 시간을 (선형적으로)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려는 시도, 나의 공간을 (인테리어로만 보지 않고) 존재론적으로 대하려는 의지는 풍부하고 생동감 있는 일상의 순간을 일구기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라는 걸 종종 간과한다. 시공간에 대한 자신만의 시선을 삶과 연계하는 법을 자주 잊어버리는 통에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시공간을 SNS에 진열하는 행위를
권리이자 자유라 여기는 현대인들이 정작 인생의 자율권을 획득하기란 오히려 쉽지 않아 보인다.
pp.135-136
나의 작업이, 일상이 나와 연결된 크고 작은 공동체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면밀히 살펴 실천에 옮기는 사람만이 심란하도록 복잡한 이 세계에 당당할 수 있다.
정말 감동받아서 이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김영나의 작품 <룸 Loom>에 관한 글인데, 스마트폰과 SNS로 세상 모든 종류의 예술을 섭렵할 수 있게 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뭔가 알 수 없는 곳이 뻥 뚫린 것만 같았던,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이 복잡해지니까 그 속에 나라는 개인은 오히려 소외되고 단조로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 지점을 정확히 관통하고 예술의 일상성을 통해 "우리의 시공간은 입체적으로 흐른다"는 말은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갈수록 짧아지고 요약되는 방향으로 변하는 콘텐츠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 정신없어지기만 했던 지금의 내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평면화되어가는 삶을 입체화할 수 있는 게 다름아닌 예술임을, 그 예술이 그리 대단하고 거창한 게 아니라는 걸 일깨워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텍스트를 읽던 순간 일렁이던 내 삶에게는 작품 <룸 Loom>을 만났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 책 『인생, 예술』자체도 하나의 예술작품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사람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자신이 경험한 세계 내에서 보고 듣는 것들을 해석하고 사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스물여덟 개나 되는 작품에 뭐 그리 각기 대단한 이야기가 덧붙여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윤혜정 작가님은 아마도 백 가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도 모두 다른,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실 것만 같다. 광주 틈새호텔에서의 하룻밤도, 염상섭의 <삼대>에서 비롯되는 윤혜정 작가의 <삼대>까지. 작가님이 책을 통해 들려주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도, 그 뒤에 숨어있는 작가의 말들도, 작품과 작가 사이에서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윤혜정 작가의 삶도 너무 멋졌다. 앞서 언급했듯 천문학을 통해 미지의 우주를 '보게'되는 것처럼 미술을 보고, 예술에 얽힌 삶을 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경험이었다.
최근 히토슈타이얼의 《데이터의 바다》전시에 다녀왔다. 시끌시끌하던 국립현대미술관의 로비와는 사뭇 다르게 엄숙하고 차가운 느낌의 전시장과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영상들을 한참 보다가 또 MOMA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치만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1층에서 미리 챙겨 둔 카탈로그를 펼쳐 누군가가 나같은 관람객을 위해 정성스레 썼을 작품 해설을 읽었다. 그 해설 몇 마디가 뭐라고 알고 나니 내 눈 앞의 영상이 완전히 달리 보였다.
아마 앞으로도 예술이 내게 쉽지는 않은 영역일 것이다. 어떤 작품을 보고자 하면 누가 옆에서 이 책처럼 설명을 덧붙여줘야 간신히 이해하고 작가의 뜻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치만 작가의 바람처럼 이 책이 '현대미술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안내서'로써 나를 예술이라는 우주 유영을 허락했기에 나는 앞으로 두려움 대신 설렘을 가득 안고 미술관에 방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