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고향 군산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은 마음이 유독 무겁다. 아버지가 많이 늙으셨다. 지난 추석이 엊그제였는데, 또 그새 더 많이 늙으셨다.
사십여 년이 된 집도, 거실 중앙의 커다란 괘종시계도, 내가 쓰던 책상도, 여동생들의 낡은 피아노도, 비틀즈를 들으시던 오래된 전축도 모두 사십 년 전 그대로인데. 아버지만 늙으셨다.
그 언젠가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꾸짖고 매를 들어 힘차게 내 종아리를 후려치시던 호랑이 같던 아버지는 이제 안 계시고, 늙고 쪼그라든 노인만 홀로 남아 계신다.
인천에 도착해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저 잘 도착..."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습관처럼 말씀하신다.
"응, 엄마 바꿔주마."
이거 하나만은 그대로이시다. 수십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신다. 자식과 다정한 말을 나누는 방법을 끝내 모르시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은 그대로이고, 나머지 모든 것은 시간의 풍파를 맞아 사라지고 늙으셨다. 이제 나도 곧 저렇게 늙을 것이다. 저녁 도롯가에는 무거운 기운만 감돌고 있다.
문득, 김훈 작가님의 ‘광야를 달리는 말’ 마지막 글귀가 떠오른다.
‘아들이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야 하는 모양이다. 아버지의 육신도 이제는 풍화가 끝나서 편안할 것이다. 아버지의 죄업과 아버지의 방황과 아버지의 울분도 이제는 다 풍화되었을 터이다. 지난 한식 때 새로 심은 잔디가 잘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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