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서 예언자가 되는 기분이 드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용을 미리 알 것 같은 영화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퓨리는 그런 점에서 필자에게 10점 만점에 3점도 받기 어려운 영화였다. 마치 연예인 기획사에서 뽑아내는 아이돌 그룹을 보는 느낌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거칠지만 마음은 따뜻한, 유능한 슈퍼맨 대장과 성경에 미친 착한 놈, 말도 행동도 나쁘지만 사실 속은 여린 놈, 외국에서 온 놈, 그리고 무지렁뱅이 같은 신참의 집합인 이 멤버들은 지겨웠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전쟁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이 보는 편도 아니지만, 이들의 조합은 조악했다. 감독이 선택한 뻔한 선택지들은 안전하게 결과로 모든 관객을 이끌었을 것이다.
본고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사금조각 같은 장점을 모아보았다. 사실 이 부분만 생각하고 영화를 보라고 추천 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퓨리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은 바로 전차전이 메인이라는 점이다. 보통 전쟁영화는 인물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인물의 전사와 제한된 공간에서 겪게되는 감정의 변화들, 사람간의 관계, 우정, 애국심 등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사실 전쟁이라는 것은 숫자놀음이며 동시에 전략싸움이다. 나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산을 봐야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퓨리의 전차전은 상당히 전략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차에 대한 설명이 좀 들어갔으면 좋았겠다 싶을 만큼 전차에 대한 설명은 간략했다. 독일전차보다 더 잘 부서진다. 사정거리가 짧다는 것 정도만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클리셰 덩어리인 작품에서 밀덕 캐릭터를 하나 활용해서 전차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이 늘어놓았다면 전차씬이 더 멋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차전에 대해서 제법 진지하게 접근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주인공의 전차 즉 퓨리가 가지고 있는 전력 상황을 지휘관은 명확하게 알고 있고, 그 능력치를 최대한 뽑을 수 있도록 구성한다. 상대방과의 거리, 방향, 포를 쏘는 타이밍, 상대방 포를 피하는 방법, 그리고 포탄이 모두 떨어졌을 때 최후의 방안까지도 나름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 세대들에게는 트랜스포머같이 화려한 CG덩어리가 휙휙 날아다니면서 변하는게 더 익숙할지 모르지만, 그 시대의 한계를 체감하면서도 왜 저 전차장만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좋은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차전을 조금 더 역동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촬영법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이다. 지금 영화에서는 포와 같은 높이에 카메라를 놓고 관망하는 각도로 모든 전차 장면을 찍었다. 사실 두 전차간의 거리감, 전차장이 전차를 이동해서 거리를 늘이고 줄이는 장면, 그리고 상대방 전차포에 포를 날리기 위한 적절한 위치를 잡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부감으로 찍는 것이 더 적절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포가 날아가서 상대방 전차를 박살내는 장면은 지금처럼 밋밋하게 찍는 것 보다는 포가 날아가는 것을 더 강조해서 찍는 방법이 좋았을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때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 같은 촬영 기법이 이 좋은 장면을 좀 심심하게 만든 주범이었다.
<퓨리>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말을 빼놓을 수는 없다. 말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를수 있지만 소나 당나귀보다는 효율이 떨어진다. 말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은 빠르다는 점인데, 기병대가 이러한 역할로서 전쟁에서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또한 말은 현명한 존재로서도 자주 등장한다. 말이 혼자서 집을 찾아서 되돌아 간다거나, 주인을 이끌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잘 나온다. 혹은 성적인 메타포로 쓰이기도 하고, 위대한 인물이나 대장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 말이 <퓨리>에서는 총 네 번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말의 의미가 조금씩 바뀐다. 혹자는 이 말들의 색에 비유하여 묵시록의 네 기사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도 그 부분에 대해서 전쟁이라는 종말론적 상황과 클리셰 덩어리인 영화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감독은 묵시록의 네 기사에도 상당히 염두를 두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영화의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풀려나는 말은 죽은 독일군과 대비되는 존재이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미워할 수 있지만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 전쟁터에서 찾는 마지막 인간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노파가 죽은말에서 고기를 잘라내는 부분인데, 전쟁에서 인간이 겪는 굶주림, 피폐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말은 군의 물자이면서 동시에 식량으로 표현되는데 말이 죽어버린 전쟁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먹고 살아가는 인간의 생존력이 함께 공존하게 된다. 세 번째는 말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고 말 울음 소리를 아이들이 죽어가는 소리처럼 들린다는 표현에서 생명을 앗아가는 잔혹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는 주인공을 깨우는 역할인데, 여기서 등장하는 말은 전쟁에 동원된 자연체로서의 모습이다. 비록 전쟁에 물자로 활용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주변에 대해서 아무런 악의를 가지지 않는 존재로서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는 존재이다. 오히려 이러한 존재에도 바짝 긴장하고 정신을 차려야 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대비되는 존재이다.
단일한 소재를 활용해서 전쟁의 상황과 주인공들의 상황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호평 받을 만하다. 하지만 전차전이 중심이 되는 가운데에 말이 중간 중간 끼어드는 모습이라서 융화가 잘 되었다고 평하기는 어렵다. 말 장면은 모두 삭제하더라도 영화의 내용 전개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말의 상징성을 조금 더 명확하게 두고 영화 전체의 스토리에 연관 짓는 것이 더 적절한 접근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나쁜 점이 클리셰 범벅인 것이라면 또한 장점 역시 클리셰 범벅이라는 것이다. 클리셰라는 것이 범벅이라서 나쁘다는 것이지 클리셰를 잘 활용하면 감독이 보여주고자하는 부분을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주목한 부분 중 첫 번째는 선술한 바와 같이 전차 이야기라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인물들에 대한 전사를 구성하거나 갈등관계를 엮어서 하나의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는 것 보다 전차전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서 더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걸 위해서 인물 설정을 흔하게 잡음으로서 누구나 짧은 장면만으로도 인물의 캐릭터를 잡고 전차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차에서 사망한 시신의 모습, 전차가 파괴되는 양상, 전차에서 죽어가는 인물의 최후, 그리고 그 전차를 부수는 존재들에 영화는 집중한다. 전차전이 가지는 원초적인 모습이 더욱 극단적으로 드러나기 위해서, 전차의 모습을 화면 가득 채우기 위해서 감독은 전차전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클리셰를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 째로 감독이 집중한 부분은 전쟁이 가지고 있는 무분별한 학살이다. 필자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고개를 끄덕거린 부분은 엠마가 죽는 장면이었다.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엠마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첫 째는 관객에게 숨 쉴 여유를 준다는 것이다. 이 직전까지 관객들은 주인공의 멍청한 행동과 긴박한 전쟁 상황에 휩쓸려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엠마를 만나면서 음악을 연주하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이 여유속에서 관객들은 전차장의 과거를 대략 짐작할 수 있고, 그의 성격이 어떻게 기인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또 주인공이 어떻게 그렇게 멍청한 행동을 반복할 수 있는지 그 성품을 옅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두 번째 역할은 바로 이 여유로운 장면이 지나가면서 부여되는데 바로 감독이 이 영화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한 번에 제시한다는 것이다. 엠마는 가차없이 죽는다. 처음 나가는 5개조 전투에서 대장기가 독일군의 포격에 으스러져버린 것처럼. 감독은 퓨리에 탄 다섯 명을 제외하고서는 모두에게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감독은 신파의 요소를 오로지 퓨리에 탄 다섯 명에게만 주고 나머지 모든 부분에 대해서는 전쟁의 잔혹함으로 일관한다. 상상해보자, 만약에 엠마가 살아서 편지라도 주고 받기 시작하고, 그리워하는 순간 이 영화는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엠마가 죽었기에 나머지 다섯 명에게 걸리는 신파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고, 주인공이 성장하는 계기도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선택은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이것 말고도 더 장점을 써보라고 한다면, 색감이나 배우들의 잘생김, 연기력 등을 호평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것을 제외하면 사실 이 영화는 너무 지루했다. 잔인한 장면도 그럴 수 있지 수준이었고, 절박한 장면도 없었다. 특히 대사, 대사는 정말 끔찍한 것들이 많았다. 무슨 쌍팔년도에나 나올법한 유치찬란한 대사들에 필자는 스스로가 불판위에 올라간 오징어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영화관에서 봤으면 눈물도 찔끔 흘리고, 뭔가 좀 웅장한 느낌도 있었으리라고 인정한다. 왜냐면 감독은 적어도 상술한 저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