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우리를 과연 하나로 연결하는가?
기술과 민족주의, 이 해묵은 논쟁이 라인 야후 사태를 통해 재쟁점화되는 모양새입니다. 네이버의 자회사인 라인(LINE) 야후의 주식 매각은 ‘일본의 라인 강탈 시도’로 규정되어 한일간의 외교적인 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습니다. 마이니치신문은 한국이 라인지분협상 문제를 식민 지배와 연결해 한국 내 내셔널리즘을 자극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일본인의 메신저 라인의 모기업이 한국이라는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일본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의 국민 메신저인 이 라인이 한국의 기술기업 네이버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닛케이를 비롯한 일본 언론도 ‘일본 출생의 넷 서비스’라고 보도했었습니다. ‘LINE이 일본발 오리지널 앱’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라인에서 한국이라는 존재는 가능한 한 지우는 편이 낮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에 일부 언론에서는 라인의 국적 논란까지 일으키며 라인 임원들이 악질적으로 한국을 숨겼다(韓国隠し)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일본 국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라인(LINE)’은 월 이용자(MAU) 수가 9600만명으로 Facebook, Twitter, Instagram 등을 제치고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24년 1월 일본 인구는 1억2300만명으로 일본 인구의 78.1%가 이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라인(LINE)’의 영향력은 더 대단합니다. 1억2300만 중 인터넷 이용자는 1억440만명으로 인터넷 보급률은 84.9%입니다. 그런데 ‘라인(LINE)’ 이용자가 9600만이라는 건 인터넷 이용자의 91.9%가 LINE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인 거죠. 거기에 18세 이상 사용자가 9145만명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일본의 성인남녀는 대부분은 라인을 사용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일본의 라인 야후 주식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각각 50%씩 출자한 중간지주회사 ‘A홀딩스(라인 야후 대주주)’가 약 65%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사회의 구성은 소프트뱅크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프트뱅크는 일본 정부를 등에 업고는 네이버에 ‘A홀딩스’의 지분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는 겁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2023) 11월, 네이버 클라우드와 업무를 위탁하고 있는 회사 직원이 사이버 공격으로 악성코드에 감염되어 51만건의 일본인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 총무성은 두 번에 걸쳐 행정지도를 합니다. 통상 이런 경우 재발 방지 조치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과태료 등의 처분을 내리는 선에서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례적으로 라인이 “네이버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을 문제 삼으며 “네이버와의 자본 관계의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체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겁니다. 네이버 주식을 소프트뱅크로 넘겨주라는 거죠. 일본 정부의 과잉대응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데이터 통제권을 외국 기업에 뺏기면 경제 주도권은 물론 자국민 정보가 해외로 유출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에 따른 겁니다. 한국 정부 역시 국내 최대 플랫폼 쿠팡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했는데, 한국 쿠팡의 모회사의 최대 주주는 바로 라인 사태를 이끄는 소프트뱅크입니다.
일본에서 라인 사태와 유사한 사건이 지난 2018년에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페이스북에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내용의 행정지도를 했다고 발표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라인의 개인정보 유출을 경영권 박탈로 비화시키는 건 기술 기업 간 비즈니스 관점만으론 볼 수 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최근 10년 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등 핵심 기술을 둘러싸고 기술전쟁에 돌입했습니다. 이웃 국가들의 기술혁신은 자국의 위협이 된다는 판단에서죠. 트럼프 정부 시절, 미국의 지식재산권 기술과 이를 활용한 부품을 화웨이 및 자회사 등 관련 업체와 거래하지 못하도록 ‘반 화웨이 드라이브’를 가속한 적이 있습니다. ‘테크노내셔널리즘(technonationalism, 기술 민족주의)’에 근거한 대중국 제재방침은 바이든 정부에 들어와 더욱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지난 3월 미 상원은 모회사인 중국기업 ‘바이트댄스’가 틱톡의 사업권을 270일 내에 미국에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 내 서비스를 금지한다는 ‘틱톡 금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때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국가안보였습니다. 중국도 페이스북(메타), 애플에 미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앱을 중국 앱스토어에서 삭제하라는 요구를 했는데 이 또한 국가안보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유럽연합 또한 최근 구글, 메타 등에 대한 규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번 라인 사태로 선진국 간 기술경쟁에서 자국을 보호하려는 기술민족주의의 기류에 편승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를 보고 있습니다.이번에 네이버가 희생양이 된 것뿐입니다. 거꾸로 보면 일본 내 라인의 영향력이 너무 거대해졌기 때문일 겁니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당시 라인은 구조요청과 생존 확인을 위한 ‘핫라인’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코로나 당시 일본의 코로나 19 알림 프로그램으로도 사용된 라인은 전자상거래, 간편결제 앱 등 이제는 일본인의 삶에서 배제할 수 없게 된 겁니다. 그런데 라인의 영향력과 의존성이 갈수록 커지고만 있는데 일본에 라인을 대체할 만한 토종 플랫폼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술민족주의를 벗어나자는 취지에서 기술세계주의(Techno-Globalism)를 등에 업은 구글은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지배적인 지위로 군림할 수 있는 기술들을 만들어 낸 구글은 전 세상을 하나로 연결된 인터넷 세상으로 바꿔놓았지만, 다시 세계 각국은 ‘기술주권(Technology Sovereignty)’을 내세우며 주요 선진국들은 디지털 빗장을 내걸고 있습니다. 라인 사태로,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국경을 넘은 협력으로 기술의 이익을 공유하자는 기술세계주의가 세계정치 지형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는 나쁜 선례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