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아메카지(アメカジ) 패션이다!!” 쇼핑몰에서 눈을 반짝이는 아이의 말을 듣고 “아메카지?”, “아메(雨)? 비 올 때 입는 패션?”이라고 되묻는 나를 보고 아이는 어이 상실의 표정으로 저를 보더군요. 찾아보니 ‘아메카지(アメカジ)’는 아메리칸 캐주얼(American casual)의 일본식 발음, ‘아메리카진 카쥬아루(アメリカじんカジュアル)’를 줄여 부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캐주얼 스타일?’ 미국 스타일도 잘 모르겠는데, 거기에 미국의 캐주얼 스타일이라니.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에 승전국으로 들어온 미국의 최고위 사령부, GHQ(연합국)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 1945년 10월 2일부터 1952년 4월 28일까지 6년 반 동안 일본을 지배하게 됩니다. 일본을 패망시킨 미국이지만, 일본의 파시즘에 비판적이었던 일본의 지식인들은 반미보다는 민주주의적이지 못하고 전쟁을 일으킨 군부에 대한 비판과 이를 막지못한 자기반성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대중들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전체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전체주의 색깔 지우기와 미국식 민주주의와 미국문화 도입에 열을 올립니다. 물론 패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원폭이라는 어머어마한 살상무기로 무참히 일본인들을 죽인 용서할 수 없는 침략국이 아니라 폭주하는 일본의 군부를 막기위해 어쩔수 없이 살상무기를 쓴 점령군정도로 이해했습니다. 미국에 매우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무자비한 점령군은 아니었던 거죠.
거기에 약 6년정도 일본을 지배한 미국은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밀가루, 옥수수 등 식량을 원조하는 한편 평등, 자유사상을 도입하여 미국식 민주주의를 덧입히려 노력하였습니다. 패션은 일본인이 가장 빠르게 반응한 부분이었습니다.
‘아메카지(アメカジ)’는 캐주얼이 아닌 카주얼이라는 발음에서 느껴지는, 그 어딘가 어색함이 미국 스타일이 아닌 일본만의 스타일로 재정립된 미국패션 스타일이란 걸 말해줍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도쿄 시부야를 중심으로 유행한 이 스타일은, 1960년대 미국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전통 스타일인 ‘아이비 리그룩’(아메리칸 트래디셔널)을 따라 하던 1960년대 일본의 ‘젊은이룩’이 다시 유행한 복고스타일인 겁니다.
‘아메리칸 캐주얼 스타일’이 도대체 뭐냐고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어렵지만, ‘아메카지(アメカジ)’에서 말하는 ‘아메리칸 캐주얼 스타일’이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미국의 대학생이나 노동자 계급에서 유행한 데님(denim), 플란넬, 가죽 등 내구성이 있는 소재를 조합한 기능적이면서도 심플한 스타일의 옷입니다.
미국의 젊은이 문화패션에서 파생한 ‘아메카지’의 상징적인 아이템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데님 청바지, 체크 셔츠, 가죽 재킷, 스타디움 점퍼, 웨스턴 부츠, 스니커즈 등의 아이템을 조합한 스타일입니다. 그 중에서도 ‘아메카지’의 상징은 역시 데님 청바지입니다.
하지만 1950년대 당시의 데님은 서브 컬쳐이며, 아직 메인 컬쳐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일본 젊은이들은 영화관의 스크린에서 제임스 딘이 멋지게 청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을 동경했습니다.미국의 젊은이들에 의해 탄생한 와이드 팬츠와 버기 팬츠, 벨바텀 (부츠 컷) 등 히피 패션은 자유와 반항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패션이 유행하게 된 배경은 아무래도 1960년대에 일본을 관통했던 핵전쟁의 공포, 기성세대의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저항이겠죠. 일종의 반문화(反文化) 또는 카운터컬처(counter-culture)로 고도성장 속에서 획일화되는 자아, 사회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인간정신에 대한 비판으로 유행한 1950년대 미국의 비트세대문화(Beat Generation), 미국의 히피문화의 수용 등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배경에서 노동자들이 즐겨입는 질기고 편안하지만 나름 힙한 패션이 청바지와셔츠로 대변되는 미국의 캐주얼이었던 거죠.
현재는 파커나 캡을 사용한 스트레이트, 슬림, 부츠 컷 등 다양한 스타일의 청바지가 있고, 거기에 살짝 색바랜 헌 옷을 도입한 빈티지 청바지도 인기가 있습니다.
거기에 미국식 워커가 아닌 컨버스나 번즈 등의 클래식 브랜드의 스니커로 완성한 ‘아메카지’ 패션은 딱 떨어지는 정장이 아닌 캐주얼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연출할 수 있지요. 이전처럼 양복을 고집하는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일본의 ‘아메카지’ 패션은 누구나 편안하게 입을 수 있어 오랫동안 세계 각국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