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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un 07. 2024

공기의 냄새라도 맡아야지

 공기를 읽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는 일본인은 따뜻하고 친절합니다. 거대한 문제도 소소한 일상으로 환치될 만큼 빌런도 극악무도하며 잔인한 모습이 아닌, 어딘가 좀 허술하면서 인간미가 있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실제로 일본을 여행할 때, 호텔, 쇼핑몰, 음식점, 박물관 등에서 상냥한 말투에 인사성 밝고, 내가 뭘 원하는지, 묻지 않아도 물어봐 주고 찾아봐 주고, 간단한 질문도 허투루 듣지 않고 성실하게 답해주는 센스.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택시는 장거리 손님이 아니어도 직접 택시기사가 짐을 트렁크에 실어주고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참 일본인들은 친절하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왜 일본인은 다른 사람의 안색을 살피고 주변의 분위기를 읽는걸까? 그러면서 저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을까? 아님, 일본인은 원래 그렇게 남을 잘 배려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배려 없는 언동은 누구든 기분 좋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 분위기를 파악한다는 의미의 ‘쿠우키오요므(空気を読む, 공기를 읽는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한데, ‘쿠우키오요므’ 다양한 방법들이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공기’를 원래 우리말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이 단어는 명치유신도 일어나기 전인 1849년, 난학자(서양학자)에 의해 air를 공기(空気)로 번역된 말입니다. 인간이 호흡하는 데 공기라는 게 필요하다는 것 자체를 몰랐으니, air에 해당하는 말이 있었을 리 없죠. 그래서 지구를 둘러싼 산소와 질소를 기체의 혼합물(mixture of gases that surrounds the earth)을 하늘(空)의 기(気)라는 의미에서 공기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낸 겁니다.



안색을 살피는 행위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던 구시대의 잔재입니다. 공기를 읽게 하는 건 그야말로 권위나 모든 조건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살펴 알아서 기라는 겁니다. 연공서열제를 기본으로 하는 일본의 공무원이나 대기업에서 공기를 마셔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공기의 흐름을 읽고 행동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공기를 읽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조직사회의 논리가 지역사회의 붕괴와 인터넷이 보급되는 2000년을 기점으로 청소년으로 퍼지기 시작합니다.



일본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쿠우키오요므(空気を読む)’는 어른들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병들게 했는데, 일본 내무성에 의하면 일본 청소년의 불안이 2000년을 기점으로 급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2000년 이후 청년들을 「공기를 읽는 세대」라고 부르는데, 친구 집단 내의 「공기」가 절대적 질서로 자리 잡고 있어, 그에 따르지 않는 아이는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기를 읽는다」가 신조어로 유행하던 시기, 집단 괴롭힘에 관련한 사회적 메커니즘을 밝히는 서적들이 대거 출간되었습니다.




당시 방황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오겐키데스카(お元気ですか)’로 유명한 ‘러브레터’의 감독, 이와이 슌지의 2001년작, ‘릴리 슈슈의 모든 것’(リリイ・シュシュのすべて)입니다. 열네 살 소년 유이치. 그의 일상은 힘이 듭니다. 중학교 입학식 때 신입생 대표로 답사를 읽은 호시노는 잘생긴 부잣집 도련님이었습니다. 그림에 그린 듯한 모범생, 호시노와 유이치는 절친이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의 일진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호시노는 반 친구를 원조 교제시키고 돈을 빼앗고 단짝 친구였던 유이치와 유이치의 첫사랑 쿠노를 따돌리고,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일진의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호시노가 이제 가해자가 된 겁니다.




호시노의 탈선은 그의 세상 전부였던 엄마가 재혼으로 그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좌절감에서 시작된 겁니다. 문제는 그의 이런 이야기를 그와 가장 가까운 단짝, 유이치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의 마음은 얼굴 없는 인터넷 세상으로 향합니다. 좋아하는 음악에서 위로를 찾고, 전혀 공기를 읽지 않아도 되는 얼굴 없을 사람들에게 현실의 나와 다른 마음을 나눕니다.




‘공기를 읽는다’라는 말은, 2007년에 신조어·유행어 대상에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쿠우키오요므(空気を読む)’라는 말은 있었지만, 그해 유독 이 말이 유행하게 된 겁니다. 그건 2007년, 개헌을 내건 아베의 당선, 그리고 사임, 참의원 선거에서 의외의 자민당 패배, 정치인의 정치 스캔들 등 복잡한 정치적 상황도 한몫했다는 평가입니다.



시류에 영합하고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어른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렇다고 뭐든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갈등이 생길 수 있으니 상대방의 상황이나 입장에 존중하며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전해야 합니다. 말이 쉽지 이건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과 세월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이야기하는 힘을 키워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생각의 훈련이 필요할 겁니다. 그야말로 공기만을 읽지 않고 ‘바르게 전달하는 힘’과 ‘비판적 사고’를 키워 타인에게 진심을 담아 자신의 마음을 전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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