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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Sep 01. 2024

연예인의 스캔들과 음모

역시 남 사는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던가? 그게 남의 연애 이야기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없는 지인의 이야기를 하는 건 좀 석연치 않지만, 누구나가 아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사생활이라면 자신들이 듣고 읽은 이야기를 누가 더 많이 아는가를 경쟁하듯 토해내도 아무런 죄의식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직접 아는 사이도 아니고 아무 관련도 없는데, 유명인의 삶에 왜 그리 관심이 많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린 언제부터인가, 가끔 만나는 친구나 친지보다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연예인의 정보를 더 많이 접하고 소비하면서 연예인을 가까운 친구, 혹은 지인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랑 상관없는 일인 걸 알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 혹은 가수의 사생활은 내 흥미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특정 시기에 터진 인기 연예인의 스캔들은 첨예한 정치적 이슈와 관련되었다는 음모론도 존재합니다.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적 음모론 사이의 상관관계는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죠.



일본 에도시대에 벌어진 유명 가부키 배우와 최고상궁 사이에 벌어진 스캔들 하나로 일본열도가 떠들썩거렸던 사건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에지마 이쿠시마 사건(絵島生島事件)’입니다. 일본 역사를 바꾼 계가가 되기도 했던 이 사건은 아주 오랫동안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러합니다.



무사의 딸로 태어난 에지마는 도쿠가와 7대 쇼군으로 등극하는 이에츠구(家継)의 생모 후궁, 겟코인(月光院)의 궁녀로 궁에 들어갑니다. 뛰어난 재능으로 최고 궁녀의 자리까지 올라간 에지마는 어느날, 성 밖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겟코인(月光院)을 대신하여 사찰로 불공드리러 갑니다. 그런데 불공을 끝낸 에지마는 바로 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100명이 넘는 신하들과 가부키를 보러 갑니다. 연극에 너무 몰입한 에지마는 그만 성문이 닫히는 시각(오후 6시)까지 성에 도착하지 못하고 닫힌 성문을 열어달라고 한바탕 소동을 벌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궁 안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에지마가 단체로 가부키를 관람한 건 사실이지만, 에지마가 연극의 주인공 이쿠시마와 관계자를 불러 연회를 열었고 이쿠시마와 단 둘이 밀회를 나누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겁니다.




 스캔들이란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을 말합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스캔들 대상이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배우 이쿠시마였다는 게 충격적이고, 파격적이니까요. 


生島新五郎


성에서 소동이 벌어진 지 20일쯤 지났을 때 에지마는 자택에 구금된 상태에서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배우와 밀통한 혐의로 모진 문초를 받아야 했습니다. 사람들의 의혹은 사실이 되고, 그저 그런 사건이 특별한 사건으로, 통속적 오락으로 변형되기 시작합니다. 



음모의 대상이 되는 이야기가 아주 특별한 사건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는 거죠. 이후 에지마는 겟코인(月光院)의 탄원으로 다카토번(高遠藩, 지금의 나가노현)에 유폐되고, 이쿠시마 신고로는 미야케섬으로 유배형에 처해집니다. 물론 가부키 관계자들도 처벌을 면치 못했죠. 그림에서 보듯이 유배형에 처해진 이쿠시마가 도쿄 스미다강(隅田川)의 에이다이교(永代橋)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걸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에지마와 이쿠시마의 스캔들이 이렇게 커진 건 배후에 겟코인(月光院)의 권력을 없애기 위한 정부인, 텐에이인(天英院)의 음모가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후계자를 낳고 막강한 권세를 자랑하던 겟코인을 시기하던 정부인, 텐에이인(天英院)이 그저 술자리 뒷담화로 끝날 에지마의 가십 같은 스캔들을 ‘밀통’으로 완성하며 겟코인을 쫓아낼 구실로 삼았다는 게 학계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겟코인의 권세는 크게 약화됩니다. 겟코인(月光院)의 아들이 7대 쇼군이 되지만 병으로 8살에 요절하고 그 기회를 틈타 정부인 텐에이인(天英院)은 자기 사람으로 제8대 쇼군을 옹립하기 위한 권력 암투를 전개합니다. 하지만 이에야스의 직계혈통은 끊어져 버리고 이에야스의 증손자에 해당하는 먼 친인척에서 쇼군이 탄생합니다. 그가 바로 경제를 개혁하고 서양 학문을 도입하여 에도막부를 중흥으로 이끈 유명한 8대 쇼군 요시무네(徳川 吉宗)입니다.



이 스캔들이 정말로 정치적 공작의 산물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가부키 배우와 상궁의 스캔들은 일본 역사를 바꾸게 되는 엄청난 일이 된 거죠. 예나 지금이나 유명인을 끌어들인 스캔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강력하게 견인하며 이야기를 팽창시킵니다. 어쩌면 그저 그런 스캔들에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는 것도, 때로는 사소하게 치부하는 것도, 권력의 의도를 무력화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적 행동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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