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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월 May 06. 2023

Sympathy & Empathy

더 웨일 (2022): 중요한건 무수한 상처와 결핍에도 잃지 않는 다정함

지금이라도 이야기를 하면 눈물이 나는 인생의 상처들이 있나요?
그 상처로 인해 몸이나 마음, 혹은 둘 다 망가져버린 것 같은 순간들이 있나요?
그 힘든 시간은 어떻게 버텼나요? 혹은 아직 버티고 있다면 어떻게 버티고 있나요?


우린 모두 각기 다른 인생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혹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까진 축복받은 삶이다. 다만, 당신도 언젠간 인생의 굴곡을 맞이할 것이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겪어보지 못한 힘듦이 생겼었다면,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느껴보지 못한 우울감이 찾아온 적이 있다면 당신은 알 것이다. 직관적인 연출 하나 없는 이 영화가 왜 당신의 볼에 뜨거운 눈물을 흐르게 하는지.


연극 원작자인 사무엘 D. 헌터와 영화 "블랙스완" 등의 대작으로 유명한 감독 대런 애러노프스키가 제작한 "더 웨일"은 평점 대비 아시아권에서는 큰 상영관 흥행을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이웃나라 일본에선 극장에서 개봉도 안 하다 주연인 브랜든 프레이저가 각종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휩쓴 후에 뒤늦게 상영을 시작했다.

상영관 개봉일이 2023년 4월 7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어로 읽으면 "자 웨---루...")


놀랍게도 이번 아카데미상을 함께 휩쓴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  "더 웨일, " 스티븐연 주연의 넷플릭스 시리즈 "BEEF, 성난 사람들" 등 모두 A24 제작사의 작품이다. 그 뜻은 이 제작사, 앞으로도 눈여겨볼 만하다는 것이다. A24 제작사는 특유의 날 것 같은 감성에 독특한 느낌을 더한다. 넷플릭스의 상업용 타임킬링용 영화 같으면서도 좀 더 섬세히 영상미가 갖춰진 느낌이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적절한 음악을 까는 것을 아는 것 같다 (그냥 내 취향).


하지만 오늘은 A24 제작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영화 더 웨일 인물들을 통한 주관적인 해석을 해보겠다.


인물별 상처와 결핍

리즈 (홍 차우)

직업은 간호사. 찰리의 유일한 친구.


그녀는 왜 간호사인데도 담배를 이렇게 많이 태울까? 찰리의 비만이 그를 점점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의학적으로 낱낱이 설명할 수 있는 그녀인데도,  오늘도 찰리의 부탁에 못 이겨 KFC 치킨 한통을 건네준다. (간호사지만 담배를 이리 태우듯이) 관념을 깨고 예상에서 벗어나는 행동과 말, 시니컬하면서 장난기가 다분한 그녀의 캐릭터는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녀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마음을 누구보다 알기 때문일까, 현재의 유일한 삶의 희망인 찰리를 끝까지 살뜰히 보살피려 한다. 그의 끝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더.


사랑하는 친오빠를 잃은 것, 친오빠를 죽음으로 몰아낸 사회의 동성애 혐오, 본인의 체면이 아들의 죽음보다 중요한 아버지, 그 모든 것이 리즈에겐 상처이겠다. 그런 리즈는 인간에 대한 미움을 불구하고 찰리를 향한 그녀만의 다정함을 잃지 않는다.


찰리 (브랜든 프레이저)

직업은 대학 에세이 교수. 엘리의 아버지.


내 인생에서 단 한 가지라도 잘한 게 있다고 느끼게 해 달란 그의 애절한 마음. 무엇이 그는 인생 모든걸 실패했다 단념하게 만들었을까?


거구의 몸으로 소중한 열쇠도 직접 바닥에서 줍지 못하는 스스로가 답답해 오늘도 속상한 마음은 음식으로 잊는다. 몸 상태가 심각하다는 말에 포장지를 뜯은 캔디바 한입을 망설여 보았지만 곧 쉽게 ‘어차피 죽을 몸일 텐데’라는 생각에 굴복하곤 한다.


그런 그에게 포기할 수 없는 유일한 희망, 엘리.

찰리만이 엘리 마음속 깊이 있는 그 따듯한 온정을 믿는다. 그녀가 써 내려간 초등학교 에세이를 되뇌고 되뇌면 잠시나마 이 세상에 차가움을 잊을 수 있기 때문. 찰리가 믿는 “인간의 배려하는 본성“을 증명해 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엘리이다.


찰리의 상처는 스스로에게 진실되지 못했던 시간 (유독 학생들의 에세이에 “솔직함”을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아버지, 남편, 또 남자친구로서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했던 마음, 그 모든 것이겠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여주지 못해 은둔과 폭식으로 스스로를 가두는 그일지라도, 찰리는 창가에 날아다니는 새들 모이를 내어주는 사람이다. 그도 그렇듯, 무수한 상처 속에서 고통받고 있지만 엘리를 향한 그만의 다정함을 잃지 않는다.


엘리 (세이디 싱크)

17살 질풍노도의 소녀. 선생님 타이어에 구멍 내는 문학천재.


뭔가 써 내려가달라는 아버지의 부탁에 ‘여긴 다 구리고, 다 마음에 안 들어’의 맥락의 하이쿠(5, 7, 5의 3구 17자로 된 일본 특유의 단시. 우리나라 말로 배구俳句)를 써내는 악질적인 딸. 욕이란 욕은 다하고 반항이란 반항은 다하지만, 그녀는 결코 오늘도 또다시 아빠의 집 문을 두드린다. 외로운 순간마다 스스로 쌓아온 성벽이 너무 두터워, 누군가 그녀의 마음을 두드릴 때 그녀는 왠지 모르게 더 악의적이게 변한다. 이해는 안 되지만 또 한없이 미워할 수 없는 골칫덩어리 캐릭터다.


사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아빠. 어릴 때부터 긍정으로 본인에 대해 확신을 주던 그런 아버지였다. 그런 아빠가 남자친구가 생겼단 이유로 비참하게 떠난 후론, 세상 모든 것을 혐오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랑을 가르쳐준 존재가 배반을 가르쳤을 때, 결국 사랑은 배신을 하는 것이라 지독히도 배운 그녀.


내가 있는 차가운 곳에 따듯한 빛이 들어오면 우리는 반사신경적 방어태세로 변한다.

이는 마치 어둠뿐인 감옥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드리우는 햇빛에 눈이 부셔서 찡그려지는 얼굴과 같다. 특히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크다면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그 말과 마음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사람 뭔데 나한테 잘해주지?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 아닐까?' '함부로 또 내 마음을 열었다가 다칠 수도 있어. 열지 말자.'라고 스스로 되뇐다.


아빠가 떠나는 마지막 순간, 실은 그가 떠나지 않았으면 가장 간절히 바라는 존재, 엘리. 아직은 아버지한테 고백하지 못한 마음들, 함께 보내지 못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말한다: “Daddy, please.” 억눌러온 아빠의 그리움과 애정이 터져 나올 때 영화는 화이트 스크린으로 도배된다.


이것은 연민인가 공감인가

우리는 상처를 공유하는 만큼 상대의 아픔에 공감을 할 수 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힘듦을 보고 무턱대고 도와주려는 마음은 연민에 불과하다.


극 중 토마스 (뉴라이프에서 온 선교사)는 실로 찰리의 고통을 겪어본 적 없지만 도와주려는 마음이 앞선다. 결국 그는 찰리에게 느꼈던 혐오스러운 마음을 실토한 후 도망치듯 집에서 뛰쳐나간다.

주 며칠을 피자를 시키고 얼굴도 내비치지 않는 찰리가 걱정되는 피자배달원, 댄.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연민에 불과했기에 찰리의 본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간다.


다정함은 진정한 공감에서만.

연민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연민에서 나오는 어설픈 공감은 상대에게 위로는커녕 더 큰 상처를 안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다정함은 공감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요컨대 진정한 다정함은 진정한 공감을 통해서만 나온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진심”이라는 단어가 정확하겠다.


연민을 통한 어설픈 위로를 빙자한 상처를 줄 바엔, 그냥 아무 말 없이 그 곁을 지켜주는 것이 힘이 될 수도 있다. 그 마음 또한 시간이 지나면 그 방식대로 위안이 되는 것이니.


우린 모두 상처를 받고, 또 때론 상처를 주는 존재이지만.

상영관에서 두 번씩이나 곱씹어봐도 몇몇 장면들과 대사가 여전히 이해가 안 되듯이, 이 영화가 다룬 수만 가지의 상처와 결핍을 나는 다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겪은 삶의 어려움, 상처들, 그리고 결핍들은 공감할 수 있었다. 공감했기에 아팠고, 함께 아팠기에 위로가 되었다. 나 혼자만 겪은 힘듦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걸 나눌때 우리는 다정함을 나눌수 있다는 응원을 받은 것 같았다.


우리는 각기 다른 우리만의 인생에서 수차례 배역이 바뀔 것이다. 어쩔 때는 리즈일 수도, 찰리일 수도, 그리고 엘리일 수도 있다. 그때마다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어떤 배역이든 통일된 한 가지, “다정함을 지키는 일"에 충실하길 희망한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힘들지라도,
언젠간 내가 겪는 지금이 나의 소중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되내어보자.

그렇다. 우리는 진정한 다정함을 연습하고 있는 중이다.



"In the amazing book Moby Dick by the author Herman Melville, the author recounts his story of being at sea. In the first part of his book, the author, calling himself Ishmael, is in a small sea-side town and he is sharing a bed with a man named Queequeg. The author and Queequeg go to church and later set out on a ship captained by the pirate named Ahab, who is missing a leg, and very much wants to kill the whale which is named Moby Dick, and which is white. In the course of the book, the pirate Ahab encounters many hardships. His entire life is set around trying to kill a certain whale. I think this is sad because this whale doesn’t have any emotions, and doesn’t know how bad Ahab wants to kill him. He’s just a poor big animal. And I feel bad for Ahab as well, because he thinks that his life will be better if he can kill this whale, but in reality it won’t help him at all. I was very saddened by this book, and I felt many emotions for the characters. And I felt saddest of all when I read the boring chapters that were only descriptions of whales, because I knew that the author was just trying to save us from his own sad story, just for a little while. This book made me think about my own life, and then it made me feel glad for 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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