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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사김 Apr 23. 2023

스타트업 상품개발, 재고처리 기획부터 시작하자

악성 재고처리 실전 Tip

파괴왕.

 작가 주호민 씨의 별명입니다. 그가 언급한 장소나 사용하던 물건, 서비스가 사라지거나 구설에 오른다는 말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근무했던 매장이 문을 닫거나, 연재했던 포털사이트가 폐업을 한다던지, 청와대를 방문했더니 대통령이 탄핵당한다는 인과관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우연이 계속되면서 생긴 웃픈 에피소드입니다.

한 역술가는 주 작가의 사주를 파괴왕이 아닌 생존왕으로 풀이했는데, 주 작가가 떠난 곳이 망한 것이 아니라 망하기 전에 운 좋게 떠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운의 흐름이 좋은 팔자라고 평가합니다.


저 역시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가 맡은 카테고리에서는 유독 OO파동, XX사태 등 대형 이슈가 터지곤 했습니다. 밀폐용기 담당일 때 환경호르몬 파동, 일상용품 담당일 때 옥시사태, 위생용품 담당일 때 아모레 치약파동, 해외소싱을 할 때는 금융위기 등.

개인적으로도 나이에 비해 남들이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일을 겪어서, 웬만한 일에는 당황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참 운이 좋은 ‘생존왕’ 팔자 인가 봅니다.


상품개발의 시작은 재고처리 프로세스 구축부터.


 위와 같은 사태를 마주했을 때 거의 모든 결과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환경호르몬 이슈가 있었을 때는 다른 재질의 제품이 몇 배 팔리기 시작했고, 특정 브랜드가 어려움을 겪었을 때 경쟁 브랜드 매출이 그 이상으로 커버해 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일 고생했던 사례를 꼽으라면 환율 급등으로 인한 악성재고 문제였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원가가 수 십 % 씩 오르는데 역마진으로 팔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물류팀, 재무팀의 압박이 오기 시작합니다.


재고가 묶이게 되면,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기면서 향후 경영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재고적체는 업종과 기업의 규모를 가리지 않습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자금이 돌지 않으면 미래 먹거리를 위한 자원확보가 투자가 불투명해져 체력이 악화됩니다. 회계장부에 상각처리 시 주가는 하락은 물론이고 긴축재정에 들어가곤 합니다. 결국 새로운 제품개발을 위한 자원확보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깁니다.



특히 요즘과 같은 경기 불황시기에 재고처리는 더욱 힘들이 듭니다. 재고 덤핑 물량이 쏟아져 중고매장, 땡처리업체조차 재고를 매입할 수 없을 상황을 맞이합니다.


스타트업에서는 판로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품이 출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심 차게 출시한 제품의 출고 속도가 느려지거나, 계획대로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다음 신상품을 추진할 동력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재고처리 프로세스의 정립이야 말로 상품기획의 출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고처리의 핵심은 "原則"


 과잉 재고라 판단될 경우 가장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방법은 "가격 할인"입니다. 시즌 프로모션에 포함시키기도 하고, 멤버십 이벤트나 재방문 유도용 미끼 상품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조치를 취해도 줄어들지 않는 나쁜 재고, 즉 Bad stock의 경우입니다.  


한 때 제가 X처리 전문이라는 소문이 났는지 MD본부 전체의 쓰레기 악성재고를 처리하라는 미션을 받았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상품력이 안 좋으니까 안 팔렸겠지."

"제품 디자인이나 패키지가 이상한 거겠지."

"품질이 안 좋으니 리뷰가 낮게 나오겠지."

  할인 판매에도 소진되지 않는 재고를 어떻게 해결할까 몇 날 며칠을 밤새 고민하였습니다.

 그때 적용했던 내용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핵심 포인트는 2가지입니다.

1.    원칙을 세우기

2.    세운 원칙을 잘 지키기


쉬워 보이지만 스타트업에서는 막상 어떤 원칙을 세워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준을 세워 악성재고가 되기 전에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악성재고가 생겨났다면 정해진 기준에 따라 처리하도록 합니다. 변화는 상황에 그때그때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타이트한 재고관리가 어렵습니다.

  

1.  악성 재고 기준 수립

SHD(Stock Holding Days). 가장 쉽게 관리하는 툴은 '재고보유일수' 입니다.

즉, 현 보유재고(+발주중인 재고)를 월 평균 판매(또는 출고)금액으로 나눈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10억 재고가 있고, 월 1억 재고가 판매된다면 SHD는 10개월≒약 300일이 됩니다.


*분모가 되는 판매금액은 각 업체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며(전월기준으로 할지, 3개월 월 평균으로 할지 등), 그에 따라 재고보유일수도 상이하게 나타납니다.


품목별 SHD와 판매시즌 인덱스(계절에 따른 판매증감 가중치)를 감안하여 안전/위험/악성으로 분류합니다. 재고보유일수와 대금회수일정을 대조하면서 자사의 적정 재고 기준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식품의 경우 유통기한 이슈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대략의 감이 아닌 “숫자”로서 재고 위험도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재고자산 회전일수, 매출채권 회전일수를 통해 기업이 당면한 현재 체력을 측정해야 합니다.


2.  Out Process(재고처리 시나리오) 수립

우리나라 군에는 작계5015*가 있고, 기업에는 재고처리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작계5015: 북한의 남침에 따른 전면전 상황을 가정한 '작전계획(작계) 5027'의 후속 군사작전 계획-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북한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게 되면, 각 군별, 예하 사단의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계획되어 있는 시나리오 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시나리오는 발생가능한 모든 상황을 가정합니다. 전쟁 버튼이 눌리는 동시에 자동적으로 군사작전이 실행되는 시스템입니다.


마찬가지로 재고 처리 시나리오를 수립하여, 경우의 수에 따라 재고를 Out 하는 프로세스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획을 세워놓더라도

“조금만 더 매출을 하면 될 것 같은데..”

“거래처에서 주문할 수 도 있지 않을까?”

“물건이 썩는 것도 아닌데, 언젠가 팔리겠지,”

하는 기대감에 위험재고는 악성재고로, 악성재고는 돈을 주고 처리해야 하는 일명 X재고로 바뀌기 일쑤입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재고 상황에서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았을 때,

재고 시나리오를 세워 놓고, 해당 상황 발생 시 기계적으로 자동 실행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습니다.


소진 행사할 때 주의할 점은?

 

재고를 처리할 때 고객에게 제 값에 팔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얼마라도 건져보자'는 방식으로 생각하면 처리가 쉬워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고 소진행사가 정상 판매 제품이 영향이 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칫 잘 팔고 있는 제품의 인지 가격을 흐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왜 소비자는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의 대폭 할인에 열광하는가? Why Are Consumers Excited about Deep Discounts of Black Friday? 저자: 이진석/최자영]


또한 제품 및 기업에 관한 불신을 증가시키고, 재구매와 브랜드 자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할인을 통한 재고처리는 ‘신뢰도'를 위해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정상제품과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공간과 시간을 구분하여 판매하는 것이 좋습니다.


1.  재고소진 용 매장(=아울렛, 클리어런스 매장)

 물리적으로 독립된 재고소진 전용 매장을 만듭니다. 규모가 있는 잘 알려진 브랜드사에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접근성이 나쁜 교외에 위치해도 고객은 찾아갑니다. 가격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회전율이 높습니다. 소비자는 '정상제품'과 구분하여 가격을 이해합니다. 신제품 하나 없는 독립된 공간은 그들로 하여금 “신제품이 아니니까”, “이월상품이니까”와 같이 생각하게 합니다. 따라서 기존 정상제품과 구분하여 가격을 이해합니다.

[NIKE, IKEA Outlet Store, 출처=각 사]

일부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우 패밀리세일 등의 이름으로 온/오프라인 팝업매장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휘슬러 패밀리 세일]

2.   재고소진용 매대

 별도의 매장으로 판매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구분된' 재고소진매대 또는 소진관을 운영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시 운영을 통해 가성비 상품을 찾는 고객이나, 체리피커를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3.  재고소진용 이벤트

일반행사와 '구분된' 재고소진용 이벤트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각 나라의 재고소진 이벤트=블랙프라이데이, 박싱데이, 후쿠부쿠로)

보통 연말이 되면 재고 털기를 통한 고객 유치행사를 기획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익숙한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를 비롯해 영국의 박싱데이(Boxing Day), 일본의 후쿠부루로(福袋)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재고 소진 이벤트입니다.

랜덤박스, 럭키박스의 이벤트 역시 잔여재고를 쉽게 팔기 위한 재고 처리 방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똑같은 할인율이라 하더라도 일반행사의 대폭 할인은 소비자가 정보로 인식하여 평가하고 판단하는 인지적 사고로 처리합니다. 반면, 블랙프라이데이와 같은 대폭 할인은 감정적 처리프로세스로 받아들여 처리합니다.

 즉, 소비자는 일반상황에서의 할인을 "이게 싼가? 사야 되는 것이 맞나?"와 같은 정보의 옳고 그름의 판단영역으로 처리합니다. 반면, 블랙프라이데이와 같이 구분된 독립된 별도의 기간을 통해 할인에서는 '마땅히 사야 하는 즐거운 쇼핑'의 판단영역으로 인지한다는 것입니다. '블랙프라이데이=할인'이라는 소비자 인식구축을 통해, 감정적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즉, 핫세일존, 패밀리세일, 블랙프라이데이 와 같은 할인의 당위를 인위적으로 설정하여, 소비자가 고민 없이 감정적으로 마땅히 즐겁게 구매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처: 왜 소비자는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의 대폭 할인에 열광하는가? Why Are Consumers Excited about Deep Discounts of Black Friday? 저자: 이진석/최자영]


여기부터는 보다 긴급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재고소진 방법입니다.

4. 리퍼(Refurbish)매장

 전시용 제품이나 반품제품을 판매하는 리퍼매장은 많은 제조사에서 사용하는 재고소진 채널입니다. 온라인에 노출이 되지 않으면서 정상품과 불량재고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불경기에 더욱 인기가 많습니다.

품목에 따라 다르겠지만, 판매가의 10~30% 가격에 일반적으로 매입합니다. 현금거래이기 자금이 긴급한 업체에 도움이 됩니다. 다만, 요즘은 리퍼업체의 힘이 세져서 재고를 골라서 매입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리퍼비시 제품=구매자의 단순 변심으로 반품된 정상품이나 제조나 유통 과정에서의 오류로 미세한 흠집 등이 있는 제품, 단기 전시용으로 사용했던 제품 등을 보수 및 재포장해 새 상품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상품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5. 땡처리 수출

유통기한이 없는 비식품류의 재고소진에 사용됩니다. 중고차나 의류의 경우 온라인을 통해 매입처를 쉽게 찾을 수 있으며, K콘텐츠의 열풍으로 화장품, 생활용품을 매입하여 동남아, 서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수출합니다. 당연히 매입가는 낮을 수밖에 없으나 얼마의 현금이라도 건져야 할 때 이용됩니다.

6. 기부/후원

 사회단체에 이뤄지는 기부는 마땅히 선한 뜻에서 진행되어야 하나, 어쩔 수밖에 없는 유통기한 임박재고의 처리 수단으로도 사용됩니다. NGO에 재고를 기부하면,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통기한이 1달만 남아도 받아주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7. 소각

 판매도 기부도 어려운 재고는 폐기물로 취급되어 버려집니다. 법규를 잘 모르는 스타트업에서는 일반쓰레기로 버리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반드시 품목에 따른 폐기방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전문 폐기업체에 의뢰하면 일정 비용을 받고 법규에 따라 처리해 줍니다.

 일부 명품 브랜드에서도 소각, 폐기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여 할인행사나 아웃렛으로 팔기보다 차라리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2018년 버버리의 소각 논란 이후, 각 나라에서는 순환경제법 등을 제정하여 재고 폐기를 없애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판로가 구축되어 있는 대기업에 비해 유통채널이 한정되어 있는 스타트업의 재고처리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생산단가가 비싸지더라도 소량 생산하거나 테스트 판매를 통해 본인의 판매역량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감당 못할 재고를 안고 가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또한 유형별 재고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수요탄력성이 높은 제품이 아니라면 더욱 필요합니다. 할인을 할 때는 반드시 가격의 '맥락'이 있어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눈물의 재고소진을 진행했다면, 고객관점에서 제품의 문제점을 반드시 발견해야 합니다. 다음 신상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개선점을 반영해야 합니다. 큰 기업에서도 이러한 제품 히스토리가 관리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당자가 바뀌면 기존의 실패는 잊힌 기억이 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은 기업에서는 상품 출시 자체가 흔치 않은 '기회'이자 모든 것을 갈아 넣고 올인하는 '자식'같은 존재입니다. 제삼자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아이를 바라보고 지도하도록 합니다.  


시작하기 전부터 망할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만,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하여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에 불안함 없이 슬기롭게 돌파하길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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