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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Oct 04. 2022

낯선 나라에서 아이가 아플 때

Part3. 생활자의 일상 : 꿈꾸던 일상 속에서



아이가 여름 캠프에 다니기 시작한지 3주차 되는 수요일이었다. 캐나다 여행을 다녀온 후 아이가 여름캠프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남편과 나는 아이가 캠프에 간 동안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는 루틴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캠프에 내려준 후 함께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 PBC 캠프인데요. 베일리 어머님 되시죠? 베일리가 캠프에서 한 차례 토를 했어요. 컨디션이 안 좋아 보여서 지금 픽업을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놀랍고 당황스러웠지만 잔병치례는 잘하지 않는 아이였기에 잠깐 지나가는 증상이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되물었다. “보시기에 지금 베일리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 보이나요? 잠시 쉬고 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거든요.”

 


캠프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보기엔 베일리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오늘은 아무래도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네, 선생님 그럼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한창 운동을 하던 때라 땀에 젖은 채였지만 바로 짐을 챙겨 캠프로 차를 몰았다. 캠프로 가면서도 캠프 측에서 원칙대로 픽업을 요청했지만 막상 만나면 아이 상태가 괜찮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아이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맞을 것 같았다.

 


그러나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온몸에 힘이 없는 듯 젖은 수건처럼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의 아이가 캠프 구석 의자에 앉아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엔 보랏빛이 돌았다. “서연아 괜찮아?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거야? 말해줄 수 있어?” 아이는 기운 없는 모습으로 어렵게 입을 열었다. “엄마 나 조금 어지러운 것 같아, 머리도 아프고 조금 추워. 그리고 나 지금 토할 것 같아.”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린 후 아이를 부축해 캠프를 나오려는데 아이가 옆 화단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곧바로 또 한 번의 토를 했다. 아침에 먹은 곰탕이 그대로 나와 화단 한쪽을 덮어버렸다. 그러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장염인가?’ 아이는 평소 잔병치레는 잘 안 하는 편이지만 자라면서 두 번 정도 크게 장염을 앓은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크게 앓았었다. 그랬기에 혹시나 다시 장염이 온 것일까 싶어 두려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열을 재보았다. 다행히 열은 없었다. 평소엔 에너지가 넘치고, 무엇이든 잘 먹는 아이였는데, 서연이는 집에 오자마자 제 발로 침대에 들어가 등을 구부리고 누웠다. “엄마 나 너무 졸려…” 말이 끝나기가 무섭에 아이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잠에서 깬 아이가 다행히 기다리던 말을 해왔다. “엄마 나 배고픈 것 같아.” 혹시 장염일까 걱정하던 나는 아이에게 흰 죽을 끓여 조금 먹게 해 보았다. 두 입 정도 먹었을까 아이는 숟가락을 내려놓곤 “못 먹겠어 엄마, 미안해. 나 조금만 더 잘게.” 하며 작은 소리로 겨우 말을 뱉곤 다시 침대를 찾았다.

 


아침에 캠프에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 “조금 쉬면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하고 안일하게 대응했던 내가 미웠다. 잠이든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큰일이 아니길, 여느 때와 같이 씩씩하게 이겨내길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아이가 다시 잠든 사이 남편이 내게 자신이 아일 보고 있을 테니 오전에 못다 한 요가를 하고 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체온도 규칙적으로 잴 거고, 잠에서 깨 다른 추가 증상이 없다면 미리 만들어 둔 카레도 먹이겠다며 걱정 말라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그래, 어차피 샤워도 해야 하니까 요가하고 샤워하고 와서 저녁 시간을 잘 보내보자’ 마음먹고 길을 나섰다. 요가를 하고 나와 샤워를 하려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연이가 일어나 배고프다고 해서 카레를 좀 먹였는데 먹은 걸 바로 또 토했어.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우리 운동하는 곳 바로 옆에 응급센터 있으니까 거기로 가보자. 가는데 시간 걸리니까 샤워하고 나와. 지금 바로 출발할게.”

 


다시 만난 아이는 처음 캠프로 데리러 갔을 때처럼 힘이 하나도 없이 축 쳐진 모습이었다. 종일 먹은 것이 없으니 기운이 없을 만도 했다. 그날 하루만 3번째 토를 한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급해진 남편은 인근 소아과로 전화를 걸었지만 소아과에서는 사전에 예약된 진료만 가능하다며, 인근의 URGENT CARE를 추천해 주었다고 했다. 다행히 차로 20분 정도의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곧바로 출발을 했다고 했다.

 


미국에 온 후 병원 방문은 처음이었다. 기운 없이 앉아 있는 아이를 두고 우리는 진료를 위해 데스크에서 접수를 하고자 했다. 병원에서는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가입된 보험 정보를 물었다. 아이와 나는 한국의 보험회사에서 해외 장기 체류자를 위한 보험을 가입하고 왔지만 현지에 가입된 보험은 없었기에 별도의 보험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병원 데스크에 앉아 있던 사무직원이 보험이 없다면 진료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같았다면 ‘미국에서는 현지 보험이 없으면 진료가 불가능한가 보다’ 하고 발길을 돌렸을 테지만 한쪽 구석에서 눈을 감은 채 겨우 숨을 쉬고 있는 아이를 둔 우리는 그럴 수가 없었다.

 


“진료해 주세요. 병원비가 얼마가 나오든 괜찮아요. 저희는 학생 비자로 공부를 위해 미국에 단기 거주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별도의 현지 보험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병원비를 납부할 순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진료해 주세요.” 그러자 보험이 없으면 진료가 불가능할 것처럼 말하던 직원이 그럼 기본 인적사항만 적어주세요. 아이의 상태에 따라 진단 후 많은 금액이 발생할 수 있으니 이 점 참고하세요.” 하며 접수를 해주었다.


 

곧이어 우리는 진료실로 이동했다. 오전엔 열이 없었지만 병원에서 체온을 재니 39도를 웃돌고 있었다. 아이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의사 선생님께 침착하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머리가 조금 아프고,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해요. 속도 안 좋고 너무 추워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요즘 단체 활동을 하는 캠프에서 친구들로부터 감기나 바이러스를 옮아 아이들이 많이 병원에 온다며 구토와 고열 증세로만 봐서는 코로나 일 것 같진 않지만 혹시 모르니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병원에서는 코로나 검사 결과는 내일 중으로 메일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현재 상태로는 장염은 아닌 것 같으니 무엇이든 아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잘 먹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영양분을 잘 섭취하고 조금만 쉬면 나아질 거라며 속이 메스꺼울 때 먹을 수 있는 약도 함께 처방해 주었다. 응급실을 찾으면 늘 그렇듯 특별하게 조치된 것은 없었지만 의사 선생님의 소견을 듣자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그날 아이는 해열제를 먹었음에도 밤새 계속된 고열에 시달렸고 우리도 아이와 함께 길고 긴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메일로 검사 결과를 받았을 때 알게 되었다. 아이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었다. 그제야 아이의 모든 증상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코로나에 감염된 것을 알게 된 만큼 자가 격리를 시작해야 했다. 캘리포니아 지침상 다시 코로나 검사를 해서 음성 결과를 받거나, 양성 결과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상 격리한 후 외부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10일간 아이를 캠프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 구토와 고열 증세는 셋째 날부터 없어져 아이는 다시 정상 컨디션을 되찾았지만 집 앞 수영장에서 친구들이 노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밖에 나갈 수 없다는 것에 힘들어했다. 그러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특정 기간 외부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이도 이해하고 있었다. 햇살 좋은 캘리포니아에서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삼시 세끼를 해 먹고 종일 살을 부대껴야 하는 것은 아이에게도, 우리에게도 고된 일이었지만 아이가 아프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에 감사했고 지루한 시간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다.

 


자가격리 기간 아이가 가장 힘들어한 건 엄마 품에 안겨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집안에서조차 마스크를 쓰고 따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다행히 아이는 열흘 간의 격리를 잘 따라 주었다. 미국에 온 후 24시간을 붙어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건 우리 모두에게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긴 시간 아이를 캠프에 보내 놓고 소중한 시간을 알차게 보내겠다며 헬스장으로, 도서관으로 바삐 움직이던 우리였지만 아픈 아이를 옆에 두고 작은 얼굴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보다 깨달았다. ‘진짜 소중한 건 여기에 있었구나.’  



<응급센터에서 진료받던 아이와 늦은 밤 아픈 아이를 위해 죽을 끓여다준 친구 나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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