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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Apr 03. 2022

교사가 일요일 밤마다 하게 된 일

자가 키트와 함께 하는 짜릿한 15분



 전염병 회상


 학창 시절, 아폴로 눈병이 유행했을 때 자기도 걸리면 좋겠다고 감염된 친구의 체육복을 가져다가 얼굴에 비비던 친구가 생각난다. 신종플루 때에도 친구들의 죽다 살아났다는 투병 무용담을 웃으면서 듣곤 했다. 교사가 되고 나선 겨울마다 독감 때문에 교실 한 귀퉁이가 텅 비어버리는 걸 매해 경험했다. 첫 감염자가 생기고 며칠 내로 그 주변을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줄줄이 감염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전염력이 높은 아폴로 눈병이나 신종플루, 독감들을 무사히 다 피해 갔다.


 올 2월에는 동거 가족들이 확진됐었다. 가족 내 감염 확률이 높다지만 철저하게 고생을 한 덕에 또 나만 살아남았더랬다. 3월 한 달 동안 20명이 넘는 아이들과 함께 밥 먹고 놀고 떠들면서 아직 잘 버티고 있다. 학교 선생님들도 한 학년에 한둘씩 생겨 보결 들어갈 일도 생기기도 하고 우후죽순 확진 학생이 실시간으로 생겼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무사하다.


 내가 각종 전염병들을 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 주 약간의 결벽증 덕분인 것 같다. 극도의 결벽증까진 절대 아니고 적당히 어지럽고 적당히 더러운 상황 속에서도 잘 지내지만 몇 가지 따로 챙기던 것들이 키포인트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찬바람 불어오는 가을쯤부터 늦봄까지 마스크를 끼고 다니곤 했다. 휴대용 손 소독제, 알코올 스왑은 내 필수품이었고 집과 교실에는 메디록스 같은 소독제나 니트릴 장갑도 구비를 해놨었다. 그래서 초창기에 마스크랑 소독제 구하기 어려웠을 때도 나는 자연스럽게 서랍장을 열어 꺼내기만 하면 됐다.




자가 키트를 향한 여러 가지 단상들


 이제 코로나19 상황이 살짝 바뀌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났다. 자가 키트라니 이런 신세계를 봤나! 심지어 학생들과 교사들에게는 국가에서 무상으로 나누어 준다. 학생들은 매주 수요일, 일요일 저녁에 검사를 하고 음성이 확인되면 그 다음날 등교가 가능하다. 교사는 씩씩한 어른이니까.. 일요일 밤에 한 번 검사를 한다. 2월만 해도 자가 키트를 하면 그렇게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사실 초반에 교육부에서 자가 키트를 나누어 준다고 했을 때 엄청난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믿을 수 있냐, 어떻게 아이 코에 매주 두 번을 검사하냐처럼 충분히 공감이 가는 학부모님들의 주장들도 있었고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일이 늘어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차피 해야 하는 거라면 일단 해보고 욕을 해도 하는 편이라 자가 키트? 일단 해보지 뭐! 했다. 감염되는 것보단 번거로운 게 낫겠지 하며 일손이 부족해 자가 키트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소분 작업을 직접 하게 됐을 때도 기꺼이 포장했다. 실제로 코로나19 관련 필수 인력분들은 지난 2년 간 코가 헐도록 PCR을 받았을 거고 다른 이들의 고생에 비하면 약간의 잡무가 늘어난 것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짜증이 났던 것이 하나 있다면 포장하면서 생기는 쓰레기들과 비닐 포장지뿐이었다.



매일 아침 이렇게 자가진단을 하고 출근합니다



 자가 키트를 나누어주긴 했지만 이걸 사용하는 것은 의무가 아닌 권고 수준이라 솔직히 안 하고 등교해도 괜찮고 키트를 사용하지 않고 사용했다고 자가 진단 어플에 체크하고 등교를 시키셔도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행히 우리 반 학부모님들께서는 다 이해해주시고 단순히 콧물만 나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으시다면서 가정학습을 선택하시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주셨다. 아이들에게도 새끼손가락으로 코 파면 시원하지?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면봉으로 콧구멍을 살살 문질러주자~ 왼쪽 콧구멍!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오른쪽 콧구멍!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돌리고 돌리고 약속해~ 하며 초등학교 2학년 눈높이에서 가상 연습을 시켰던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자가 키트 매일 해보고 싶다고 더 달라는 귀여운 요청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




 또 일요일 저녁이 찾아왔다. 내가 소분해서 들고 온 자카 키트를 조심스레 뜯어서 검사를 할 시간이다. 면봉을 코에 넣고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다. 학교 종이 땡땡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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