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실패담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친한지인과 맥주 한잔을 먹으러 갔다.
나의 직장과 지인의 집 위치가 가까웠던 터라, 퇴근 후 지인의 집 근처 맥주집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기분 좋게 마시고 집에 갈 준비를 한다. 시간이 그리 늦지 않다는 걸 확인한다.
대리를 부를까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약속 장소 근방에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를 할 수 있었다. 미리 잘 챙겨서 신고 나온 운동화가 든든했다.
자정을 넘어 2차, 3차까지 가곤 했었던 열정(?)은 체력이 고갈되어가는 나의 신체적 나이와 코로나 시기가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막차시간 이전에 마무리된 술 약속은 나의 발걸음을 지하철
입구로 향하게 하였다.
다음 날이 되었다. 별다른 일이 없는 토요일, 새벽 4시까지 몇 개의 웹툰을 정주행하고 눈을 떠보니 정오가 되었다. 차를 가지러 가야 하는데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그냥 월요일 아침에 대중교통으로 이용해서 출근을
해볼까 하다가, 업무 인계를 받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서 사무실을 방문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래.. 그냥 택시 타고 가자'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택시를 쉽게 이용하게 되었나?
어플로 택시를 부르고 자동결제가 되는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차가 생긴 이후로 퇴화되는 도보 능력 때문인 것일까? 버스 환승과 도보 30분은 당연스럽게 생각했었던 시절도 있기도 했었다.
어쨌든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예전으로 돌아가긴 어렵다.
주말 휴식에 취해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면서 어플을 이용해 택시를 예약한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 전에 택시가 배정이 된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서둘러 몸을 싣고는 닫힘 버튼을 재빠르게 누른다. 어플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나에게 배정된 택시가 어디쯤 오는지 확인을 한다. 다행이다. 아직 여유가 있다. 급해진 걸음은 조금 느긋해진다. 날이 조금 후덥지근하다. 조금만 더 걷으면 땀이 송골송골 날 것이 분명하다. 택시 도착 알람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본다. 반대 방향에서 온 택시는 나의 손짓에 유려하게 차를 돌린다.
타자마자 택시의 에어컨 바람 덕분에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던 나의 땀들이 순식간에 그 자취를 감춘다. 별다른 목적지 설명이 없어도 택시는 주저 없이 내가 원하는 장소로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평일 출퇴근 시간이 아닌 도로는 생각 이상으로 한가하다. 미처 마무리하지 못하고 나온 집안일을 오늘 다 마무리할지 내일로 미뤄버릴지 고민을 하던 차에 도착하였다.
하루 만에 만나는 나의 차가 왠지 반갑다. 차문을 열고 시동을 건다. 내손에 착 감기는 핸들의 촉감을 느끼며, 액셀을 밟는다. 머릿속으로 단순 셈을 하기 시작한다. 버스를 타고 왔다면 1,250원으로 해결되었을 텐데, 택시를 이용하여 7,400이 나왔다. 무려 6배에 달하는 돈이다.
금리 인상 소식과 함께 대출 원금 상환 속도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불필요하거나 과한 소비는 절제하기로 마음먹었던 게 바로 엊그제였는데 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사무실에 도착했던 날이 생각이 난다.
지도 어플을 켠다. 내가 타야 하는 버스 승강장을 화면에서 터치하면 앞으로 버스가 올 시간이 지도 하단 오른쪽에 뜬다. 나의 걸음걸이로 승강장에 도착할 시간과 버스가 도착할 시간을 얼추 계산한다. 지금이야 도착할 시간이 떠서 시간 계산이 되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이마저도 없어서 운이 좋아 버스가 오늘 시간에 잘 맞춰 나가면 바로 타는 것이고, 잘못 맞춰 나가면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처음에 버스 도착 시간을 알 수 있게 되자, 언제 올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시절을 사라졌다. 잠시 예전 생각이 떠올랐다가 다시 버스 시간을 계산해 본다. 내가 타는 버스 승강장은 도로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야 하는데, 타이밍이 안 좋으면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동안 버스가 지나가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살짝 여유 있게 나가보기로 한다. 집으로 나선다. 승강장이 가까이에는 있지만 날이 더워 금세 땀이 송골송골 나기 시작한다. 승강장에 도착해서 남은 시간을 확인해본다. 5분 정도가 남아있다. 기다리는 동안 일부러 그늘을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한번 나기 시작한 땀은 멈출 줄을 모른다. 주변 사람들의 손부채질이 보인다. 버스가 마침 도착한다. 미리 준비해서 꺼내 둔 카드를 꺼내 버스단말기에 갖다 댄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버스에 오른다. 그래도 버스 안이 시원하다. 마침 자리도 있길래 냉큼 앉았다. 편하게 내려야 할 승강장까지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사무실 근처의 승강장에 내려 사무실 방향을 확인해본다. 20분 정도를 더 걸어가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버스 안에서 잠시 소강상태였던 나의 땀들이 다시 기세 등등해지기 시작한다. 무섭게 치솟는 기름값을 아껴보려 대중교통을 잠깐 이용해보려 했던 나의 시도는 날이 선선해진 후 다시 시도해보는 것으로 수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1,250원이 아닌 7,400원으로 나의 차를 가지러 갔다.
집으로 향하던 도중에 시계를 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버스로 이용했다면 아직도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을 텐데, 이제 나는 거의 집에 도착해서 집 앞 주차 자리를 찾는 중이다.
특별히 바쁜 것도 없고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오늘 버스를 타지 않았다. 차를 주차하고 집으로 올라간다.
마침 자신의 소임을 다한 건조기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택시 안에서 미룰까 했던 집안일을 마저 마무리 하기 시작한다. 보송보송 나온 수건을 착실히 개서 쌓아두면 그 높이만큼 나의 뿌듯함은 올라간다.
어느새 택시비에 대한 생각은 사라진 양말 한 짝의 존재처럼 사라져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