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연 Jul 23. 2022

에어컨을 끄다.

1. 늘상 맞이하는 주말이 되었다.

한쪽에 모아놓은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마저 다 치우지 못한 싱크대 위에 그릇들을 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워낸다. 늘 그러하듯 발코니 창문들을 틈 없이 모두 닫은 뒤 에어컨 리모컨을 들었다.

여름철의 나는 밀폐용기 속의 반찬처럼 모든 창문들을 꼭꼭 닫아 놓고 거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앉아 있다.

그리고 에어컨을 켠다. 겨울철도 별 다른 바가 없다. 바람이 들어올세라 문을 꼭꼭 닫아 놓곤 난방을 올린다.

나의 사계절은 창문은 항상 변함이 없는 채로 닫혀 있다.


2.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식물들은 본연의 타고난 생을 다 누리지 못하였다. 섬세한 성격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생명 자체에 무심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 생을 다 하지 못하고 나가는 식물들을 보면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내 집으로 들어온 화분들에게 쾌적한 상태를 만들어 주기 위해 물을 주는 시기와 볕이 잘 들어오는 위치와

그늘지는 장소를 찾아냈지만 번번이 노래져가는 잎사귀를 보며 더 이상의 화분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나마 선물로 받은 스투키와 조그만 다육이만이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잘 키웠다기보다는 타고난 생명력으로 버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3. 작년 초봄, 여름의 더위를 대비해서 꽤 빠른 일정으로 에어컨을 설치하였다. 에어컨을 볼 때마다 스스로 기특했다. 덥다고 그때 가서 에어컨을 설치하면 예약이 밀려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꽤나 서둘러서 설치했었다. 그리고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도저히 그냥 잠들 수 없을 때, 나는 자신만만하게 에어컨 리모컨을 들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오류 메시지와 함께 에어컨은 작동되지 않았다. 최신식 모델로 내 기준으로는 나름 거금을 들여 설치한 에어컨인데 작동하지 않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위 때문에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센터 연락을 해서 기사를 배정받았지만 이틀 더 기다려야 했다. 급하게 선풍기를 주문하고 수리받는 기간 동안 선풍기에 의지하여 더위에 버텨보았다. 그렇게 급하게 샀던 선풍기는 생각보다 소음이 컸고 실내에서 쓰기에는 너무 큰 키를 가졌던 선풍기였다. 에어컨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자마자 거실 한구석에 1년 가까이 방치되었다.  그러다가 마침 아는 지인이 가게에서 쓸 선풍기 한대가 필요하다고 제 주인을 찾았다 싶어서 넘겨주었다.


4. 우리 집에 화분 하나가  들어왔다. 앞선 이유 때문에  스스로 화분을 사지는 않지만, 주변에서 나를 위한 선물로 화분이 들어오면 불안한 마음과 책임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키워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놓친 걸 알기 위해 집전체를 둘러보고 가장 좋은 최적의 장소를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해본다. 화분에 있는 식물 이름을 검색해 식물의 특성도 다시 한번 파악해본다.

문득 사무실에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잘 자라는 화분들이 생각났다. 그냥 제때 물만 주면 무럭무럭 싱그럽게 잘 자라기만하였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어 한번 더 둘러보다가 꼭꼭 닫혀 있는 우리 집 발코니 창문들이 보인다. 발코니 한쪽 문을 열고 스투키와 다육이 그리고 이번에 받은 화분을 그 앞에 놓았다.


5. 선풍기와 마찬가지로 잘 쓰지 않는 공기 청정기도 다른 지인에게 넘겨주었다. 가끔 생선이나 고기를 구우면 그때 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앞뒤 발코니가 있는 구조인 우리 집은 그냥 모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공기 청정기도 점점 한쪽 구석에서 오도카니 서있기만 하였다. 물론 미세먼지가 심한 날 문을 열지 못했을 때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사놓고 3년이 가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사용했던 나로서는 차라리 더 잘 쓰는 주인을 찾아주는 게 낫겠다 싶어서 다른 이에게 넘겨주었다.

공기청정기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해서 조그만 서큘레이터를 장만하였다. 환기가 필요할 때 그 조그만 것은

그 역할은 아주 톡톡히 해냈다. 날이 조금 선선한 날은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충분히 시원했다. 평상시에도 발코니 창문을 열 생각을 못한 것에 아쉬움이 들었다.


6. 매일매일, 온종일 닫힌 창문 안에서 지내는 화분들이 답답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코니한쪽의 열린 창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화분을 보았다. 화분을 스치는 바람이 우리 집 거실 한 바퀴를 가득 채우고 지나간다. 에어컨을 꺼보았다. 더 이상 덥지가 않다.  


   




  









작가의 이전글 그녀는 외롭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