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늘상 맞이하는 주말이 되었다.
한쪽에 모아놓은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마저 다 치우지 못한 싱크대 위에 그릇들을 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워낸다. 늘 그러하듯 발코니 창문들을 틈 없이 모두 닫은 뒤 에어컨 리모컨을 들었다.
여름철의 나는 밀폐용기 속의 반찬처럼 모든 창문들을 꼭꼭 닫아 놓고 거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앉아 있다.
그리고 에어컨을 켠다. 겨울철도 별 다른 바가 없다. 바람이 들어올세라 문을 꼭꼭 닫아 놓곤 난방을 올린다.
나의 사계절은 창문은 항상 변함이 없는 채로 닫혀 있다.
2.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식물들은 본연의 타고난 생을 다 누리지 못하였다. 섬세한 성격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생명 자체에 무심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 생을 다 하지 못하고 나가는 식물들을 보면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내 집으로 들어온 화분들에게 쾌적한 상태를 만들어 주기 위해 물을 주는 시기와 볕이 잘 들어오는 위치와
그늘지는 장소를 찾아냈지만 번번이 노래져가는 잎사귀를 보며 더 이상의 화분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나마 선물로 받은 스투키와 조그만 다육이만이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잘 키웠다기보다는 타고난 생명력으로 버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3. 작년 초봄, 여름의 더위를 대비해서 꽤 빠른 일정으로 에어컨을 설치하였다. 에어컨을 볼 때마다 스스로 기특했다. 덥다고 그때 가서 에어컨을 설치하면 예약이 밀려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꽤나 서둘러서 설치했었다. 그리고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도저히 그냥 잠들 수 없을 때, 나는 자신만만하게 에어컨 리모컨을 들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오류 메시지와 함께 에어컨은 작동되지 않았다. 최신식 모델로 내 기준으로는 나름 거금을 들여 설치한 에어컨인데 작동하지 않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위 때문에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센터 연락을 해서 기사를 배정받았지만 이틀 더 기다려야 했다. 급하게 선풍기를 주문하고 수리받는 기간 동안 선풍기에 의지하여 더위에 버텨보았다. 그렇게 급하게 샀던 선풍기는 생각보다 소음이 컸고 실내에서 쓰기에는 너무 큰 키를 가졌던 선풍기였다. 에어컨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자마자 거실 한구석에 1년 가까이 방치되었다. 그러다가 마침 아는 지인이 가게에서 쓸 선풍기 한대가 필요하다고 제 주인을 찾았다 싶어서 넘겨주었다.
4. 우리 집에 화분 하나가 더 들어왔다. 앞선 이유 때문에 나 스스로 화분을 사지는 않지만, 주변에서 나를 위한 선물로 화분이 들어오면 불안한 마음과 책임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잘 키워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놓친 걸 알기 위해 집전체를 둘러보고 가장 좋은 최적의 장소를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해본다. 화분에 있는 식물 이름을 검색해 식물의 특성도 다시 한번 파악해본다.
문득 사무실에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잘 자라는 화분들이 생각났다. 그냥 제때 물만 주면 무럭무럭 싱그럽게 잘 자라기만하였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어 한번 더 둘러보다가 꼭꼭 닫혀 있는 우리 집 발코니 창문들이 보인다. 발코니 한쪽 문을 열고 스투키와 다육이 그리고 이번에 받은 화분을 그 앞에 놓았다.
5. 선풍기와 마찬가지로 잘 쓰지 않는 공기 청정기도 다른 지인에게 넘겨주었다. 가끔 생선이나 고기를 구우면 그때 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앞뒤 발코니가 있는 구조인 우리 집은 그냥 모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공기 청정기도 점점 한쪽 구석에서 오도카니 서있기만 하였다. 물론 미세먼지가 심한 날 문을 열지 못했을 때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사놓고 3년이 가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사용했던 나로서는 차라리 더 잘 쓰는 주인을 찾아주는 게 낫겠다 싶어서 다른 이에게 넘겨주었다.
공기청정기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해서 조그만 서큘레이터를 장만하였다. 환기가 필요할 때 그 조그만 것은
그 역할은 아주 톡톡히 해냈다. 날이 조금 선선한 날은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충분히 시원했다. 평상시에도 발코니 창문을 열 생각을 못한 것에 아쉬움이 들었다.
6. 매일매일, 온종일 닫힌 창문 안에서 지내는 화분들이 답답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코니한쪽의 열린 창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화분을 보았다. 화분을 스치는 바람이 우리 집 거실 한 바퀴를 가득 채우고 지나간다. 에어컨을 꺼보았다. 더 이상 덥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