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연 Nov 25. 2022

코로나 후기 그리고..

건조한 탓에 나오는 마른기침일 거라고 생각했다.

날이 점차 추워지고 있으니, 슬슬 가습기도 꺼내놔야 할 듯했다.


멈추지 않는 기침에 새벽에 잠이 깨버렸다. 구석에서 저 혼자 빛을 내고 있는 시계를 보니 아직 출근 시간 한참 전이다.

곧바로 잠들기에는 잠도 어느 정도 깨버리고 기침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아 물 한잔 마시러 주방으로 향했다.

묵직한 머그잔에 물을 절반쯤 채우고 들이켜고 나니 기침은 잦아들었지만 잠은 날아가버렸다.


기침 때문에 한 시간 이상 하루가 일찍 시작되었다. 이 상태로 어설프게 억지로 잠을 청하면 오히려 더 피곤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포트에 물을 올리고 커피 한잔을 준비해본다.

물이 끓는 동안 욕실로 향한다. 아직 떨쳐내지 못한 여분의 잠을 덜어내려 세수를 해볼 참이다.


욕실 캐비닛 한쪽 구석에 얌전히 자리한 자가 키트가 보인다.

한창 코로나(오미크론)가 심할 무렵,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비해 둔 것이었다.

출장을 다녀오거나, 외부 사람을 접촉하거나, 몸이 이상할 때 한 번씩 해보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계속 음성이었고 그 이후 별다른 사항이 없었기에 한동안 검사를 안 한 지가 꽤 된 거 같았다.


오랜만에 해볼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항상 한 줄(음성)로만 나오다가 두줄이 나오니 신기하기도 했다.

그동안 친구들과 사무실 동료들이 코로나에 확진될 때도 나는 계속 음성이었다.

내심 나에게 슈퍼 면역력이 있는 게 아닌가 하며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는데 코로나에 걸려버린 것이다.

마지막까지 코로나에 안 걸리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되고 싶었는데 굉장히 아쉬웠다.(그래서 3번이나 자가 키트 했다.)


수요일 저녁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금요일 오후까지 아팠다. 다행히도 저녁을 먹고 나니 괜찮아지기 시작하여 토요일 아침부터는 원래의 일상처럼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온전한 휴식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간 격리 기간 동안은 어찌 보면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선사해주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는 것과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간이 없어서 집을 못 치운다거나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한다거나

시간이 없어서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그냥 시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나의 게으름을 시간이 없다는 걸로 숨고 있었던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어느 순간 멈춰 버렸고, 책 한 권도 읽지를 못했다. 출근 시간이 버거울까 봐하지 못했던 아침 운동도 하지 못했다. 아니, 모두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직장생활의 고단 함이라는 방패는 코로나 격리기간 동안 물에 젖은 솜사탕처럼 순식간의 그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격리기간이 끝나고 예전처럼 출근을 하였다.

바뀐 것은 크게 없었다. 다만 책을 한 권 빌려서 틈틈이 읽고 있으며, 모아서 정리하던 재활용 쓰레기를 그때그때 버리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주저함이 들 때 시간이 없다거나 직장생활을 내세우지 않기로 하였다. 그 정도의 변화가 생겼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오늘 만보를 걷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