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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돌이 Aug 26. 2022

"생명공학과라 그런지 서비스 이해가 빠르시네."

어느 개발 취준생의 첫 임원 면접기(2)

"상훈님은 생명공학과라 그런지 이해가 빠르시네. 보통 회사 서비스 설명해 드려도 잘 모르시더라고요."


여자 면접관의 주름진 눈가와, 염색이 풀린 노란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젖은 셔츠는 마르지 않은 듯하다.



"우리 회사는 환자들의 목소리만으로 치매를 판별하고, 관리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어요. 

저랑 제 학생들은 목소리만 들어도 이 사람이 치매인지 아닌지 바로 알아요. 20년 넘게 대학 병원서 환자들 만나다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교수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치매와 우울증 같은 뇌질환들은, 환자의 목소리에 많은 단서가 있습니다. 목소리로 병을 판단할 근거 또한 충분하고요. 저한텐 의학적으로 검증된 환자의 목소리 데이터가 쌓여 있습니다. 저는 인공지능에 이 목소리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다양한 분야에 이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우리 회사를 세웠죠."


이어서 나오는 대표님의 질문.


"저희 회사는 몇 년 안된 신생 스타트업이죠. 이것 저것 해야 할 일이 많고요. 

상훈님은 스타트업 환경이좋으시나요, 아니면 네이버 카카오 같은 대형 서비스 회사 환경이 좋으시나요?"



교수님, 당연빠따 네카라쿠배죠. 교수님이라면 네카라쿠배에서 '오세요~' 하면 안가겠어요?

하지만 전두엽이 발달한 포유류의 특징은,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응 네카라쿠배죠~ 지르고 집와서 눈물의 참이슬을 마시고 있는 내가 보인다. 안돼.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네카라쿠배 좋지. 체계적 환경과 분배된 업무, 개발자의 모든 것들이 갖춰진 회사들. 개발자라면 당연히 워너비 회사고, 내 미래 플랜 중에도 네카라쿠배 취업이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 또한 내 인생 코스 중 하나이다. 개발 외적인 업무들을 처리해보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내 인생 목표, '나만의 서비스를 일궈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에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즉, 스타트업이냐, 네카라쿠배냐는 나에게 '아침 3개 저녁 4개냐 아침 4개 저녁 3개냐'라는 질문이랑 동일하다.


나는 대답했다.


"'자기가 결국 무엇을 하고 싶냐'에 대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두 가지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번째, 제 가치관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단 한번만 주어집니다. 부여 받은 단 하나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정해지지 않은 다양한 일에 부딫히고 성장하며, 제 손으로 직접 인생을 일궈나가고 싶습니다.


단 한 번 뿐인 인생을, 온실 속 화초로 자라고 싶지 않습니다.


두번째, 제 인생 목표입니다. 저만의 서비스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 이것이 제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면, 직접 발로 뛰며 사람들이 불편한 점이 뭔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발자로서의 제 정체성이기도 하죠. 때문에, 스타트업 환경이 저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저는 온실 속 화초로 자라고 싶지 않습니다."


교수님의 눈이 반짝였다.

"오, 그럼 나중에 스타트업을 차리고 싶은 거에요?"

응? 이게 이렇게 된다고? 교수님...??


"어 음...  굳이 거창한 사업이 아니라도, 회사에 있으면서 사이드로 서비스를 만들고 배포해보는 거죠."

나쁘지 않은 방어인 듯하다. 교수님이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우리 회사 규모는 아직 작지만, 한국 FDA 승인 이후 미국으로 건너갈 꺼에요. 특허는 이미 따놓은 상태고 현재는 KFDA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허가 나면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서 판을 키울껍니다. 시장 규모부터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이죠.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중입니다."


외향, 미래 가능성, 계획 및 판단... 이 분, MBTI 검사하면 EN_J 나온다. 백퍼다.



가만히 듣고 계셨던 남자 면접관님이, 교수님께 눈길을 한번 준다. 교수님과 면접관님의 눈빛이 오갔다. 

교수님은 풀었던 머리를 질끈 묶으신다. 면접관님이 천천히 목을 축이신다.


올 게 왔다는 느낌이 든다. 면접 오면서도 계속 생각했던 그 것. 이번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리고, 입을 여셨다.


희망 연봉은 어떻게 되시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탁상 및 내 손들은, 서로 뜯기 바쁘다.


정적을 깨고,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3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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