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돌이 Sep 06. 2022

희망 연봉은 어떻게 되시죠?

어느 개발 취준생의 첫 임원 면접기(3)

"아 이만원에 해주이소! 담에 여기 또 올게예~"

"하, 이만원에 팔아가꼬 저도 남는거 하나도 없심더. 너무 하시네예. 이만 오천원!"

"그럼 요것까지 해가꼬 삼만원에 해주이소~"


옷가게 앞에서, 어머니는 만 원짜리 티 한 장을 또 집어 드셨다. 내 평생 우리 어머니보다 물건 잘 깎는 사람을 본 적 없다. 

물건 살 땐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먼저 부른다. 그리고 조금씩 가격을 올리던가, 물건을 더 얹는다. 유모차 시절부터 봐 왔던 어머니의 전략이다.


"하... 남는거 하나도 없는데... 알겠심더. 대신에 다음에 꼭 오이소~"

아저씨는 셔츠와 티를 포장해 주신다. 이번에도 전략은 먹혀들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일 경우엔, 어머니의 전략을 뒤집으면 된다.


"희망 연봉은 어떻게 되시죠?" 남자 면접관님이 물었다.


"XX00만원 생각하고 있습니다."


"흠... 쓰읍..."


마스크 너머 교수님의 미소가 싹 사라지신다. 남자 면접관님이 자세를 고쳐 앉으신다. 두 면접관님의 눈빛이 오간다. 반응 또한 예정된 시나리오지만, 피부로 닿으니 더 차갑네.


"연봉 조율은 추후 가능하실까요?" 면접관님께서 다시 물으신다.

"네, 가능합니다."


교수님은 이력서를 빠르게 훑어보셨다. 그러다 어느 구간에서 덜컥, 멈춰 섰다.


"대학교 수료는 작년 8월이네요. 1년 동안 어떤 걸 하셨죠?" 


어디 보자... 머릿속에 시간의 퍼즐을 맞춰본다. 컴퓨터랑 책에 파묻혀 백엔드 공부했던 시간 6개월, 취준 활동 1개월, 무너진 몸과 마음을 회복했던 시간 2개월, 항해 부트캠프 3개월. 얼추 1년이 나오네. MSG 조금만 쳐볼까?


"대학교 수료 이후 저는 백엔드 공부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처음 공부하는 분야고, 학습해야 할 지식이 만만치 않아서 6개월 정도 책과 인강으로 학습하였습니다. 하지만 혼자 공부하는 건 한계가 있었고, 무엇보다 팀 단위 프로젝트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몇 달의 휴식을 가진 다음, 항해 부트캠프에 들어갔습니다."


"아하. 항해에서 어떤 프로젝트하셨더라?"

"허들업입니다."


경쟁을 뚫고 나를 이 자리까지 오게 도와준 내 사랑스러운 포트폴리오, 허들업.

노트북 위의 남자 면접관님 손이 바빠지셨다. 아마 허들업 사이트를 둘러보시는 중이겠지.


"사이트 기능을 어느 정도 담당하셨나요?" 교수님이 물어보셨다.

"회원가입, 로그인 등을 포함한 사용자 기능 전반, 글을 올리고 사람들을 매칭 해주는 기능 전반을 구현했습니다."

"코드 기록 보니까 상훈님이 혼자 다 하셨더라고. 어느 프로젝트건 간에 총대 메는 사람은 항상 있는 거 같아요." 남자 면접관님이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프로젝트 리더라, 책임지고 총대 메야죠. 어깨가 무겁더라고요." 

"프로젝트 진행하시면서 '이런 사람이랑은 도저히 같이 하기 힘들다'하는 사람이 있었나요?" 교수님이 표정을 풀며 질문하셨다.



아 당근 있었죠 교수님. 

태초에 우리 백엔드 팀은 네 명이었답니다. 그런데 왜 제 코드만 올라갔을까요? 팀원의 탈을 쓴 한 물귀신이 양손에 한 놈씩 잡고 물속으로 끌고 갔기 때문이죠. 프로젝트 시작할 때, 회의판이 아닌 굿판을 벌여야 했어. 산신령과 염라대왕과 옥동자의 이름으로 죽어라.


"자기가 뭘 모른지도 모르면서, 막상 문제에 부딪히면 핑계 대며 회피하는 사람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다 할 것처럼 얘기해서 기능을 맡겼더니 하나도 안 하고, 안 되는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 합리화하기 바쁘더라고요. 결국 팀원 전체에게 그대로 피해가 갔습니다. 메타 인지가 부족한 사람이, 같이 일하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오호 그러시구나... 그래서 상훈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마지막에 시원하게 극딜하고 손절했죠. 그 인간 코드 안 올라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성한 제 코드를 더럽히는 일은 용납 못하죠.라고 할 뻔.


"그냥 제가 다 했죠. 리더이고 서비스 출시해야 하는데 당연히 해야죠 뭐. 하하..."

"책임감도 있으시네." 말씀하시며 교수님은 폰을 힐끔 보셨다.

"어머 어머 시간 좀 봐. 슬슬 마무리해야겠네요." 교수님은 서류를 정리하시며 옆을 힐끔 보신다.

"혹시 더 하실 질문 있으신가요?"

"아뇨, 이쯤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남자 면접관님의 대답.

"수고하셨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마음에 드네요." 교수님이 일어나면서 말씀하셨다.

남자 면접관님 또한 노트북을 닫으며 일어나셨다. 방을 나가시는 교수님의 마지막 한마디.


"연봉 협상이 관건이겠구만."

버스에 오른다. 

창가에 앉아, 머리를 기댄다. 

마른 셔츠엔, 따스한 햇살이.


이어팟을 끼고, 밖을 본다.

푸른 한 강의 모습이 귀에,

푸른 쳇 베이커의 목소리가 눈에.

 

눈이 감긴다.

따스함이란 푸른색인 걸까.



쳇 베이커의 목소리가 내리는 한강 위, 빨간 버스 한 대가 달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명공학과라 그런지 서비스 이해가 빠르시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