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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Luna el Sol Mar 27. 2024

명절이면 추억 빚는 모녀

엄마의 손만두

오래전 엄마와 아빠가 선을 봤고 생활력 강한 엄마와 자상하고 선한 아빠가 결혼을 하기로 했다. 몇 해 뒤 내가 태어났고, 2년 뒤에는 동생이 태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4인 가족이 되었다.


평범했던 우리 가족은 아빠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게 되면서 3인 가족이 되었다가 동생마저 그곳으로 떠나면서 엄마와 나만 남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내가 서울에 있는 회사로 취직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이 살던 고향에는 엄마 혼자 남게 되었다.


나는 명절이 되면 꼭 연휴 앞뒤로 휴가를 붙여서 고향에 내려갔다. 친척들은 엄마가 살던 나의 고향이 아닌 근처 다른 도시에 살고 있었고, 나는 언젠가부터 친척집에 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의 명절 연휴를 엄마와 나 둘만을 위해 썼다. 그러니 명절 음식은 하지 않아도 됐다. 


엄마는 음식을 안 해도 되니 너무 좋다고 하더니, '그래도 니가 좋아하는 건 해야지'라며 새우튀김, 오징어 튀김, 고구마튀김 그리고 딸이 좋아하는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산적'을 기어코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힘들게 이런 거 뭐 하려 했냐'라고 호강에 겨운 핀잔을 줬지만, 나만을 위한 음식들이 너무 좋았다.


일 복 많은 엄마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명절 분위기 내자며 만두를 빚자'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만두소는 엄마 혼자 다 만들었다. 고기와 두부, 숙주와 부추를 듬뿍 넣은 고기만두소와 김치와 두부, 당면을 넣은 김치만두소를 만들고 난 뒤에야 만두를 빚자며 나를 부른다.


둘이 마주 보고 앉아 만두피 가장자리에 물을 묻히고 만두소를 넣은 다음 만두피를 반으로 접은 뒤 끝과 끝을 이어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둘이서 열심히 만두를 빚는다.


그러면서 만나지 못했던 사이 생겼던 일들을 서로 나눈다. 사소하지만 정을 가득 담은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게 참 좋았다. 그래서일까 살갑지 않은 딸이라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편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그 시간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하게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주방 일을 단 한 가지도 알려주지 않으셨다. 가난한 집의 맏딸로 태어나 못지않게 가난한 집의 맏며느리로 시집가게 된 엄마는 소중한 딸만은 자신과 다르게 살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방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만두는 같이 빚자고 했다. 만두가 명절마다 먹던 음식도 아니고, 우리가 아주 좋아했던 음식이 아닌데도 어느 순간부터 꼭 만두를 빚자고 했다.


명절의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그리워 나의 재잘거림으로 아쉬운 마음을 채우고 싶었던 걸까. 눈치 없는 딸이 고향 친구들 만나러 간다며 훌쩍 떠나기 전에 잠깐이라도 나와의 이야기 시간을 만들고 싶었던 거겠지. 아직까지 철들지 못한 딸은 15년이 흘러버린 지금에야 엄마의 속뜻을 생각해 본다.


우리 만의 이벤트는 영원히 시집을 가지 않을 것 같았던 내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결혼을 하며 끝이 나는 듯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가족이 한 명 두 명 늘어나면서 다시 추억을 되살려볼 기회가 생겨났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 만두 대신 송편 만들기를 해보았다. 아이는 송편대신 먹을 수 없는 이상한 반죽을 만들어냈지만 아이의 웃음소리가 더해진 우리의 이벤트는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해졌다.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하면서 정말 혼자 남게 되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오히려 사위가 생기고, 손주도 둘이나 생겨 엄마에게는 세 명의 가족이 더 생기게 되었다. 엄마가 나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준 것처럼 남편, 아이들과 함께 소중한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드려야겠다.




[엄마와 나의 송편]

만두 대신 송편을 만든 적도 있었는데, 만두가 훨씬 맛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음 해부터 다시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의 만두]

결혼하기 직전 해, 마지막으로 빚은 소중한 만두들


둘이서 생각보다 많은 만두를 만들었는데, 한 번에 다 먹을 수가 없어서 냉동실에 얼려두고 떡국과 라면에도 넣어먹고, 프라이팬에 구워 먹기도 했다.


[엄마와 손녀의 송편]

둘째를 가져 시댁에 가지 못했던 그 해 추석,

우리는 송편을 만들며 명절의 추억을 쌓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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