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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Luna el Sol Apr 24. 2024

바야흐로 콩국수의 계절

진주회관 콩국수


날씨가 조금이라도 더워질 기미가 보이면 국물이 아주 진한 콩국수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래서 매년 여름이 되면 진주회관을 방문해 콩국수를 먹는다. 여건이 되면 여러 번, 안되면 한 번이라도 꼭 방문한다.


어렸을 때 나는 정말 편식이 심한 아이였다. 김치에 초록색 이파리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 김치는 먹지 않았고, 햄이나 계란프라이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깡 말랐었고 작고, 참 왜소했다. 그런 나에게 콩국수는 선호하지 않는 음식일 수밖에 없었다. 나와 같은 어린이 입맛을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히 콩국수라는 이름만 듣고로 입술 양끝을 아래로 쭈욱 내릴 거다.


그런 내가 어떻게 매년 콩국수를 먹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되었을까?

얼떨결에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게 되면서 점점 뱃구레가 커지고 입맛이 변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살을 좀 찌우려고 해마다 보약을 해먹이고 끼니때마다 한입이라고 더 주려고 노력할 때는 번번이 실패했는데, 혈혈단신으로 혼자 살게 되었더니 절로 먹성이 좋아지고 살이 찌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단 한 번도 아침을 거른 적이 없다. '학교에 결석하지 않는 것'과 '반드시 아침을 먹는 것'이 엄마의 철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활을 하다가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혼자 살다 보니 시간 맞춰 회사에 가기 바빠 아침을 챙겨 먹을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점심을 엄청나게 많이 먹게 되었다. 친구들과 저녁약속이 없는 날에는 저녁을 부실하게 먹을게 뻔하니 본능적으로 점심을 더 잘 챙겨 먹었다. 


7년간 다닌 나의 첫 번째 회사는 고직급이 많은 역피라미드형 기업이었고, 남자와 여자 비율이 7:3 정도로 남자 직원이 많았다. 점심은 팀원들끼리 같이 먹는 분위기였고, 메뉴 결정권은 대부분 팀장님에게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하다 보니 태어나 처음으로 매생이국을 먹어보고, 육개장을 바닥이 보일 때까지 긁어먹고, 추어탕을 찾아먹게 되고, 동태찌개를 코를 박고 먹게 되었다. 한 순간에 사람 입맛이 이렇게 변하다니, 참 신기했다. 엄마가 십여 년간 먹인 입맛 돌게 하는 보약의 효과가 이제야 나타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 무렵 나는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다니는데 큰 재미를 느끼고 있었고, '줄을 서지 않고는 먹지 못하는 콩국수'는 과연 무슨 맛일까?라는 호기심에 진주회관을 찾아가 보게 되었다. 그리고 걸쭉한 국물을 한 입 뜨자마자 '이거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콩국수는 걸쭉하고 고소한 수프 종류를 좋아하는 내입에 의외로 딱 맞는 음식이었다. 너무나도 내가 좋아하는 맛인데 먹어보지도 않고 내가 못 먹을 음식이라고 단정 지었을까.  


그 이후로 나는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것에 더욱 거리낌이 없어졌고, 호기심이 강해졌다. 평양냉면의 매력에도 푹 빠지게 되었고, 슴슴한 이북식 만두의 맛도 알게 되었다. 도라지나물을 좋아하게 되었고, 호박쌈의 특별함도 느끼게 되었다.



덧 하나,

진주회관에서 콩국수 하나를 주문하면

그 어떤 고명도 올라가지 않은 콩국수 한 그릇과 김치 한 접시가 나온다. 반찬은 콩국수 한 그릇당 김치 한 접시가 전부다. 콩국수 맛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져서 좋고, 다른 맛에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콩물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진주회관 콩국수는 내 입에는 살짝 짠데, 함께 나오는 김치가 달아서 단짠단짠의 조합도 참 좋다. 


덧 둘,

어떤 콩국수든 설탕부터 한가득 넣고 보는 남편과 달리 나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콩국수가 좋다.


덧 셋,

11시 반쯤 가게 앞에 도착했는데 먼저 온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일행 다 오신 분~"하고 주인아주머니가 말했다.

줄을 먼저 서있어도 일행이 다 오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시스템이다. 

그때 내 뒤에 서있던 아주머니가 말했다.

"저희 일행 다 안 왔는데, 그냥 들어가면 안 되나요? 다 와가는데~~~"

"아니 16,000원짜리 국수 먹으면서, 불어 터진 거 드셔야겠어요???"

불친절하게 톡 쏘는 말투에 너무 놀랐다.

너무 사랑하는 음식을 친절함 속에서 먹었다면 더 즐거웠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찰나

그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오~ 맛에 대한 저런 생각이 있어서 더 좋네~"하고 말했다.

욕쟁이 할머니 집이 흥행하는 이유가 이런 건가? 하고 피식 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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