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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 Sep 11. 2022

어긋남과 만남


추석을 사흘 앞두고 엄마가 계시는 요양원에 코로나 환자가 생기는 바람에 면회가 전면 금지되었다. 

서울에서 동생 식구들이 내려와 엄마 얼굴도 보고 친정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되어있었는데 섭섭한 기분이었다.

여름에는 코로나 급증으로 엄마와 여행이 무산되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화’다.

‘왜 하필이면 이때’

‘감염은 요양원 내부에서 일어나는데, 항상 환자의 가족을 통제하는가’

‘코로나 급증 시 선제적으로 노인요양시설 면회 통제 지침을 내리는데, 가족을 일체 보지도,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는 환자의 고립감은 무시되어도 되는가’



하지만 누구에게 화를 낼 것인가?. 요양원에다 화를 낼 수도 없고, 정부부처? 누구인지 모르는 담당자를 찾아내 따지기도 힘들다.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화를 내어야겠지만 어떻게? 쉼 호흡하고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노인은 감염에 취약하고 중증으로 갈 확률이 높아 위험하다.’



그래서 '화' 다음 감정은 ‘아쉬움’이다. 요양원에서는 엄마가 노래 부르시는 모습, 간식 드시는 모습 등 동영상을 보내왔다. 요양보호사님들의 애쓰심이 감사하다. 하지만 엄마 얼굴 한 번 보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어 많이 아쉽다.



동생은 오랜만에 아이들까지 대동하고 부산에 내려온다. 조카가 얼마 전 중요한 시험에 최종 합격했기에 마치 금의환향하는 느낌이다. 동생은 시가에 들러 시어머님 요양원에 들렀다가 친정에 올 예정이었다.

아마도 동생 마음은 친정으로 내 달리지 않을까.

멀리서 자주 오지 못하니 명절에라도 친정식구들과 엄마를 보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손녀의 얼굴을 못 알아보더라도, 돌아서면 까먹을 게 뻔하더라도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을 것이다.



엄마는 못보게 되었지만,

동생네 식구들과 둘리 언니 집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슈가 언니가 둘리 언니를 도와서 같이 음식 준비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슈가 언니의 시원하고, 맵싸하고, 얼큰한 음식을 좋아한다.

우리 큰딸은 이모의 해물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작은 딸 야무는 외갓집에 가서 이모들과 고스톱을 쳐야겠다고 했다. 비록 엄마를 보지는 못하지만 우리끼리라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축하도 하고, 재미있게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둘리 언니가 아무래도 코로나인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몸살기가 있어서 자가 진단을 해보니 두 줄이란다. 언니는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를 했고 내일 오전에 나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둘리 언니 집에서 밥 먹는 계획도 무산되었다. 

명절인데 동생이 서운하겠다 싶어서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는데 동생은 여러 가지로 번거로울 것 같다며 사양을 했다. 그리고 친정식구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날을 잡아 다시 내려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자고 했다.



계획대로 된 일이 없어 오전에 시댁에 다녀오고부터 계속 집에 있었다. 명절에 막상 한가한 시간에 놓이고 보니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글을 쓰려고 컴퓨터앞에 앉았는데 멍하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베란다로가서 청소를 한참 동안 하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동안 아이들은 게임을 하다가 안방 침대에서 잠이 들어있었다. 잠을 자기에는 방이 너무 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커튼을 쳤다. 치고보니 너무 어둡고 답답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 암막커튼은 4계절 내내 보라색이다. 그다지 인테리어에 신경을 안쓰는 지라 다른 커튼은 없다.  의자를 놓고 올라서서 커튼을 한쪽 구석으로 드르륵 밀었다. 커튼을 고리에서 떼내어 베이지색 안감이 밖으로 나오도록 돌려서 달았다.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다시 또 뒤집을 힘이 없어서 그냥 두었다.



땀이 삐질삐질 났다.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니 아이들은 일어났고 시간은 벌써 저녁 6시가 되었다.

저녁에는 매콤한 낙지볶음을 했는데 우리 네 식구만 오붓하게 먹었다. 먹성 좋은 큰딸은 연신 너무 맛있다며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입 짧은 야무도 잡채랑 낙지볶음 조합이 좋다며 칭찬의 말을 한다. 남편도 쩝쩝거리며 낙지볶음을 남김없이 비벼 먹었다.

가족들이 밥을 맛나게 먹으니 기분이 좋아져서 난 이렇게 말했다.

“그래 명절 끝에는 매운맛이 진리지”



이제 추석도 다 지나가고 있다. 이번 보름달은 해, 지구, 달이 정확히 일렬로 늘어설 때 뜨는 달이라 완벽하게 둥근 모양이라고 한다.

이런 달을 추석에 볼 수 있는 건 거의 100년만이라고 한다. 

해와 지구와 달은 수많은 어긋남을 되풀이하면서 각자 제 궤도를 돈다.

그렇게 돌다보면 언젠가 필연적으로 완벽하게 일직선으로 만나는 날이 온다.

우리도 그냥 각자 자신의 일상을 잘 살다보면, 코로나에 해방되고, 자유롭게 만나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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