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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후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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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 May 03. 2023

후회라는 카테고리 안에 책이 있었다.

그리운 할머니 손길




어제는 내 두 손을 잡으시면서 '이제는 니가 이래 많이 컸는데, 내가 언제까지 살라 카는지' 하시네요

내 잡은 손을 놓지도 못하면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혀지나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없던 일이 되나요

수많은 세월이 더 많은 시간으로 덮여도

변하지 않는 것들, 잊혀지지 않는다는 건

'가만히 있으면은 시간이 참 안가, 이제는 내가 뭐 잘 할 것도 없고.

이제 니를 몇번이나 더 보겠노' 하시네요

난 다시 일을 하러 가야 하는데

인생의 바쁜 시간이 지난 뒤에 남은 기억은 더 선명해진다는데

할머니 / 브로콜리너마저






우리들이 기억하는 할머니는 어떤 모습일까?

나에게 할머니는 잡은 손을 놓지도 못하고 사랑한다 또 사랑한다 말하는, 시간으로 덮여도 변하지 않는 마음이다.

‘브로콜리너마저’ 노랫말처럼.


순간, 오래전 일이 새삼스럽다.

외할머니 댁에 가면 나는 항상 할머니 옆에 붙어서 혼자 하는 가면 놀이를 했다. 할머니만이 유일하게 나를 이해하는 지지자였다. 사촌 언니 오빠들, 그리고 키 작은 동생들까지 그 틈에 섞이기엔 내 생각을 목구멍에서 뽑아내지 못해 후회로 남았다. 할머니 앞에서는 잘 나오는 목소리가 왜 안 나오는지, 그저 할머니 침대만큼 거리를 두고 어른스러운 표정을 짓고 그들을 지켜봤다. 침을 꿀꺽 삼키고 조잘거릴 타이밍을 찾으려 노력했다. 이내 하려던 말을 포기한 그 순간. 나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 언제나 하고 후회한 일보다 때늦은 후회가 만약을 낳는다. 저지르고 후회한 일들은 가끔 이불킥으로 끝나지만, 해보지 못해 후회를 반영한 삶은, 결혼 못 하고 죽은 처녀귀신처럼 과거에 미련이 많은 법이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무심한 듯 선명하게 주위를 맴돈다.


돌이킬 수 없는 일. 후회는 새로운 선택에 도움을 줄 때도 있는 법. 우연히 독서모임을 시작하고 첫 다짐은 이랬다. 음악이 끝나고 침묵이 시작되는 순간처럼, 내 인생을 돌아보면 독서라는 두 글자가 가장 큰 후회를 차지한다. 가끔 카페나, 미용실 무료함을 견디던 자리에서 눈요기로 시간을 때우거나,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며 몇 자 읽는 게 전부였다. 후회의 카테고리 안에 가두고 영영 그곳에 남겨 둔 채 또 다른 후회를 카테고리에 밀어 넣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데, 카테고리 하나쯤은 바로잡아보자! 학창 시절 독서를 열심히 하지 않은 죄를 서른여섯 엔 벗어보자! 마치 난 한치도 부끄럽지 않다는 낯빛으로 어색한 시간과 마주했다. 독서모임 사람들과 빙긋 웃으며 인사했다. 마치 어린 시절 어른스러움을 흉내 내던 미약한 기색으로.


퇴근길 편의점에서 4캔에 만원 짜리 수입맥주로 나를 대접하는 시간. 그 시간은 유일하게 나를 위한 대접이라고 안위하며 씁쓸한 맥주를 목에 넘긴다. 그렇게 맥주에 아낌없이 만원을 투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만원 어치 책을 사서 내 영혼에게 바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영혼이 충만함으로 차서 완전한 만 원(滿員)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시작도 하기 전에 설레 발 친다. 사실, 몹시 겁이 났다. 후회의 카테고리 안에는 해보지 못한 미련이 한가득하다. 막상 그 길은 가본 적 없어, 실패가 날 더 초라하게 할까 봐, 반쯤은 포기할 핑계를 찾았다. 한 발짝만 걸치고 발을 뺄 준비를 했다. 그래도 모임이라는 형식은 필요하겠지.


독서모임 책을 기회비용이라는 단어로 무장하고 바라본다. 돈 주고 사기! 그래야 읽을 나였다! 영혼에게 대접할 만원 짜리 책 한 권을 샀다. 마치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까만 봉지에 숨겼는데, 그걸 또 못 알아볼 까봐서 종종거리는 마음이었다. 투명한 비닐봉지에 옮기고픈 마음. 나는야 모순덩어리. 독서모임에서 산등성이를 넘어가듯 비장하게 한 권, 한 권 읽었다. 그러나 고비란 있었다. 여럿이서 하는 독서모임이라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벗어난 취향의 책을 읽고 있자니, 눈은 뜨고 있으나 마음이 동하지 않고. 다시 4캔에 만원 짜리 맥주를 홀짝이며 다음 책이 선정되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탈선하듯 마음이 삐걱거리고, 영 읽히지 않아 덮어둔 책을 바라보면 만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깝다는 생각을 물리치기엔 취향 저격 책이 딱인데. ‘엄마에게 물려받은 포기란 없다’는 정신을 이어받아 결국 일 년을 넘어 또다시 일 년의 반을 책으로 채우고 있다.


처음에는 쌓여가는 책을 바라보며 므흣했다고 할까? 운영 중인 카페에 손님들도 - 책 좋아하시나 봐요? 와~ 책 많다. - 묘한 뿌듯함과 이미 책 읽기를 정복한 것만 같은 착각에 이미 큰 키(CM) 어깨가 5센티미터 올라가기도 한다. 사람은 쉽게 바뀌는 것도 고쳐 쓰는 것도 아니라지. 책은 이상하게도 집 나간 정신을 돌아오게 하는데 특효약이다. 잠시 방향을 잃어도 다시 정신 들게 하는 묘약이니까. 이상한 허세로 나 자신을 감싸지 않아도 난 지금 책을 읽고 있고, 싫증은커녕 심지어 사랑한다. 어쩌면 할머니 집에서 침대만큼 거리를 둔 과거의 후회가 극복된 지는 모르겠다.


대학시절을 마지막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책 대출 기억은 소멸해 버렸다. 책을 빌릴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고, 애초에 독서모임을 시작한 이유가 더 이상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성장 자금을 내야 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도서를 구매했다.

독서모임 멤버 중에 스물여덟 살, 어리지만 성품이 올곧은 여자아이가 있다. 취향이 맞지 않는 책은 사지 않고 빌려서라도 가지고 오는 소신. 그 작은 아이는 나를 심쿵하게 했다. 쉽게 물어본 것 같지만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나는 현재 선명한 사람이니까! “도서관에서 책은 어떻게 빌려요?”

유레카. 나는 답을 얻었다.


거주하는 동네에만 이미 도서관은 여러 개 있고, 집을 기점으로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구축된 도서관이라니. 얼마 전엔 다른 도서관에 있는 책을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상호대출신청! 신기루 같은 시스템을 접했다. 도서관 출장 서비스 같다고나 할까? 도서관은 내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안정감과 평온함을 선사한다. 예의를 갖춘 고지식함이 아름다움을 품고 그 자리에 있는 들꽃과 같다.


오전 시간 도서관에 가면 망설이던 생각이 날개를 단다. 모퉁이마다 꽂혀 있는 책들이 가득하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가 읽기를 기다리는 300쪽 분량의 책들. 아직 가보지 못한 세상이 여전히 빼곡하다. 도서관은 반듯한 선과 논리의 영역이다. 논리적이지 못한 내가 논리를 품고 도서관을 나서면 발걸음에 힘이 붙는다. 출근길 음악과 자연이 주는 여백은 감성의 영역이다. 즉 내 영역이다. 자신감 충만한 감성이 논리와 만난다.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가능성을 바라보듯이 하늘을 바라본다. 가까이에서 가능성을 느끼는 일. 다시 살 수 있게 된 동력은 확실히 ‘책’이라는 사실이다.




책을 통해 과거를 떠올리고 글로 토해내길 한 해가 흘렀다. 글을 쓰면서 쩔쩔매던 경쟁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간 기분이다. 생각이 기발한 책을 읽으면 놀라움과 감탄 속에서 눈앞이 일시정지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할까? 급 좌절모드로 순간이동하고 만다. 흉내도 내보고, 표현과 단어를 훔치기고 하면서 옳고 그름 사이 눈동자가 흔들린다. 남의 생각을 꺼내 먹고 배탈이 나기도 하지만, 글쓰기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눈뜬 아침부터 잠이 들 때까지 희비가 엇갈린다. 스치는 문장을 메모장에 적고 눈이 부신 장면을 기록해 둔다. 하루 종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서 얘깃거리가 마구 솟아날 때도 있다. 마르지 않는 샘물은 없던가? 하루 새 샘물이 말라붙어 이젠 물기조차 남아있지 않는 날은, 글을 쓰기 위해 운동화 끈 질끈 묶고 산책을 간다. 귀차니즘을 물리친 선물처럼 동네 한 바퀴만 휘 걸어도 생각은 변한다. 사람들의 엉킨 모습에서, 자연에 눈부신 여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산책에서 얻은 말은 ‘사실 그대로’ 다. 경험하지 못함을 겪고 나면 사실이 된다. 의식이 워낙 많은 나인데, 산책을 다녀오면 더 부산스럽다. 휴지 한통 갖다 놓고, 맥주도 한 캔 곁에 두고, 아주 작정을 하고 과거의 나와 마주한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산으로 모니터를 째려보아도 차려진 밥상에서는 월척이 없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

아픔을 쓴다는 것은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더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에 사는 나와 가까워진다. 나에 대한 애정이고 미래를 그리는 일이다.


나는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듣다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감동으로 목도할 때면 그 순간 가던 길을 멈추고, 화면을 정지시킨다. 시선도 생각도 일시정지다. 이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서 일 테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이젠 기록까지 더해져 하루가 좀 더 늘어진 느낌마저 든다. 후회로 잠 못 드는 날들이 줄었다. 꿀잠이란 뜻이다.

글쓰기를 위한 산책을 하고, 우리말 사전을 찾아본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생각이 많아, 머릿속이 평화롭지 못한데 일상이 더 복잡해졌다. 그래도 잠을 잘 잔다니, 글쓰기는 몸과 마음을 정리 정돈하게 한다는 해답을 얻은 셈이다. 내 영혼에 길을 내고 매만지는 일이 버겁지만, 분명한 건 또다시 찾아올 갈림길에서 보다 좋은 결정을 하게 해 줌에는 틀림이 없다.


만약에.

책 읽기가 처음이라 창피하다는 이유로 독서모임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저 아직도 만약에 라는 합리화로 나를 너그러이 용서했다면,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겠지. 과거에서 허우적거리며 다 마셔버린 맥주캔을 바라본 채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했을 나.


언제나 눈물이 막아섰던 속내를 곧고 바르게 쓴다. 작정하고 휴지를 대령한다. 이젠 휴지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과거를 글에 옮겨 심고, 묻힐 뻔한 빈칸을 빼곡히 채운다. 눈물로 수분 공급한 지난 시간 글을 쓰며 난 비로소 현재에 산다. 포기하려는 순간 핑계가 아닌 방법을 찾는다면 아름다움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오늘, 할머니 손길이 그립다



애정하는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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