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봉과장에게 고한다.
월월화수목금금. 이제 막 면허를 딴 병아리 디자이너의 요일표. 적어도 라떼는 그랬다. 잘못 자리 잡은 관습을 훈시하며 창작을 요하는 아이러니. 야근야근 열매를 갈아먹고, 험난한 도로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운전석에 앉아있지만 디자이너로서 지속가능성을 날마다 고민했다.
그날도 낯선 지역 외근 중에 벌어진 일이다. 새로울 것 없는 뻔한 현장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평평하게 쌓여있는 각진 목재 위를 밟았을 때 모난 서로를 저항하며 미끄러지고, 174센티의 몸은 중심을 잃고 빠른 시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비명과 함께 재빠르게 발목이 부어올랐다. 발목이 문제가 아니었다. 창피했다. 창피함도 잠시, 현실은 실측(측량) 후 도면을 그리기에도 시간이 빠듯했다. 회사로 복귀해서 자로 잰 공간을 2D로 그리고 디자인 초안을 잡아야 집에 아니 병원에 갈 수 있다. 병원에 갈 시간 따위는 없다. 사정은 사정이고 맡은 업무를 끝내야 한다. 칼퇴는 가뭄에 콩 나듯 했고, 퇴근하면 다시 출근하기 위해 잠자기 바빴다.
일을 마친 후 구석진 사각지대 봉과장 자리로 쩔뚝거리며 걸어갔다. 변변치 못한 발걸음으로 여차저차를 미리 설명했다. 외근 보고서와 함께 이러저러한 설명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슬아슬했다. 애초에 걱정은 바라지도 않았다. 병원에 들러서 사무실에 복귀했어야지 칼퇴근 하려고 이제 말하는 거냐는 인간의 필터링 없는 대사에 따옴표를 아니 쌍따옴표를 찍어야만 했다. 눈앞에 하아얀 a4용지가 여기 있다고 손짓했다. 빠르게 한 장을 집어 ㅅ으로 오른손이 시작을, 왼손이 마지막을 처리했다. 하얀 종이를 사각지대로 날렸다. 의지를 꾹꾹 눌러 무겁게 적은 한 장의 종이는 한없이 가볍게 봉과장 책상에 닿았다. 글자는 나풀나풀 날아서 초라한 악(惡)이 담긴 필(筆). 그렇게 사직서가 제출됐다.
트렌드 하지 못한 어린이로 나 자신을 기억한다. 나는 오히려 어릴 때 의젓했다. 그저 조용하고, 눈물이 날까 비겁하게 말을 삼키는 키만 커다란 아이였는데, 자꾸만 주변에서는 어른스럽다고 했다. 어른스러운 옷으로 몸집을 키운 이유는 엄마였다. 노상 시끄럽고 문제 많은 집구석에서 나라도 의젓해야 했다. 도망갈 것 같았던 엄마, 그 한 가지 때문이었다.
글을 쓰면서 요즘 트렌드가 아니라는 말에 자꾸 ㅁ을 지운다. 예를 들면 신성 그리고 경건, 이 자체로도 의미는 통하는데, 나는 자꾸 신성함과 경건함이라고 쓴다. ㅁ을 덧붙이면 반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트렌드가 아니라는 그 말 때문인지 책을 읽을 때마다 ㅁ에 시선을 빼앗긴다. 여기저기 ㅁ이 눈에 치이고 밟히고 굴러다닌다. 네모 반듯하고 빈틈없는 단단한 ㅁ이 좋아, 생김새부터 합격인 ㅁ을 다시 줍는다. 평생을 트렌드에 쫓기며 살아서 그런지, 돌고 도는 트렌드가 요즘이라는 시대를 얻으면 골치 아프게 피곤해진다. 구속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언젠가 트렌드로 돌아올 ㅁ을 다시 적는다. 비겁함을 집어삼키고 트렌드를 쫓은 많은 사건들이 있는데, 그 여러 가지 사건들 중 하나는 내 인생 첫 쌍따옴표의 순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 일이다. 아주 강력하고 짧은 냄새의 기억이기도 하고, 그 냄새 때문에 기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비록 눈물은 났지만 삼키지 않았던 목소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한옥집 앞뜰에는 늘 같은 냄새가 났다. 개가 먹을 죽을 쑤는 냄새, 인간이 먹다 남은 음식을 한 대 섞어 끓여 내는 냄새를 어렴풋하지만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니, 영영 잊지 못하고 그 냄새는 이따금 씩 기억의 잔상과 함께 나지막이 풍겨온다.
깐돌이는 까아만 눈 위로 하얀색 점이 박혀있어 네 개의 눈으로 집을 지키는 영특한 개였다. 그저 인간이 먹다 남은 쓰레기를 주는데도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대며 충성한다. 맛있는 음식을 깐돌이와 나눠먹을 때 하얀 점이 표정처럼 동그랬다 반달이 됐다 했다. 하필 할머니한테 들키면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개를 준다고 욕을 벌었다.
삼복 중에 가장 덥던 어느 복날, 동네 할아버지 몇 사람이 환한 대낮에 깐돌이를 죽였다. 할머니는 하도 더워서 깐돌이가 집을 나갔다고 했다. 나는 그때 처음 ‘야만에 대한 혐오’를 막연하게 느꼈던 것 같다. 사람이 먹을 음식을 깐돌이에게 준 나 때문인 것 같아 이상한 미안함과 화가 동시에 일었다. 어른스러운 옷을 입고 눈물을 삼키기 위해 침을 삼켰다. 그렇지만, 그렇다 한들 울지 않을 도리가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참을 수 없는 멍울을 토하듯 분명히 천벌을 받을 거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없던 일이 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다. 깐돌이를 지켜주지 못한 무거운 마음이 그들의 마음에 옮겨 붙도록, 일어난 일 앞에서 한 번 더 말했다.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그 후로 할아버지들에게 한동안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길고 무더운 여름이었다. 더는 쓰일 일 없는 빈 밥그릇만이 툇마루 아래서 소리 없이 짖어댔다.
태어나 처음이었다. 눈물이 막아섰던 목구멍이 열리던 그 여름을 영영 잊지 못한다. 그 냄새는 이따금 씩 장소 불문 피어난다. 참고 참아 농도 깊은 짠 눈물이, 목구멍을 간질거리던 무언가가. 그렇지만 무엇인지 모르겠는 그 무언가가. 가슴에서 차오른다. 마치 비겁함에 숨지 말라는 듯. 그 무언가가 날 변화시켰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환한 대낮에 그날처럼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어쩐지 개 죽 쑤는 냄새가 풍겨오는 듯했다. 봉과장에게 -난 당신과 함께 일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말하고도 흠칫 놀랐다. 주변 사람들이 그대로 멈췄다. 수십 개의 눈의 중심에 있음을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동안 봉과장을 꾸역꾸역 견디고 있었다. 숨을 고르고 말했다. 병원이 끝나기 전에 가봐야겠다고. 쩔뚝이는 스텝으로 용기는 냈으나 별 볼일 없이 문을 나섰다.
승인해 줘야 진행될 모든 일을 미루고 미루느라, 그 일로 내부 직원들은 가뜩이나 많은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꾸역꾸역 견디던 시간을 봉과장의 실태 보고서로 채웠다. 큰 이유는 없었다. 애초부터 혹시 모르게 벌어질 일의 대비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수의 칼날을 갈며 언젠가 내가 봉과장 때문에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공개하리라 다짐하며 작성한 견딤 일지였다. 2013.03.03. 봉과장 1시간 부재, 2013.03.04. 옥상에서 광합성 중, 마감 일정으로 바쁜 날 도대체 담배를 몇 개를 피우는지, 휴게실에서 낮잠 중, 등등 불필요했던 시간들을 적고 그로 인해 야근했던 시간의 총합, 불필요하게 저녁을 먹은 법인카드 지출 내역까지. 사소한 일이 모여 무거워지도록. 바를 정(正) 자로 획을 채웠다.
사직서 제출 다음날, 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하루 뒤 정식 사직서를 제출하러 회사에 가겠다고 말했다. 반듯하게 예의를 갖춰 한껏 무겁게 치장한 사직서 한 장과 봉과장의 실태 보고서를 별첨부록으로 제출했다. 일을 할 수 없노라고 서류로 꼼꼼하게 말했다. 일주일 뒤 디자인팀에는 디자인 총괄팀장이 등장했고, 봉과장은 더 이상 자유롭지 못했다. 사건 그 후, 모두가 대단하다며 웃으면서 날 대했다. 마치 건들지 말자는 웃음 같았다.
‘예스’라고 대답하라는 관습 앞에 ‘노’라고 저항한다.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 나를 갉아먹는 좀이 되기 전에 쌍따옴표를 찍는다. 이로운 대화와 제안, 선언이 더는 특별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약자가 아닌 모두가 특별할 것 없이 자신의 목소리로 영역을 만들기를 바랄 뿐이다. 그곳에서 우리의 삶은 ‘보통’이어야 한다.
행복해 본 난, 결코 지지 않으려고 할 거다.
내가 되는 꿈 -최진영 장편소설-
내가 되는 꿈을 읽고 떠오른 생각을 글로 그렸습니다
나는 침을 뱉는 상상을 했다. 겨우 그 정도를 하지 않는 데에도 큰 다짐과 용기가 필요했다. '이제 이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눈치 보거나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졸업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다. 목구멍이 꽉 막혔다. 억울하거나 화나거나 슬픈데 그 감정을 참아야 할 때면 목구멍이 막혔다. 목구멍의 그것을 다시 삼키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감정은 잠깐씩 희미해졌다. P29-30
사전에 정의된 '마음'은 내가 생각하던 의미와 비슷했지만 아주 같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마음'이 무슨 뜻인지 알고 쓰는 걸까? 우리는 서로 다른 '마음'을 같은 글자로 쓰는 거지. 각자 다른 의미를 최대한 가까이 이어 보려고 계속 쓰고 말하는 거지. 그런데 어른들은 때로 내게 그 정도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나를 '몰라도 되는 존재'로 치워 버린다. p131
내 안에 갇힌 나를 꺼낼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나는 나겠지. 마트료시카처럼 너는 계속 나일 뿐이지. 죽기 위해 태어나는 것 같고, 이별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 같고, 포기를 위해 꿈꾸는 것만 같다. 가방에 국어사전이 있었다면 '허무'라는 단어를 찾아봤을 거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과 ' 허무'가 딱 들어맞는 단어인지 확인해 봤을 거다. p165-166
물이 물이 되는 정직하고도 허무한 광경을. 분노의 춤을 추는 비 내리는 바다를 정국이와 만나는 동안 행복해하던 이모를 떠올렸다. 할머니의 못된 말에도 꿈쩍 않던 이모를 이제는 볼 수 없는 걸까. 하지만 행복해 본 이모는 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이모는 정국이와 하나의 우산을 쓰고 해변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 봤으니까. p167-168
결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