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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 May 11. 2023

어쩌다 자영업자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그 누구도 나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언제나 스스로 올바른 정신의 세계, 몸과 마음이 긴장하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모두가 잠든 새벽 4시, 마치 수술을 집도하는 심정으로 앞치마를 경건하게 탁탁 털어 두른다. 열댓 평 남짓한 카페에는 정적을 깨는 음악이 있어야 한다. 그 음악에 기대어 샌드위치를 싸는 내가 있다. 언제나 5분만 더 자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나란 사람이, 샌드위치 단체 주문이 있는 날에는 알람보다 먼저 소스라치게 놀라 깬다. 제대로 밥값을 해야 하는지 무의식적으로 나의 몸을 깨우듯 자비란 없다.

      

머리에서 생각이 떠나지 않고 복잡할 때는 오히려 고단하지만 반복적인 일로 쉼을 불어넣는다. 정기적으로 쉼표를 보급하지 않으면, 별안간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기에, -숨이 마르다-고 느끼기 전에 정기적인 숨을 머릿속에 공급해야 한다. 야행을 즐기는 사람이 새벽 시간에 쉼을 찾게 될 줄 몰랐지만, 사방이 어두워서 가능한 일일 거라 가늠할 뿐이다.

     

인적 없는 텅 빈 거리가 시퍼렇게 밝아오기 직전의 시간이 꼭 그렇다. 후회와 잘못을 곱씹어 잘게 부수고 새 아침을 여는 자세로 식빵을 굽고 그 위에 소스를 바른다. 준비해 둔 채소를 순서대로 한 장 한 장 쌓고 포장한다. 어느새 4에서 출발한 분침이 9를 향해가고 있다. 샌드위치 한 개를 만들기 위한 시간은 2분 남짓, 하지만 대량의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시간이 무수히 편집되어 있다. 예약 시간에 맞추려면 1분, 아니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다. 시간을 한 시간씩 쪼개 샌드위치를 싸고 포장하고 사진 촬영까지 하려면 자동화 시스템인 양 일정한 간격으로 가내수공업을 연신 돌려야 한다. 음악의 템포가 메트로놈처럼 손이 지치지 않게 –착착착- 빠르기를 돕는다. sns에 업로드된 사진은 9에 닿은 시간만이 담길 뿐이다. 그 사잇 시간은 편집되었지만 매 시각 ‘쉼’을 섭취했던 나의 생각은 내일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단골손님 한 분은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난 사장님이 제일 부러워요.

결과물만 보았으니 그런 질문이 나오겠지.

중간 과정이 편집된 상황을 설명하기엔 손님과 나의 생각은 멀다.

미소로 화답하며 간격을 유지할 뿐이다.


지금은 단체 샌드위치가 제법 팔려나가는 카페이지만, 2년여 시간은 마치 한 장씩 날아오는 우편물 같았다. 펼쳐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봉투에 내일은 또 어떤 두려움이 담겨 도착할지 밤마다 아침이 까마득했다. 착착 쌓은 샌드위치의 수만큼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두려움이 겹겹이 포개져 날아왔다.




시간의 추가 그대로 멈춘 2년 전, 레지던스 호텔 사업을 준비할 때 일이다. 해도 해도 줄어들지 않는 일을 하루종일,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반복하면서도 심장이 뛰고 힘든 줄 몰랐다. 날씨도 시간도 모를 만큼, 스스로도 놀랄만한 열정이 계속해서 나를 이끌었다. 호텔에 머무는 당신의 하루가 달빛보다 빛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46 객실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인천지역에서 개인사업자로는 1호로 영업허가가 나왔던 그 순간, 그리고 첫 손님이 오던 그날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생생한 영화 한 편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조금 더 많은 수익을 바라고 떠난 이들과, 남겨진 이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타 회사와의 합병, 호텔 라운지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달 주위에 나타나는 동그란 빛의 띠’라는 의미를 담은 ‘문할로’에 홀로 남아 어둠을 밝혔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에 모두가 침묵했고, 하필이면 팬데믹 시국에 카페를 떠안았다. 한마음 한뜻으로 결속된 이들은 자본주의 앞에서 그리고 책임에서 멀어져 하나둘 그 자리를 피했다. 두려움이 날아오는 시간에도 최선을 다해 그 결과에 책임지기 위해 머리를 쉴 수 없었다. 합병된 회사에서 디자인 일을 병행하고, 룸 패키지 상품으로 피크닉 도시락을 제안했다. 맛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에게 세 번만에 채택된 게 지금의 샌드위치다. 


돌이켜보면 까마득한 그 모든 안간힘이 지나, 결코 망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자고 있는 이른 새벽에 수십 개의 샌드위치를 싼다. 나 자신에게 –너 정말 잘하고 있다-격려를 보내며 나를 용서하는 기분은 오직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는 그 시간이 와야 벅차게 느껴진다.


자영업자의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게으른 시간은 허용되지 않는다. 손에 물 마를 일 없는 그 축축한 시간이 쌓여 자비 없는 두려움을 헤쳐나갔는지도 모른다. 삶 또한 마찬가지겠지. 두려운 과거와 과감히 ‘손절’하고 완벽에 가까운 삶을 위해 끝없이 다시 도전한다. 두려움은 절대로 대항하지 말라는 듯 언제나 날 쓰러트렸다. 그때마다 몸을 일으킨 말은 ‘밥값’이다. 너무나도 명백하게 눈앞에 실재하는 이 현실 앞으로 나를 데려가 직면하게 한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두려움을 이겨낸 성취는 반드시 더 큰 위로를 준다. 시퍼렇게 번져 오는 아침, 샌드위치를 포개고 지난날을 잘게 쪼개는 새벽 시간엔 언제나 서늘한 위로의 맛이 났다. 순서대로 한 장 한 장 포개다 보면 어느새 완성되는 수십 개의 샌드위치처럼 그렇게 한 시절, 한 사건, 한 장면씩 무수한 변수를 껴안고 맨몸으로 뚫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직접 체험한 자영업자의 자세다.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포개다 보면 나를 용서할 수 있었고,

글을 쓰다 보면 더디나마 시간은 흘러가 주었다.


진실의 언어로 한 장 한 장 쌓아 만드는 지금 이 순간.

짧게 찾아오는 달이 지고 열정이 또다시 손짓하고 있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뀐 공간에 해가 떠오른다.


저는 어쩌다 자영업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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