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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Dec 17. 2024

존재감 있게 사는 비법

-리뷰와 에세이 그 중간쯤에 글

           




김선우 작가의 책, [0000] 속에는 ‘통장 잔고 0, 인간관계 0, 행동반경 0, 메신저 알림 0’의 삶을 사는 ‘지아’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이죠. 소설 속에서 존재감 0인 인물이 그 소설의 주인공이라니 아이러니합니다. 웹툰 작가인 지아는 우울하고 불행했던 자신의 성장 과정을 그림과 글로 풀어내며 버텨왔는데요. 불행이 살아가고 버티는 원천이 되었으니 그것도 아이러니합니다. 자신의 불행을 전부 팔고 난 지아는 매일 ‘0000’인 삶에서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편집자에게 원고 독촉을 받으며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지아가 죽습니다.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지아는 죽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줄 알았던 지아를 유심히 본 누군가가 있었는데요. 고양이 오후입니다. 심각한 분위기에서 저는 또 실소를 터트립니다. ‘오후란 이름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오전이었다면?’ 하는 생각으로 이어져서입니다(요즘 집중력이 영 좋지 못합니다.). ‘오후’는 왜 예쁘게 들리고 ‘오전’은 왜 촌스럽게 느껴지는 걸까요?           



고양이는 아홉 개의 생을 구슬 형태로 몸에 품은 채 태어난다고 해요. 고양이의 보은을 입은 사람에겐 다시 살아날 기회가 있답니다. 오후는 지아에게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죠. 인간을 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고양이에게 ‘인기척 없는 인간’은 놀라운 존재였던 겁니다. 오후에겐 아픈 전생이 있답니다. 오후는 지아의 도움이 필요해 저승으로 가기 전 몽롱한 상태의 지아를 납치해 중간 지대로 데려온 거래요. 그렇게 오후는 지아에게 존재감 없이 사물처럼 살아가는 방법을 훈련받기도 하고, 지아가 사이비 기 수련원에서 익혔던 기공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렇게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의논하다가 오후가 ‘지아의 존재감 없이 사는 비법’들의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        

  

자신이 죽었음을 알았을 때 이생에 대한 조금의 미련도 없던 지아가 오후와 대화를 통해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습니다. 그래서 지아가 이생으로 돌아와 존재감 100의 삶을 살게 된다는 해피엔딩은 아니지만요. 아마 만화를 다시 쓰며 지아의 통장 잔고가 늘었을 겁니다. 편집자나 독자들과 소통을 할 테니 인간관계도 0은 벗어날 겁니다. 행동반경도 늘어날 거라 확신하는데요. 아마도 지아가 ‘오후’를 생각하며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이 될 거 같거든요. 메신저 알림은 인간관계와 상관관계가 깊으니 아마도 0은 넘을 겁니다.         


       

김선우 작가는 완전한 존재감의 부재를 겪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희망을 말합니다. 나의 존재감을 찾는 방법은 결국 ‘관심’과 ‘사랑’에서 시작되는 거였어요. 완벽하게 혼자인 걸 즐기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저는 밥 먹듯이 “고독하고 싶다”라고 말해왔는데요. 막상 제가 [0000]의 상태가 된다면 완벽한 고독의 상태일 테지만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겁니다. 좋은 책을 읽고 신나게 리뷰를 썼는데 아무도 읽지 않고 아무도 댓글을 달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읽고 쓰는 일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꽤 오래 하겠지만, 영원하진 못할 거 같습니다. 나는 남의 반응에 그다지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 자부해 왔지만, 결국, 읽고 쓰는 일도 자기만족을 넘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인정받음으로 존재감 있다 느낍니다. 나무위키에서 말하는 존재감의 정의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느낌’인데요.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살거나,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일이 잘 진행된다면 그 사람은 그런 부분에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뛰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이 필요한 자리라면 그 사람은 정말 존재 자체로 도움이 될 수 있겠죠. 그 존재 자체 속에 그 사람은 외모로 인정받는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어떤 일을 해나가는데 ‘존재감’이란 녀석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게 됐는데요. 겨우 10~20%나 될 줄 알았던 존재감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보다 컸습니다. 나는 제법 인정 욕구가 강한 편이었나 봅니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고 싶고, 어떤 자리에 빠지면 아쉬운 존재이고 싶거든요.    

       

존재감을 키우는 방법은 뭘까요? 주인공의 존재감 없이 사는 비법이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으니 그 반대가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내가 가진 것들, 내 가족과 내 주변의 인연들, 내 일, 내가 살고 있는 집과 이 지구를요. 사랑의 시작은 ‘관심’ 일 겁니다. 내 주변에 ‘0000’의 삶을 사는 누군가가 없는지 살피는 일은 결국 나를 살피는 일이 될 겁니다. 림태주 작가님이 [오늘 사랑한 것]에서 말한 ‘삶의 연쇄’가 바로 이렇게 이어지는 삶을 말한 게 아닐까요?           

그러니 오늘도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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