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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리카부자언니 Sep 15. 2022

열둘. 우리 집에 사는 남편이 아닌 남자 (2)

내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은 C 아저씨 

여기서도 아줌마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가 정해져 있다. 

하나는 자식 이야기, 하나는 가사 도우미 이야기다. 그만큼 신경이 많이 쓰인다는 뜻이겠지. 


2년 만에 돌아온 집은 조금 낯설었다. 동그랗고 귀엽게 웃는 얼굴로 영어가 서툰 C 아저씨는 열심히 일을 하셨다. 이제 막 허리디스크 탈출 3개월이 지난 나는 20시간이 넘는 비행으로 상태가 악화되어 집에 온 지 2주 동안 누워 있기만 했다. 


“경험이 많으시니 알아서 잘하시리라 믿습니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당신이 우리 집에서 함께하는 동안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제 가족이 행복합니다.”


사실 이건 어느 조직에서나 통하는 진리다. 임직원이 행복해야 열심히 일하고, 오너도 회사도 행복하므로. 


세 달쯤 지나자 슬슬 마음속에서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불편한 감정으로 나타났다.

내가 집안일에 일체 관여를 하지 않으니 어느 순간부터 너무 일을 대충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청소를 한 것 같은데 왠지 청소가 안 된 이 느낌은 뭘까. 어느 순간부터 같은 메뉴가 반복해서 식탁에 오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집안은 점차 엉망이 되어 가는데 그의 퇴근 시간은 점점 더 늦어지고 있었다. 

7 시인 퇴근 시간은 어느 순간 8시를 넘더니 9시가 넘어도 가지 않았다. 내 거실에서 다림질을 하는 그를 보며 처음에는 안쓰럽다가 어느 순간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퇴근을 늦게 하는 사람에게 무언가 다른 일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 선반의 먼지는 뽀얗게 쌓아가고 어느 순간 그것을 직접 닦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지난 10년 간 단 한 번도 내 손으로 하지 않았던 일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항상 두 명의 사람이 팀으로 했다. 집안일, 요리, 아이들 돌봄을 나눠했기에 처음에는 한 사람이 하기에는 일이 너무 많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응당 해야 할 일도 시키지 못하고 마음고생을 했다. 지금도 9시 퇴근하는데 이 걸 시키면 대체 몇 시에 갈까… 


어느 날 그 모든 문제의 실마리가 풀렸다. 

남편의 테니스 친구들이 저녁쯤 우리 컴파운드로 방문했다. 그들이 시합을 할 동안 닭꼬치를 부탁했다. 그러나,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거의 3시간이 될 무렵, 닭꼬치 20개를 접시에 담아 가져왔다. 혹시 뭔가 문제가 생겨서 늦게 왔나 물어보니 그냥 시간이 많이 걸리는 메뉴라고 대답했다. 이미 손질된 닭가슴살로 야채를 끼워 오븐에 굽는 게 시간이 걸리나? 결국 다음 날 같은 메뉴를 같이 해 보기로 했다.  


이 아저씨 일 하는 방식이 참 독특했다. 모든 재료를 꺼내서 한 번에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이거 하나 하고, 냉장고 문 열고 재료 씻고 또 다른 재료 꺼내고… 재료 준비만 벌써 1시간이 다 되어 간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한 통에 붓고 양념을 한다. 그다음이 가관이었다. 그 쌓인 재료를 손으로 하나하나 뒤적이며 닭 > 뒤적 > 양파 찾아 끼우고 > 뒤적 > 피망 찾아 키우고 > 뒤적 > 토마토 찾아 끼우고 > 뒤적 > 고기 끼우고…. 옆에서 보는 내가 속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그렇게 간신히 5개를 꿰더니 오븐에 넣고 20분을 굽는다. 그리고 그 20분 동안 다시 꼬치 5개를 꿰었다. 너무 기가 막혀 화도 나지 않았다. 아… 일 머리가 없다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이렇게 일 하니 하루가 부족할 수밖에. 


결국 나는 이날 밤, 요일 별 업무 시간표를 짰다. 


“아저씨, 집에 일찍 가서 쉬고 싶으시죠? 그럼 이 시간표대로 하세요” 


같은 일을 묶어 비효율적인 시간을 줄였다. 결과적으로 퇴근 시간 전에 이미 일을 마쳤고, 점심 식사 준비 이후 2-3시간의 브레이크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후에도 나의 트레이닝은 계속되었고, 중간중간 여전히 내 속이 뒤집어지는 일이 생겼지만, 그래도 꾹 참았다. 다른 사람을 구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저 쪽 베닌에 있을 얼굴도 모르는 그의 가족들이 생각났다. 만약 그가 나이지리아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열두 번도 넘게 잘렸으리라.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합의된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긴 두 달의 여름방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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