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프리카부자언니 Sep 15. 2022

열셋. 우리 집에 사는 남편이 아닌 남자 (3)

내 마음을 부숴 버린 그 남자 



두 달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행복한 기분은 내가 부엌 바닥을 밟는 순간 날아가 버렸다. 


진. 뜩.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응? 


바닥 전체가 찐득했다. 싱크대 상/하부장은 얼룩으로 끈끈했다. 냉동실에는 유통기간이 지나 음식이 그대로 있었다. 거실 선반에 놓인 나무 장식품은 푸른곰팡이로 온통 뒤 덮여있다. 선반을 쓸어내리니 오랫동안 먼지가 붙어 끈끈하다. 


나와 아이들이 없으면 집에는 할 일이 없다. 대체 남편은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우리 남편은 성정이 물 같은 사람이다. 늘 차분하고 한결같다. 감정 표현이 매우 적은 사람이기도 하다. 냉정하게 보면 철저한 에너지 절약형 인간이다. 본인과 직접 연관되지 않은 일과 사람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자, 무신경한 차가운 사람이다. 음식이 맛이 없으면 잔소리 대신 그냥 먹지 않는다. 눈으로 봤을 때 이상하다 싶으면 젓가락도 대지 않는다. 본인 주변이 어지럽지 않으면 집이 더러워져도 굳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 


눈치가 빠른 이전의 집사님은 이런 남편을 잘 알고 파악했다. 좋아하는 메뉴 위주로 음식을 내고 알아서 잘해주셨다. 그런데 이 분은 안타깝게도 눈치가 없었다. 잔소리를 하지 않으니 본인 서비스에 남편이 만족하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반면 아저씨의 야근이 다시 시작되었다. 9시가 넘도록 집에 가지 못했다. 집 안은 엉망인데 아저씨의 퇴근 시간만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10시가 넘어도 우리 집 거실에서 다림질을 하고 계셨다. 

하.. 한숨만 나온다. 


방학 전 3개월 간 그와 호흡을 맞추면서 혈압이 오르락내리락했었다. 정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얼굴도 모르는 그의 가족을 위해 난 갖은 인내심을 쥐어짜 냈다. 지난 10년간 우리 집을 거쳐간 사람만 스무 명이 넘는다. 그분들에게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나의 깊은 인내심과 자비였다. 


푸른곰팡이가 있던 거실 선반을 닦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어딜 닦았는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푸른곰팡이가 잔뜩 낀 저 장식품들은 내 눈에만 보이는 모양이다.  음식물로 얼룩진 타일을 닦는 모습을 보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 절로 나왔다. 다 헤어져 간신히 엄지손톱만 하게 뭉친 수세미로 그 넓은 벽을 여얼심히 닦고 있었다. 며칠 째 빨래가 계속 쌓여서 물어보니, 세탁 세제가 다 떨어졌단다. 아저씨는 일주일에 한 번 기사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슈퍼마켓에 가서 식재료와 청소용품을 사 온다. 제발 마지막까지 기다리지 말고 반 정도 쓰면 새것 두 통 사다 놓으라고 말을 해도 귓등으로 가볍게 흘려듣는다. 재료가 바닥을 보이고, 내가 요청한 것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야 떨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그였다. 식탁에는 정체 모를 음식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웬만하면 음식 투정을 하지 않는 나 조차도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 달 동안 내 정신은 극도로 피폐해져 갔다. 


“아저씨, 제가 방학 전에 가르쳐 드린 대로 일 하고 계시나요? 왜 집에 늦게 가는지 궁금합니다.”

“가르쳐 주신대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제가 왜 늦게 끝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 3개월간 우리의 노력을 2개월 간 쉬면서 다 까먹은 거다.  지난 10년간 내가 처음으로 시간을 내 가르친 사람이었다. 한 순간에 내 모든 시간과 노력이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어 주셨다. 


방학 전에 구입해서 단 한 번 쓰고 그 후로 찾지 못했던 힙쌕을 빨래 바구니에 찾았다. 구글에서 사진까지 검색해서 보여주면서 찾아 달라고 했던 물건이다. 온 집안 다 뒤졌지만 찾지 못해 포기했었다. 그런데 어쩌다 빨래 바구니를 뒤집으니 그 안에서 가방이 나왔다. 

이게 왜 여기 있냐고 물어보니, 태연하게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다고 대답한다. 생각해보니 저 빨래 바구니가 바닥을 보이며 비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항상 마치지 못한 일감들이 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아이들이 잃어버린 온갖 것들이 다 들어 있었다. 모르면 물어봐야 할 텐데... 그냥 모르니까 안 하는 거였다. 


이제 더 이상 그의 가족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난 대체할 사람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의 가족들이 걱정이 되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그렇게 스트레트 받지 말고 잘라. 못 자르겠으면 끌어 안 든가. 그 나라 그 가족한테 기부한다고 생각해. “


그래! 기부한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저씨를 불렀다. 


“이제부터 하고 싶은 대로 하시고요, 대신 모든 일은 7시까지 끝내주세요. 성공하면 매일매일 추가 보너스를 드리겠습니다.” 


아주 고상하고 침착하며 가사도우미에게 1도 신경 쓰지 않는 남편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Are you crazy?”


그런데, 이틀 후 사건은 또 터진다. 


#책과강연 #백백7기 #아프리카부자언니 #아프리카생활 #아프리카 #최지영작가

작가의 이전글 열둘. 우리 집에 사는 남편이 아닌 남자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