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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리카부자언니 Sep 16. 2022

열다섯. 우리 집에 사는 남편이 아닌 남자 (완)

내 마음을 부숴버린 그 남자, 이제는 떠나보내다 


“일어나세요. 변하는 거 없습니다. 나가주세요.” 


아프리카 생활 12년 차. 처음에는 무척 놀랬지만 여기 사람들에게 무릎 꿇는 것은 일도 아니다. 상황이 조금 불리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무릎을 꿇는 게 다반사다. 그렇게 나는 C 아저씨 가족의 그림자를 끊어 냈다. 


다음 날부터 새로운 사람이 왔다. 중국인 친구가 소개해 준 20대 중반의 젊은 여자였다. 우리 집에서 일했던 사람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요리사 급은 아니지만 중국 사람들과 일 했기 때문에 아시아 요리를 할 줄 안다. 일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눈치껏 하더니 7시 전에 이미 모든 일을 마쳤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테이블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책장의 책마저도 가지런하게 정리해 놓았다. 입맛이 예민한 남편과 첫아이는 오랜만에 저녁을 배부르게 먹는다. 지불하는 월급은 줄었는데 기존보다 서비스 질은 올라갔다. 


지금껏 나는 높은 월급을 지불하고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을 뽑아 함께 일 해 왔다. 내가 가정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5년을 넘게 우리 집에서 함께하신 베테랑 집사님이 나를 대신해 집안의 모든 일을 맡아주셨다. 그분이 보조 도우미에게 일을 가르쳤고, 덕분에 내 손이 닿을 만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 드렸고, 매월 추가 보너스를 지급해 드렸다. 그분 아이 둘의 매 학기 등록금을 내 드리고 각각 아이들 이름으로 장학금 통장을 만들어 매월 그들의 미래를 위해 저축해 줬다. 업계 최고 월급의 두 배 가량을 지불했지만, 난 그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덕분에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워킹맘으로서 회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우리 가족의 행복도 없었을 것이다. 


이 시장은 유럽이나 미국 등 백인 가정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월급을 제공한다. 아시안 가정에서 지불하는 월급의 2-3배 정도 된다. 백인 가정은 매뉴얼까지 갖추어 놓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일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런 분들과 함께하면 기대 이상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C 아저씨에게도 그 수준을 기대하며 백인 가정에서 제공하는 수준의 월급을 드렸다. 더구나 최근 급락한 나이라를 감안하여 월급을 반을 달러로 지불했다. 실상 30% 이상을 더 버는 셈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별세하셨을 때는 한 달 중 3주의 유급휴가를 드렸다. 장남에 대해 예우였다. 그 결과 나는 월급 대비 한참 모자란 서비스를 제공받고도, 내 시간과 노력을 쓰고 온갖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그분은 내 뒤통수를 아주 시원하게 후려쳤다.  


그간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을 고용해 왔지만, 이렇듯 내가 직접 일을 가르치거나 애정을 쏟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마음고생을 하면서 사람을 쓴 적도 없다. 

도대체 나는 왜 그랬을까? 



첫 번째는 ‘그와 그의 가족이 걱정돼서’였다. 처음에는 정말 그랬다. 여기서 잘리면 어디로 갈까.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가족이라도 있지, 외지 사람이 대체 어디로 갈까.

 

두 번째로는 7년이나 우리 컴파운드에서 우리가 오기 전에 두 가족이나 함께했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일을 잘 못 할 것이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는 내 에너지와 노력이 들어갈수록 이 사람에 대한 애증의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가르쳤는데 일을 못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 하며 사람의 성향을 무시하고 억지를 부렸던 것이다. 


네 번째는 새로운 사람을 들이고 맞춰 가는 게 귀찮았다.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 와도 처음에는 내가 원하는 방향을 알려줘야 하는데 그것조차 싫었다. 더구나 더 이상한 사람이 올 확률도 50%가 아닌가. 그러면 다시 또 면접을 보고 테스트 기간을 갖고 맞춰가야 하는데 머리가 아팠다. 


마지막으로 괜히 '좋은 엄마/아내' 콤플렉스 안에 나를 집어넣었다. 이제 출근하지 않으니 괜히 한 번 집안일에 신경을 써 보고 싶었나 보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지만 스스로가 나를 전업주부가 응당해야 할 것들과 주변의 아줌마들과 비교해서 왠지 나도 이제 집에 있으니 좀 더 집안일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던 것 같다. 뭐 결국 잘 되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와 그의 가족이 걱정돼서’는 표면적 이유였을 뿐, 나의 게으름을 가려줄 핑계였을 뿐이다. 



아저씨를 보내고 내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더 이상 하나하나 손으로 가리키며 “여기 닦아 주세요,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하지 않아도 이미 집안은 깨끗하다. 입맛이 까다로운 남편과 큰 아이도 예전보다 밥을 더 많이 먹는다. 빨래를 조금 이상하게 개도, 이불 정리가 제대로 안 되어도 괜찮다. 일찍 일을 끝내면 내일을 위해 빨리 퇴근을 시켜주는 게 나도 마음이 편하다. 아직은 시험 기간이지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다른 곳에서 오늘 만족한 사람에게 약점을 찾아 불평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남편이든 아이든, 사람에게 완벽하게 만족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든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배웠고 한 뼘 더 성장했다. 감사하다. 



#C아저씨완결 #백백7기 #책과강연 #아프리카부자언니 #최지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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