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남자 부인 10년 차, 해외살이 하며 바라본 구수한 중국과 사람들
Happy Chinese New year!
웃으면서 Lunar new year이라고 알려 주지만,
이미 쪽 수와 빨간 데코에 밀린 나는 힘이 없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친한 친구 가족들과 중국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하며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다섯 가족이 모인 자리의 밥 값을 초대한 사람이 내고, 그게 당연한 문화.
마치 우리 아버지 세대를 보는 듯하다.
오늘은 아이들 학교에서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를 했고, 우연히 구정과 겹쳤다.
학교는 온통 중국을 나타내는 빨강 등 장식으로 덮여 있었다.
와... 대단하다.
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누가 나서서 저걸 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누가 한다고 모두가 나와서 다 같이 등을 달고 참여하는 모습은 더 인상 깊다.
중국 남자의 부인으로 산 지 10년 차 -
60%는 한국, 40%는 중국에 걸쳐 있는 나는
가끔 이런 <함께>의 힘이 놀랍기만 하다.
학교에 새로운 가족이 오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환영하고 진심으로 도와준다. 하루빨리 중국 커뮤니티에 흡수되어 편안히 생활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반면, 한국인의 모든 정 반대다.
일단 본다. 다가오지 않는 한 굳이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다. 철저한 개인플레이.
그 와 중에 회사를 가르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왕따를 시키고, 같이 다니면서 그 안에서 또 편을 나누고 뒤돌아 서서 험담하고...
막상 모아 놓으면 정말 잘하는데, 왜 튀는 꼴을 못 보는지 모르겠다.
사람 숫자도 손에 꼽을 만큼 적은데 그 안에서 뭘 또 가르긴 갈라....
우리 남편은 아직도 설이 되면, 일찍 퇴근해서 유튜브 실시간 라이브로 중국에서 하는 쇼를 본다.
가수, 서커스, 무용 등 다양한 중국의 문화가 담긴 쇼를 몇 시간이나 본다.
하루종일 이 것을 보면서 먹고 자고 하는 중국의 문화를
아직도 여기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친한 친구들과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시며 몇 시간을 보낸다.
음... 내가 어디 소속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이 모여서 떡국을 먹고 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본 것 같다.
(일단 누가 떡국을 할 것인가.. 누군 집에 모일 것인가... 다같이 만드는 것도 귀찮고.. 우리 가족 먹을만큼 하는 것도 힘든데 굳이..?)
배추의 영어 이름은 Napa cabbage 다. 그러나 난 조만간 이 정식 이름이 Chinese cabbage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람들이 김밥을 보고 스시 라고 하듯,
보이는 것을 믿는 대 다수의 사람들의 눈에는
수많은 아시아 중 무언인가를 그룹 지어하는 중국밖에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아마 지금의 어린 친구들은 우리 세대와는 다른 시대를 살 것이다.
한국의 어린이들은 커서 지금보다 더 철저히 개인주의로 살아가게 될 것이고,
중국의 어린이들 역시 부모세대와는 다른,
어쩌면 지금 한국의 우리 나이대의 중간쯤의 개인주인-단체주의의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시골에서 자라 품앗이하듯 육아를 하고
(어릴 때 우리 동네는 문을 잠그는 집이 하나도 없었다. 동네에서 유일한 양옥집에 살던 나는 겨울이면 내 친구네 집에 가서 아무도 없는 친구 할머니 방에 들어가서 온돌이었던 그 집 아랫목에 누워 등을 지지곤 했으니까. 그 때 내 나이 5살? 7살?)
그리고 아버지는 무조건 친구들에서 밥이든 술이든 쏘셨다. (이제 거의 70이 다 되셔서 자금이 빠듯해진 최근에야 이 습관을 고치셨다...)
또한 나 때는 보증 빚을 얹는 아빠들이 수두룩했다. 그만큼 친구 아이가... 중요했던 거겠지.
가끔은 그런 풍경들이 정겹게 느껴지고 그립기도 하다.
그리고 그 애틋함을 남편과 남편의 친구들 관계에서 찾는다. 진심이 느껴지는 관계.
여기서 만난 한국인과의 관계가 인스턴트 라면이라면
중국 사람들과의 관계는 손으로 반죽해서 먹는 수제비 느낌이랄까.
여기서 죽고 못 살 것처럼 같이 다녀도, 한국 가면 쌩 하는 걸 너무 많이 봐서.
반면,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중국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고맙고 부러울 때가 많다.
음..
저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입니다만,
가끔은 이런 구수한 중국인들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