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 중에 일본살이
로망의 마당 있는 이 층집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
남편 직장이 옮겨가게 된 것이다.
외국인 회사는 M&A가 심했다.
같은 회사가 이름만 여러 번 바뀌었다.
"남편 회사 어디 다녀요? "
"뭐더라, 회사 이름을 모르는데요."
외국어 이름인데? 수시로 바뀌는 데? 그걸 어찌 외우죠?
3년 주기로 계속 팔고 사고, 그것도 한 파트만 팔고 넘기는 경우도 있고 회사 전체를 병합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의 글로벌 회사 경영은 거대 우주가 무수한 수학, 과학 공식으로 흐르는 것 같아 내 머리로는 이해불가다.
당근에 물건 하나 내다 팔려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한두 푼도 아니고.
큰딸은 프랑스 유학 중이었고, 둘째 딸은 갓 입학한 대학생이기에 서울에, 막내딸만 데리고 짐을 쌌다.
일본어는 1도 모르는 상태.
간판을 보며 저게 뭔 말인고? 이건 뭔 말이유?
느닷없는 문맹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처음 이사 간 곳은 우리나라의 충청도쯤 되는 지방 소도시.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내 인생 로망이었던 마당 있는 이 층집.
무엇을 더 바라랴.
가게 된 곳에 맨션(일본에서는 한국형 아파트를 맨션이라고 부르고 , 아파트는 서민용 임대 아파트 같은 작은 형태의 건물이다)이 드물어 주택으로 입주하게 된 거다.
와아, 서울이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다.
앙징맞은 인테리어 소품 같은 대문, 대문 옆 기둥에 중학 시절에나 봤던 주택의 추억의 명패,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작지만 잔디 깔린 마당, 마당 옆 주차장, 유리창이 있는 현관문, (어머나, 크리스마스에는 현관문에 리스를 달아놓을 거야)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나무 마루 복도 그리고 이층 올라가는 목조 계단.
아기자기한 구조에 얼굴 가득 미소 장착이다.
꽃을 너무 좋아하지만 꽃 이름을 모르고, 소나무 외엔 아는 나무가 없는 짧은 지식(아니, 무식)의 식물 사랑꾼인 나는 일단 계절마다 꽃을 심고, 또 심고 심어댔다. 다년초 일년초 구분 없이. 뭐가 뭔지 모르니까.
그런데 제일 골치는 여름이면 쑥쑥 올라오는 잡초였다.
여름이면 한 달에 한 번은 정리를 해줘야 하는데, 마당 잡초뿐 아니라 집주인이 울타리따라 심어놓은 꽃나무도 정리를 해줘야 옆집 담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다.
남편이나 나나 생전 잡초를 뽑아봤나 뭘 해봤어야 알지.
그래도 내가 낫다는 걸 아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마당 잡초 소탕의 날, 결전의 장비
머리에 그물망이 늘어진 모자 (안 하면 목에 달려드는 모기떼에게 수백 마리 분 헌혈함, 귀도 물리면 그 오묘한 가려움에 진저리를 쳐야 함)
목에 땀수건(이거 준비 안 했다가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에 눈이 따가워 혼난 이후)
긴바지 긴 팔 옷(모르고 덥다고 반바지 입고 영화처럼 랄랄라~하면서 잠깐 풀 뽑다가 팔다리 온 전신에 오백삼십팔 개의 팥알 크기 붓기 올라오고 가려움에 모기약 처덕처덕 바르고도 오징어처럼 꼬며 뒹굴었음)
장갑 필수(손가락 물려봤나? 그곳 모기는 틈새 1미리만 보여도 내 피부 집착 스토커 귀신)
1리터의 얼음물(일본 여름 한낮의 폭염은 일사병 직행 티켓임 )
모기향 다섯 군데 여기저기 피워놓음 (대신 일 끝나고 나면 전신에서 담배 쩌든 할아버지 냄새 남)
준비 완료.
"여보~ 나 얼음물 갖고 나갈 테니 먼저 나가서 큰 잡초부터 뽑고 있어."
바로 뒤쫓아 나갔는데,
“ 어머낫! 여보, 뭘 뽑은 거야? 이걸 왜 뽑아? 이건 며칠 전 사다 심은 꽃이잖아! 아니, 어떻게 그래도 그렇지,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이 나같이 서울 토박이에 밭 구경도 못 해본 여자만큼도 구분을 못해? 어쩜 좋아, 정말 , 미치겠네... 어떻게 꽃인지 잡촌지도 구분을 못하냐. 엉?”
속사포 기관총을 쏘아댔다.(기관총이 옆에 있었으면 그날 난 아마.)
옆에는 든든하고 잘 생기고 키 큰 꽃 한 다발이 화사한 표정으로 장렬히 전사하여 팽개쳐 누워 계셨다.
그 후로 남편에게 마당 식물 분포 지도를 그려주고, 이쪽은 당신이 번 돈 주고 사다 심은 것, 저쪽은 건드리면 집주인에게 배상 소송 들어오는 중요 식물 등등 슬기로운 마당 생활, 알쓸신잡 생활 교육을 실시했다.
일본살이는 이렇게 서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