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자라 버린 손주
"할머니~"
우리 손주들이 여기에 있을 리 없음에도 자동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난 할머니다.
손녀가 셋에 손자가 하나다.
친정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 아이들은 외할머니 사랑을 모르고 자랐다. 친할머니라도 할머니의 사랑을 느꼈으면 좋으련만, 시어머니는 안타깝게도 밭에 나가 뭐라도 거두어 장에 내다 팔아 푼돈 버는 일을 사명처럼 생각하고, 일 자체가 목표고 삶의 목적인 분이었다. 형편이 어렵지 않았음에도 그러셨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때 친정 엄마가 곁에서 산후조리도 해주고 가까이 살며 손주들도 자주 보고 싶었는데, 손주들이 태어날 때 우리 부부는 일본에 있었다.
수시로 한국을 드나들며 손주들을 자주 보았지만 같은 한국에 사는 것처럼 충분하지 못했다.
우리 부부가 다시 한국으로 왔을 때는 이미 손주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였다.
남편의 정년퇴직으로 한국에 돌아온 후, 한 달에 하루는 손주들과 할머니가 함께 하는 '할머니 집 스테이"를 하자고 했다. 손주들을 데리고 자고 싶었다. 딸들도 대환영이었다.
손주들은 신나 했다.
친정에 아이들을 맡기고 두 딸은 바로 자기 집으로 갔고 일박 이일의 휴가를 즐겼다. 딸에게 육아로부터 휴가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친정엄마로 뿌듯했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 그랬다. 하루라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친정이 있었으면, 친정엄마에게 한두 시간 맡기고 잠시 쪽잠이라도 잘 수 있다면 하고 얼마나 바랐던지.......
아이들은 할머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흥분했다. 사촌들을 만난다는 기쁨과 집이 아니 곳에서 잔다는 것에 체험 학습온 것 처럼 환호했다. 왜 안 그렇겠나. 엄마 잔소리 안 듣고 온전히 오냐오냐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왔으니 말이다.
아이들에게 미리 뭘 먹고 싶냐고 물으면 "할머니 표 김밥~" 이구동성이다. 이 흐뭇함이란. 하하하.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게 만드는 것이 김밥이다.
요리 실력이 없는 할머니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주는 손주들이다. 아이들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김밥을 준비해 놓았다.
아이들이 도착하면 바로 키재기.
한여름 소나기에 쑥쑥 자라는 풀처럼,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라 한 달 만에 재도 달랐다. 손자는 헝겊으로 된 기다란 뱀인형을 들고 오는데 이름까지 지어준 뱀의 키도 재달라고 한다. 그 뱀인형을 몇 년 더 들고 다니더니 4학년쯤인가부터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
아이들이 먹고 뛰놀고 그림 그리고 색동이 접기에 쉴 새 없이 깔깔거리며 몰려다니며 온 집안을 휘젓는다. 종류도 다양한 놀이를 끊임없이 생각해 내고 놀다가 갑자기 이불을 꺼내달라고 한다.
집짓기 놀이다. 아이들은 동서고금 책상 밑, 옷장 안 등 작은 비밀 공간을 좋아한다. 식탁과 의자를 이용해 담요와 수건 등으로 텐트를 치고 베개를 쌓고 아지트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뭔 말인지 재잘재잘, 깔깔거리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듯하다.
할미인 나는 수시로 물이며 과일이며 과자를 간식으로 내놓는다. 지들 입맛에 당기는 간식이 나오면 우르르 몰려와 메뚜기떼처럼 삽시간에 접시를 깨끗이 비워놓고 다시 놀기에 집중한다.
저녁을 먹이고 한 명씩 씻긴다. 다 큰 손녀도 샴푸며 몸도 닦아달라며 어리광이다. 오랜만에 할머니가 샴푸 해주면 시원하단다. 아이가 셋인 딸이 일찍부터 각자 샤워하게 시켜서 어려서부터 스스로 닦는 것이 몸에 밴 손녀는 오랜만에 응석받이가 되어 좋아라 한다.
나 역시 손주들 닦아주며 행복하다.
거실에 이부자리를 펴고 나까지 네 명이 눕는다.
자기 전 그림책 읽어주는 것이 의례인데, 아이들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할머니가 들려주는 그림책을 열심히 듣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단잠을 자고 다음날 아이들은 기분 좋은 아침을 맞는다. 일어나서부터 또 놀이를 시작한다.
하루 일정을 꽉 차게 보내고 오후에 두 딸이 아이들을 데리러 온다.
더 자고 가고 싶다는 아이들을 보내며 몸은 파김치이지만 마음은 뿌듯하고 행복한 할머니가 된다.
그렇게 약 일 년을 보내고 둘째 딸이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아이들의 '할머니 집 스테이'는 끝났다.
일 년 후 딸 가족이 돌아왔는데, 둘째 손녀는 키가 무려 11cm나 자라 있었다.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들 학원이나 교육으로 할머니집에서 일박하는 행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더 데리고 자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그즈음 도서관에서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이 생겨, 그때 기억을 더듬어 그림책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이다. 그림책이 나오자 벨기에에 사는 큰딸에게 부탁하여 불어, 영어, 한국어로 낭독하여 영상으로 남겼다. 흔쾌히 낭독과 녹음해 준 사위와 딸이 고맙다. 가끔 들어보는 데 들을 때마다 행복하다.
아이들을 길러보면 유아기 때 기간은 정말 시간이 느리다. 언제 크나 하다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갑자기 세월이 빨리 흘러 어린이 티를 벗고 허물 벗듯 청소년이 되어버린다.
손주들이 어릴 때 더 많이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추석에 아이들이 온다. 고등학생이 된 큰 손녀와 중학생, 초등학생인 손주들이 북적대며 모처럼 시끌벅적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