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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속 터져 돌아가심

오늘은 연 속 세 번.


1) 오전

"여보, 안과에 내가 전화 건다. 걸어?"

"응."

"여보세요~ 안과죠? **일 백내장 수술받은 000 씨 아내인데요. 내일 검진 일을 모레로 바꿀 수 있나요?"

"네, 감사합니다."


이를 닦고 나오는 남편.


"병원에 전화했어. 예약 일 바꿨어."

"내가 아침에 했는데."

"잉? 전화하라며?"

"내가 했다고 했잖아."

"언제?"

'.......'

알았다.

남편은 또 못 듣고 대답한 거다.

"제발 질문 문장이면 바로 응, 좀 하지 마."

"못 들었다고 하든가, 다시 말하라고 좀 하든가, 질문 내용을 이해한 후에 대답해."




2) 오후

올해 사과 대추가 풍년이다. 해서 옆집에 나눠주려고 갔더니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 문 앞에 두고 왔다.

"여보, 저 옆집에 전화해서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어서 대추 문 앞에 놓고 왔다고 해줘."

이곳은 남편 고향인 탓에 아내인 내가 나서기보다 남편이 이웃들과 소통한다.

"응."

다른 일만 하고 있다. 전화할 기색이 안 보인다.

혹시, 또?


"여보, 내 말 알아들은 거야?"

"......."

"전화했어?"

"응?.... 뭐?"

......

"옆집에 전화해서 말해 달라고."

"당신이 전화했다는 줄 알았지."

"잉?"


아침엔 '전화할게'를 '전화했냐'로 알아듣고 지금은 '전화해 줘'를 '전화했다'로 알아들었구나.



3) 이어서

남편은 전화를 한다. 그쪽에서 안 받는지 그냥 끊는다.

바로 전화가 온다. 옆집인 듯하다

"여보세요? 어디 가셨었어요? 대추를 문 앞에 갖다 놓았어요. 네, 잡숴 보세요."

(내가 옆에서 작은 소리로 씻은 거, 씻은 거 한다. 대추를 씻었으니 그냥 드셔도 된다고 전하라는 이야기다. 내가 씻는 것을 남편도 봤기에.)

"씻어서 드세요."

헐.

"아니, 씻은 거니까 그냥 드셔도 돼요."

결국 내가 나서서 전화기에 들리게 큰소리로 말했다.


못 들어.

안 들어.

근데 문맥상 알아듣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이해하는 센스가 꽝이야.

근데 못 알아들으면 꼭 남 탓이야.

고집 쇠고집을 부려

자긴 알아들었던 거래.

신기한 것은 돈 이야기와 각종 스포츠는 바로 알아듣고 꿰뚫어.


내가 이렇게 흥분하며 외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수십 년을 반복되는 패턴이기 때문이다. 왜 난 40년이 지나도 적응이 안 될까? 왜지?


아, 그렇구나. 소싯적 남편은 약 20년은 자는 시간 외엔 집에 있던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그 후 20년은 집에는 제시간에 들어왔어도 귀가 후 밥, 바로 소파에 누워서 TV 시청하다가 자는 게 하루 일과였으니, 나와 이야기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없었다. 정년퇴직 후 하루 24시간 집에 있게 되었고, 이렇게 말을 제대로 안 듣고 아무 말 잔치 대답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거다.



나 지금 스팀이 끓어오르고 있다.

오늘따라 연속 세 번이다.

그래, 오늘 내가 집에 있어서 자꾸 얽힌 거네.

매일 나가니까 이럴 일이 드물었지. 내가 매일 나가야 하는 이유야.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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