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인 듯 귀농 아닌
사과대추가 열렸다. 4년 만에 풍년이다.
이곳에 와서 심은 100그루의 사과대추나무. 농사의 ‘농‘ 자도 모르는 우리 부부가 땅을 관리하려니 뭔가를 심어야 한다고 해서 택한 것이, 가장 손이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과대추나무다.
일 년에 비료 두 번, 농약 두 번 만 치면 되고, 가지치기 한번 해주고 풀 한 번만 깎아 주면 된다고 했다. 근데 말이 그렇지 시골 촌사람 출신인데도 잡초 풀 한 포기 어쩌지 못하는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농사에 진짜 왕초보‘ 남편에게는 ’ㅇㅇ만'이 'ㅇㅇ만'이 아니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남편이 대추밭에 나가려면 자외선 차단제를 시작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무장하고 나간다. 온몸에 비지땀을 흘리며 비료치고 (어째 통을 멘 폼부터 이상하더라), 풍전등화 나라를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농약 한 번 치는 날이면, 신줏단지처럼 아끼는 자신의 몸을 위해 사나흘을 애달파한다.
반면 친구들을 만나면 엄청난 농사일을 하는 듯 귀농 농부 행세에 허세를 부린다.
첫해에는 그럭저럭 먹을 만큼은 열렸다. 아삭하고 적절히 달콤하다. 출출한 오후 달달한 과자가 당길 때 적절한 달콤함이다. 변비에도 아주 효과적이다. 사과대추의 성분이 장을 자극해 장운동을 촉진하는 듯하다.
첫해에 열매가 열려 바구니를 들고 한 알 한 알 딸 때 기쁨이란 몽글몽글 구름 같았다. 재밌고 신기하다.
내 땅에서 수확한 아삭거리는 사과대추를 먹는 일상은 슈퍼마켓에서 사다 먹는 것과는 다른 행복의 맛이다.
그다음 해
똑같이 관리해 주었는데도 영 과실이 맺지를 않았다. 왜 그럴까? 농사는 해걸이로 거둔다고 한다던데 그런가?
내가 먹을 만큼도 안 열렸다.
그다음 해
조금 열리는 듯했다. 남편은 로컬푸드마켓에 판매자 등록을 하고 판매하겠다고 나섰다.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었단다. 아침마다 대추를 따서 포장하고 마켓으로 들고나갔다. 매일 저녁 핸드폰으로 판매량 알람이 온다. 저녁마다 오늘 얼마나 팔렸나 궁금해하는 남편의 모습이 재밌다.
그래서 얼마나 팔았냐고?
총 20만 원. 하하하.
순수익이냐고? 천만에 매출이 그렇다.
남편이 그 20만 원에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소꿉장난 같은 장사 놀이가 스스로도 우스우면서 즐거운 듯하다.
이런 기분으로 농사짓는다나 어쨌다나.
그다음 해. 바로 올해.
풍년이다. 풍년도 심하게 풍년이다.
올해는 내가 먹을 것을 남기고, 내다 팔고(사실 얼마 팔리지도 않는 로컬푸드 외엔 판로도 없다), 거두어도 더 이상 저장할 곳이 없다.
우리 부부가 수확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열려 지인들을 불러 대추 따기 농장 체험을 해볼까, 별별 생각을 다해보았다.
그런데 추석 긴 연휴 계속 비가 왔다. 그나마도 팔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계속 내리던 비가 그쳤다. 모자에 긴팔 옷에 장갑 끼고 대추 따러 나갔던 남편이 기겁을 하고 들어온다.
벌.
웬일이니? 벌이 떼로 몰려다니며 대추밭을 점령했다. 아마도 긴 비에 굶주렸던 벌들이 날이 개자 몰려온 것 같다.
요리조리 벌을 피해 가며 땄다. 포장하여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비에 못 따고, 벌에 못 따고, 비에 못 팔았다. 따 놓고 며칠만 지나도 금세 상해서 먹을 수 없고 당연히 팔 수도 없다.
대추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새빨갛게 익어가며 애처롭게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대추. 벌떼 때문에 밭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수확을 해도 저장할 곳이 없기도 하지만) 땅에 투둑투둑 떨어지는 대추들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수확하고 가격이 너무 낮아 생산 단가에도 못 미치는 농산물을 갈아엎어 버린다는 농부의 마음, 수확할 일꾼을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른다는 농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땅바닥에 떨어진 대추에서 점점 술 냄새에 시큼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래도 그럭저럭 100 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거둔 대추는 씻고 썰어서 냉동실에 보관해 놓았다. 두세 달은 먹을 수 있을 듯하다.
내년에도 혹시 풍년이 들면 지인들을 초대해 농장 체험 놀이로 한바탕 놀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