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네 Oct 14. 2022

I. 손가락으로 목숨을 구한
피아니스트

엘렌 드 몽주루 | 제1편

실제로 그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이 여자에게 오늘날 하나의 전설로 내려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또각또각.


어느 때라면 침묵 속에 유일하게 울렸을 이 구두 소리는 수많은 군중들의 아우성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눈부신 피부를 지닌 한 여자가 피아노 앞으로 다가갈 동안 어떤 이들은 분노를 담은 눈빛을, 어떤 이들은 안타까운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더러 어떤 이들은 야유와 함께 고성을 지르기도 하였고 어떤 이들은 금방이라도 임시로 마련된 무대로 난입할 듯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눈부시고 밝은 여인과 성난 군중의 어두운 대비는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켰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성난 군중의 분노에 벌벌 떨며 몸을 사렸겠지만 이 여성은 이들의 고성이 들리지 않는 듯 그저 차분하게 피아노 앞에 앉았다. 지금 이 여자의 세계에는 자신에게 분노를 터트리는 관중도, 그리고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잊은 채 오직 피아노밖에 없었으니까. 여자는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 위에 손을 올린 후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자신의 콘서트를 위해 첫 소절을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이 여자가 연주하는 음악이라면 단 하나의 음이라도 안들을 것이라 호언장담한 군중들은 첫 소절을 듣자마자 분에 차올라 소리 질렀던 입을 다물게 되었다.


일어나라 조국의 아이들이여,

드디어 영광의 날이 왔도다!


이 얼마나 가슴 뜨거운 노래인가. 국민들의 손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위대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노래가 아니던가. 피아노 앞에 앉아 무아경으로 연주하는 여자의 음악에 청중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과 악감정은 어느새 사르르 녹은 채 음악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가장 뜨거웠던 프랑스혁명의 시대, 혁명 재판소의 한가운데 선 귀족 엘렌 드 몽주루.


죽기 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피아노 연주를 요구하며 성난 군중 한가운데에서 혁명군의 군가,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 를 즉흥 연주한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몽주루의 연주가 절정에 다다를수록 여자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던 군중들 마음엔 애국심이라는 한 마음으로 뭉쳐 연주가 끝났을 땐 커다란 환호성으로 이 여성의 연주에 보답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죽음을 앞둔 음악가 몽주루는 단두대에 끌려가는 대신 자신의 손가락을 통해 자유, 평등, 박애 사상에 입각한 진정한 프랑스혁명을 이루어내었다.





'신이시여,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옵소서. 우린 너무 어린 나이에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루이 14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어린 황태자 부부를 프랑스의 통치자로 만들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 지 오래되었지만 세상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선대 왕들의 사치로 인해 나날이 파탄으로 달려가는 정부의 빚은 이제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할 수준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새로운 태양으로 거듭나기 전부터 국민들을 사랑했던 왕태자라면 어떻게든 해결해줄 것이라고 국민들은 믿고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떠오른 커다란 태양은 해가 거듭날수록 큰 실망이 되어 돌아왔고 어느새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왕과 왕비에 대한 불만이 삐져나와 입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의 절대왕정은 국민들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해악만 끼친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불온한 기운이 물씬대는 그 파리의 한 편에 위치한 저택에 지내는 귀족 여성은 조국의 격정을 잠시 뒤로한 채 하프시코드 앞에 앉아 연신 건반을 두들이고 있었다. 우연인진 모르겠지만 새로운 프랑스의 왕비와 같은 이름을 지닌 이 여성, 엘렌 앙투아네트 마리 드 네르보 Hélène Antoinette Marie de Nervo는 그저 선생님이 오시기 전, 그가 맡겨준 과제를 어떻게든 완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연습을 할 뿐이었다.


드 네르보 가문은 본디 리옹에 거점을 둔 귀족 가문이었다. 리옹의 사법 당국의 각종 업무와 통화 재판소 내의 고문 직책을 맡은 고위 귀족 아버지, 장 바티스테 드 네르보 Jean-Baptiste de Nervo와 몇 년 전 귀족의 직위를 받은 어머니 안느 마리 사빈 마유브르 드 샹비유  Anne Marie Sabine Mayeuvre de Champvieux는 자신들의 자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었다. 장녀 엘렌을 가진 다음 해 귀여운 남자아이까지 태어난 네르보 부부는 일찍부터 파리에 자주 왕래하며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드 네르보 부부는 당시 프랑스 최고의 선진 문화를 가진 파리라는 도시에 아이들을 보내 이 아이들이 그 누구보다 자신들이 원하는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기회를 안겨주었다. 바다를 사랑한 크리스토프 올랭프 드 네르보 Christophe Olympe de Nervo는 바다와 항상 함께 할 수 있는 해군의 길로, 피아노와 하프시코드를 사랑한 엘렌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피아노와 함께 할 수 있는 음악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귀족이라면 그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덕목인 음악을 처음 접한 엘렌은 마치 폭죽이 터지 듯 마음속 깊숙이 숨어있던 음악 재능이 폭발하였을 것이다. 이후부터 부모는 기쁜 마음으로 엘렌의 재능을 위해 최고의 선생을 옆에 붙여주며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엘렌이 원하는 길을 스스로에게 맡긴 어머니도 한 가지 일만큼은 절대로 엘렌의 의견을 반영시켜주지 않았다. 귀족의 자제라면 피할 수 없는 혼사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엘렌의 약혼자로 이미 내정된 사람은 엘렌과 28살이라는 어마어마한 나이 차이가 존재하는 한 후작이었다고 한다. 몽펠리에 감사원의 고문이자 용기병에 능숙하다는 그 장군은 누구보다 프랑스 왕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며 루이 14세로부터 생루이 십자 무공훈장을 받은 이라고 한다.


아마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가문을 지키고 싶었던 어머니의 결단이었으리라. 엘렌 또한 머리로는 이 후작이 매우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나 어쩐지 한 편으론 왜 이리도 한편에 공허한 마음이 드는 것인지 그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명망 높고 훌륭한 분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자신이 모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태어난 이름을 버리고 남편의 성을 따를 때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사교계의 활동을 바라며 스스로 이 결혼을 가슴으로 납득하기로 하였다. 귀부인의 살롱은 언제나 자신의 음악 재능을 펼치기에 가장 최적의 장소인 것을 아니까.


어쨌든 지금은 눈앞의 하프시코드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조금 있으면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이 엄격하게 키운 아들 중 한 명인 자신의 스승이 방문할 것이니.




엘렌의 스승은 독일 국경에 인접한 알자스의 스트라스부르 출신이었다. 도시에 우뚝 솟은 대성당에서 활동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들로서 어릴 때부터 대성당의 합창단원들과 저명한 스승들 밑에서 다양한 음악을 배운 스승은 이윽고 독립할 나이가 되어 파리로 왔다고 한다. 독일과 인접한 도시라 그런지 프랑스인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식 이름을 가진 젊은 청년, 니콜라우스 요제프 휠만델 Nicolas-Joseph Hüllmandel은 파리에 오자마자 처음 한 일은 바로 하프시코드 작품을 작곡하는 일이었다. 어떻게 숨기더라도 결국 작곡가의 미숙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첫 번째 작품인데,  휠만델은 이 미숙한 작품만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살롱을 포함하여 내로라할 귀부인들의 살롱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단숨에 프랑스 당대 거장의 반열에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런 그를 스승으로 둔 엘렌 또한 스승을 따라 저명한 귀부인들의 살롱에 몇 번 참여하는 기회를 가졌기에 엘렌은 어서 더 자유롭게 사교계에 드나들기를 희망하였다.


한 곡을 다 연주한 엘렌은 문득 인기척을 느껴 뒤를 돌아보았다. 휠만델은 어느새 뒤에 서서 제자의 연주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엘렌은 사교계에서 내로라할 거장인 자신의 스승이 평소와 다르게 당혹스러운 표정이 얼핏 얼굴 위에 지나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엘렌의 걱정과 다르게 휠만델은 자신의 제자가 그 어려운 기교가 담긴 과제를 통달했음은 물론 영민한 머리로 작품을 이해하며 완벽한 연주를 선보인 제자의 장래를 생각하였다. 몇 달 후에 있을 결혼으로 남편의 소유물이 될 제자를 이대로 포기하기엔 제자의 음악 재능이 너무나 아까웠다. 남편의 말 한마디에 아내는 아무리 재능이 넘쳐나도 손을 놔야 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휠만델은 자주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 일이 생긴다 하더라고 휠만델은 자신의 제자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제자의 남편이 될 사람은 군인이지만 마음만큼은 목석이 아닌 인간일 것이라, 휠만델은 그렇게 믿기로 하였다.


그로부터 프랑스의 건반 악기의 거장이 아낀 제자 엘렌은 프랑스 왕실의 충성된 장군, 앙드레 마리 고티에 드 몽주루 André Marie Gautier de Montgeroult와 결혼하며 엘렌 드 몽주루 Hélène de Montgeroult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들끊는 파리를 평정시키기 위해 바쁜 일정으로 어린 아내에게 소홀해하며 방치한 것인지, 아니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힘든 시기인 만큼 음악으로 심신을 안정시키라는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남편은 어린 아내에게, 그리고 아내가 사랑하는 음악에 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엘렌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지만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남편을 보필하는 한편,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유롭게 귀부인들의 살롱을 넘나들며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왕정은 점점 기울어가는 불안한 시기였지만 그 와중에 예술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성들은 무대에서 그 꽃을 피웠다면 여성들은 자신이 지닌 예술의 꽃을 피우기 위해 서로의 살롱에 모여 자신만의 꽃을 서로 자랑하곤 하였다. 엘렌은 수많은 귀부인들의 초대를 받아 그곳에서 오밀조밀한 반음계적 멜로디와 섬세한 화음으로 귀부인들에게 자신의 꽃을 자랑하였다고 한다. 귀부인들의 칭송을 받으며 어느새 살롱의 가장 유명한 여성 피아니스트가 된 이 이 여성이 가장 사랑하는 살롱은 한 여성 화가의 살롱이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비제 르부룅 (좌)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전속 궁정 화가가 되어 여왕의 다채로운 초상화를 그렸다.


투명한 피부와 아름다운 금발을 가진 프랑스 여왕의 전속 화가로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화가, 엘리자베스 비제 르부룅 Élisabeth Vigée Le Brun의 살롱은 언제나 세상에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사람의 내면까지 비칠듯한 투명한 피부와 인체를 이루는 부드러운 곡선, 그리고 빛이 만들어내는 심오한 색감으로 그림의 모델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든 그녀의 섬세한 붓질을 바라보는 몽주루는 생각하였을 것이다. 자신의 음악이 그처럼 부드럽고 다채롭기를. 르브룅의 살롱은 특히 다른 살롱과 다른 편안함이 있었다. 오래되고 정겨운 골동품과 그의 매력적인 작품이 가득한 살롱은 오직 '여자만이 누릴 수 있는 세계'를 추구하는 르부룅의 이상이 함께 내재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일하게 여자가 권력자가 되는 그의 살롱에서 엘렌은 자신의 음악 재능을 더 많은 이들이 알아주길 바라며 이들과 촘촘한 인맥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천재가 되는 조건은 재능이 제일 중요하지만 더불어 그 재능을 알아주는 대중의 인기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아름다운 외모와 함께 음악에 통달하여 피아노 앞에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 연주를 펼친 엘렌 드 몽주루 후작은 이윽고 파리를 평정하게 된다. 언젠가 휠만델이 걱정했던 그 모든 근심은 이미 먼 과거가 되어버린 듯 말이다. 


엘렌의 인맥은 휠만델과 또 다른 피아노의 기법을 가르쳐 줄 새로운 스승, 얀 라디슬라프 두세크 Jan Ladislav Dussek를 만나게 해 주었고, 또한 모차르트와 음악 경합을 벌인 무치오 클레멘티 Muzio Clementi를 만나 그 거장만의 하프시코드 주법을 전수받기도 하였다. 저명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 한 해가 지나갈 즈음에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섬긴 희대의 바이올리니스트 조반니 바티스타 비오티 Giovanni Battista Viotti를 만나 예술적 우정을 쌓아 올리며 남자들에게만 허락된 무대에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야말로 음악이 엘렌 앞에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엘렌과 인연이 닿은 수많은 사람 중 가장 소중한 인연을 꼽으라면 엘렌은 이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프랑스 최고의 여성 음악가로 이름을 날리던 어느 날, 어떤 젊은 남자가 엘렌의 앞에 서게 되었다. 막 성인이 된듯한 앳된 남자는 무치오 클레멘티의 제자라고 밝히며 호기심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엘렌에게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청하였다고 한다. 엘렌은 알았을까. 음악만을 위해 영국과 유럽을 순회하기 시작했다는 남자, 요한 밥티스트 크라머 Johann Baptist Cramer와의 만남이 엘렌 드 몽주루라는 사람이 나아가야 할 인생의 목적을 밝혀 줄 이정표가 된다는 것을.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안나 본 디 베네치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