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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네 Nov 21. 2022

IV.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피아노 교재의 탄생

엘렌 드 몽주루 | 제4편

파리음악원의 교수를 뽑기 위한 경연이 모두 이루어진 후 파리음악원은 건반 악기 학부를 이끌어갈 미래의 교수들에게 합격 여부를 알렸다. 그렇게 파리음악원의 건반악기 교수는 5명의 남자들 사이에서 1명의 여자가 포함된 보기 드문 진귀한 현상을 보이게 되었다. 그 1명의 여자가 바로 엘렌 드 몽주루,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던 그가 파리음악원과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엘렌이 교수로 채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피아노 하나로 자신의 목숨까지 살린 이 여성에게 파리음악원 하프시코드 교수 채용을 위한 경합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차창 밖, 무더위로 노곤한 푸른 나무가 어느덧 몸에 두른 옷을 하나둘씩 벗기 시작한 1795년 11월 22일, 그리고 프랑스 공화력으로는 제3월이던 그날 엘렌 드 몽주루는 파리음악원 최초의 여자 건반악기 1급 교수가 되며 주변의 모든 인물들을 놀라게 하였다. 


파리음악원 내에서도 가장 뛰어난 남자 우등생들을 맡아 전적으로 교육을 맡게 된 엘렌이 즉시 시작한 일은 자신이 지금까지 고안한 교육법을 실험하는 것이었다. 이 여성에게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청중들에게 비범한 기교를 선보이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대할 때도, 크라머를 가르칠 때도, 그리고 혁명 재판소에 올랐을 때도 엘렌은 항상 인생의 악기인 피아노를 단순한 악기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로 보았다. 즉, 피아노는 단순히 연주되는 것이 아닌, 바로 연주자와 함께 '노래'를 해야 했다. 아무리 고난도의 기교를 연주한다 해도 무슨 소용인가. 그 음악에 영혼이 담겨있지 않으면 매시간마다 기계적으로 파리 시내에 울리는 종소리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엘렌의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의 선진 음악은 정확하고 정교한 템포 속에서 흐르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것이 관례였으니까. 과연 저 여자 교수가 무엇을 자신들에게 가르쳐줄 것인가. 오만한 남학생들은 왜 여자 교수가 배정되었는지 의문이었지만 찬찬히 그의 가르침을 받아보기로 결심하였다. 어쨌든 파리를 휘어잡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여자가 아니던가. 그리하여 엘렌의 학생들은 교수와 함께 처음으로 피아노라는 악기의 내면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엘렌의 수업은 독특하였다. 피아노 앞에 앉은 제자가 연주를 끝내면 엘렌은, 방금 연주한 작품을 목소리로 노래해보라고는 하였다. 엉뚱한 지시였지만 제자는 교수의 지시를 고분고분하며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노래로 부르는 멜로디는 피아노와 다르게 자유롭고, 부드럽고, 그리고 사람의 호흡을 지니고 있었다. 엘렌은 다시 한번 제자에게, 방금 부른 노래대로 피아노에 그대로 적용시켜 보라고 하였다. 교수의 말대로 연주한 제자는 자신의 음악이 앞서 연주한 정교한 템포보다 한 결 느슨하고 부드러워지며 프레이즈*가 한결 편안하게 진행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결국 음악이 호흡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엘렌은 부드럽게 입술에 호선을 띄우며 제자에게 이야기하였다.


「노래와 다르게 이러한 억양과 소리를 만들 수 없는 건반 악기에 어떻게 해야 무수한 음형을 만들 수 있을까요? 이러한 환상은 바로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멜로디를 노래하는 오른손은 가수로부터, 반주하는 왼손은 오케스트라부터 말이죠.**」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한 교수의 건반 악기 교육법에 제자들의 음악적인 시각에 더 넓은 지평선을 마련해주었다. 엘렌의 레슨을 받은 학생들은 교수의 진가를 알아가며 자신의 음악에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어 주며 살아있는 한 명의 가수로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단순한 악기에서 한 사람으로서 숨을 쉬는 자신의 피아노에 제자들은 매일매일 교수의 가르침을 남김없이 흡수하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은 나날이 배우면서 과연 이 교수가 지닌 건반악기 음악의 한계가 어디일까 궁금하기 시작하였다. 어떠한 스승이라도 가르침의 한계가 있지 않던가. 하지만 선대 음악가들의 음악에 전통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이 선생의 피아노 교습에 한계가 없이 해를 거듭할수록 다채로워지니 학생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배움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어느 날 학생들은 강의실에 엘렌 교수 대신 한 남자 교수가 입장하여 학생들에게 인사하게 되었다. 장 루이 아담 Jean-Louis Adam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그 교수는 엘렌 교수는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자신이 이 강의실에 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여러분들에게 무대에서 환히 빛내 줄 새로운 피아노 연주의 세계로 밝혀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늘도 교수가 가르쳐 줄 새로운 배움을 기대한 학생들은 만감이 교차하였다. 


* 프레이즈 phrase : 악구. 한 단락의 선율선을 가리킴

** 엘렌이 훗날 작곡하게 될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종합 과정'의 서문 중 일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 


1798년의 겨울날, 한 장의 서류를 든 엘렌은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의 건강은 아무 이유도 없었다. 파리음악원은 자신을 교수직에서 사임시킨 이유는 온전히 장 루이 아담 때문인 것을 모를 것이라 생각했을까. 파리음악원에서는 미래를 바라보는 자신의 교수법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장 루이의 교수법을 완벽하다고 생각하였기에 이 여성에게 덜컥 사임장을 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임된 엘렌은 명예로운 교수직은 아쉽지 않았지만 자신을 따라준 제자들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너무나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 아니겠는가. 교수직을 잃었지만 대신에 자유를 얻은 엘렌은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인생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왼쪽부터 비오티, 케루비니, 그리고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의 주인공이 된 크로이처.


시간이 흘러 이 자유로운 여성은 그 옛날 자신에게 수많은 영감을 준 화가, 엘리자베스 비제 루브룅의 살롱을 기억하며 자신의 살롱을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매주 월요일마다 화려한 성 안에서 개최된 '몽주루 부인의 월요일 lundis de Mme de Montgeroult'은 항상 파리를 이끄는 수많은 음악가들이 함께 하였다. 젊은 날 서로 다른 견해로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우정을 쌓아온 비오티를 포함하여 열정적인 프리메이슨이자 작곡 교수로 활동 중인 작곡가 루이지 케루비니 Luigi Cherubini, 비오티를 존경하며 파리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수로 활동한 로돌프 크로이처 Rodolphe Kreutzer까지 어느새 엘렌의 살롱은 프랑스 음악의 현재와 미래를 만나볼 수 있는 진귀한 장이 되었다고 한다. 


화려한 사교계 속에서 프랑스 음악의 미래를 이끌어 간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의 자유로운 삶은 어느덧 40대를 바라보았다. 한 남작을 만나 열정적인 사랑을 나눠보기도 하였으며 파리음악원에서 자신을 잊지 못한 제자들이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기에 자신의 음악을 전수하기도 하였으며 어느덧 자신의 살롱에 음악가뿐만 아니라 과학자, 화가, 정치가가 모여 조국을 위한 뜨거운 토론에 함께 참여하기도 하였다. 젊은 한 때, 역적으로 몰려 죽음의 앞까지 다녀온 이 여성은 지칠 기색 없이 인생을 소중하게 즐겼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족한 삶을 즐긴 이 여성의 마음 한 편에 굳게 위치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조용한 밤마다 자신의 사명에 온 마음을 쏟으며 자신의 삶을 바쳤다고 한다. 어느 젊은 날, 사랑하는 제자가 요청한 연습곡, 바로 그 연습곡에 말이다. 


젊은 시절부터 틈틈이 작곡한 연습곡은 어느덧 수백 장을 육박하는 두께를 자랑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 연주한 자그마한 피아노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 넓은 음역을 가지더니 어느새 6옥타브를 자랑하는 거대한 악기의 황제로 군림하게 되며 자신의 연습곡도 더 거대한 작품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 젊은 시절, 바로크 음악을 꽃피운 거장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존경하며 자신 또한 도전한 푸가 형식의 연습곡은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며 자연스러운 루바토가 노래하는 즉흥곡과 환상곡 같은 숨 쉬는 음악으로 변화하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반평생과 함께한 연습곡은 자신의 인생처럼 계속 변화하고, 성장하고, 그리고 호흡하였다.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종합 과정'의 표지

그렇게 엘렌 드 몽주루라는 피아니스트의 모든 정수가 담긴 이 작품은 24살의 젊은 시절의 포부가 담긴 채 어느덧 48살의 원숙한 인생이 담겨 1812년, 700장에 육박하는 분량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엘렌은 드디어 완성된 두꺼운 음악 원고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며 가슴부터 차오르는 뜨거운 감정에 어느새 눈에 고인 눈물을 훔치며 원고의 표지를 바라보았다. 


『포르테 피아노를 위한 종합 과정 

Cours complet pour l'enseignement du forte-piano


엘렌은 알고 있었을까. 방대한 분량으로 인해 3권으로 나눠져 차근차근 출판된 이 작품이 훗날 음악계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는지 말이다. 





당대 그 누구보다도 '피아노 포르테'라는 악기의 본질을 관통한 이 여성의 말로는 그야말로 조용하였다.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종합 과정' 제1권을 출판한 그 해, 자신보다 19살이나 어린 백작, 에두아르 뒤노 샤르나주 Édouard Dunod de Charnage와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10년도 되지 않아 젊은 남편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이제 남은 유일한 가족은 그 젊은 시절, 연인이었던 신문 기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밖에 없었던 엘렌은 나이가 들어 점점 쇠약해져 가던 어느 날, 다시 한번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이탈리아로 향하기로 한다. 먼 옛날, 자애로운 프랑스의 왕비를 단두대로부터 구하기 위해 첫 번째 남편과 함께 향했던 그 이탈리아로.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아들, 에메와 함께 70의 나이에 이탈리아로 향한 엘렌은 여러 나라를 거쳐 화려한 문화가 꽃피었던 피렌체에 정착하게 된다. 


그 옛날 사랑하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눈물로 적은 편지가 여기에는 도달했을까. 고통스러운 아픔이 시간을 만나 어느덧 무뎌졌다 해도 엘렌은 일생에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리게 만든 이 도시들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엘렌은 이 도시에 정착하여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이 음악가의 삶과 어울리는 이 예술의 도시에서 노경의 여성은 지난날을 곱씹으며 아들과 함께 조용히 삶을 살아나갔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그다음 해가 찾아왔을 때, 찬란하고 번화한 삶을 살아간 프랑스 최고의 피아니스트는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는 화려한 꽃이 피어내는 봄날에 눈을 감게 되었다. 72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엘렌 드 몽주루는 그렇게 가장 화려한 계절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여느 여성 음악가와 마찬가지로 그가 작곡한 작품 또한 세상에 빠르게 잊혀가기 시작하였다.


아니, 잊혔을 것이라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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