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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네 Feb 07. 2023

I. 사람들 손에 무너진 그리스도 상

카시아 | 제1편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어버려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아무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시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신명기 4:23~24




자연이 허락하여 그 거대한 강물과 강물 사이에 인간이 터를 잡고 거대한 국가를 일으키던 그 시대에, 한 왕국을 다스리던 왕이 있었다. 인간들에게 풍요를 안겨주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펼쳐진 뭍 대부분을 차지한 이 작은 왕국은 다른 거대한 주변 왕국보다 넓은 강을 차지했기에 그 어느 나라보다 동방의 진귀한 물건들이 왕국으로 흘러들어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북쪽과 서쪽으로는 바다 같은 대하가 지켜주어 그 누구도 쉽게 도전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고대 도시이자 왕궁의 수도였던 에데사 Edessa는 왕국의 그 어느 금은보화보다 귀한 보석이었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유지인 헬레니즘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고대 도시 에데사는 기원전 136년에 유목민족인 오스르호에니 Osrhoeni의 손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 명망 있는 고대 도시를 중심으로 오스르호에니는 오스로에네 Osroene라는 새로운 왕국을 건립한다. 이 왕국과 인접한 주변의 그리스인들과 파르티아인, 그리고 아람인들이 흘러 들어와 함께 생활하던 이 도시는 앞으로 4세기 동안 24명의 왕을 거치는 오래된 왕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24명의 왕들은 대부분 '아브가르Abgar' 또는 '마누 Ma'nu'라는 이름을 부여받아 아름다운 자신들의 보석인 에데사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신념을 펼치게 된다. 


이 고대 도시의 어마한 위상으로 인해 '오스로에네'보다는 '에데사 왕국'으로 더 자주 불렸던 이 왕국의 통치자, '아브가르 5세 우카마 바 마누 Abgar V Ukkama bar Ma'nu' 또한 그 어느 누구보다 자신의 왕국을 사랑하는 통치자였다. 하지만 유프라테스강이 정성스럽게 빚은 이 아름다운 보석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통치자 앞에 찾아온 병마가 갉아먹어 쇠약해진 육체 앞에서 도리어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짐으로 변모하였다. 


어떤 병인지 연유도 모른 채 하루하루 말라가던 그는 어느 날 세간의 떠도는 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유프라테스강 너머 드넓은 바다에 다다르면 펼쳐지는 유다 땅에 약 없이 말 한마디만으로 모든 병을 고치는 한 선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불치병으로 몸과 마음이 쇠잔해진 그는 자신의 아름다운 보석을 지키기 위해 기묘한 소문의 주인공에게 보낼 서신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짐, 곧 에데사의 통치자 아브가르는 예루살렘 땅에서 활동하는 훌륭한 치유자인 예수에게 인사한다. 그대가 어떠한 약 없이 환자들을 치유했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 그러므로 나는 그대에게 짐이 겪고 있는 이 모든 병을 물리칠 수 있는지 서신으로 묻는다. 유대인이 그대를 원망하고 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세간의 소식을 들었다. 짐에게는 그대를 거두어 생활할 수 있는 소박하지만 고귀한 도시가 있도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 Eusebius of Caesarea의 「교회사」중 아브가르 5세가 예수에게 보낸 서신


전령사는 먼 길을 며칠이고 달렸지만 자신의 존엄한 왕 앞에 보고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적을 행한다는 그 선생이 답장한 한 편지밖에 없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나를 믿는 너희는 복되도다. 기록에 나를 본 자는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보지 아니한 자는 믿어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버지가 나를 세상에 보내시어 그의 사명을 이루고 그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러나 내가 승천한 후 나의 제자 한 명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병을 고치고 너를 살게 하리라.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 Eusebius of Caesarea의 「교회사」중 예수가 아브가르 5세에게 보낸 서신


믿을 수 없는 내용을 담은 이 답장을 받은 왕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독실한 믿음으로 예수가 후에 보낸다고 약속한 제자를 애타게 기다렸을 수도, 혹은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는 자신의 생명의 나날들을 셈하며 반신반의하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믿음대로 어느 날 자신의 앞에 한 남자가 알현을 청하였다. 



예수의 제자 중 한 명인 '에데사의 다대오 Edessa of Thaddeus'



에데사 출신이라고 밝힌 이 남자는 오랜 침묵 끝에 황제 앞에서 첫말을 띄웠다. 남자는 젊었을 적,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방문했었는데 마침 우연히 세례 요한의 설교를 접하였다고 한다. 오묘한 그의 설교를 듣고 난 이후 남자는 바로 그를 따라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은 후 한참 고향에 돌아가지 않은 채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세례 요한이 말한 메시아가 자신의 눈앞에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그 청년을 따라 제자가 된 남자의 이름은 '에데사의 다대오 Edessa of Thaddeus'. 바로 서신에서 말한 그 제자가 드디어 왕 앞에 등장한 것이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부여한 권능으로 기적을 행할 수 다대오는 믿음으로 아브가르 5세를 치유하였다. 놀라운 기적으로 새 생명을 받은 아브가르 5세는 그 즉시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에데사의 다대오는 자신의 고향에 남아 예수님의 말씀을 설파하며 많은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잠시 이야기를 다시 되짚어 보자. 당시 예수에게 서신을 전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간 그 전령사를 기억나는가? '아나니아스 Ananias'라는 이름을 가진 그 전령사는 그 당시 만난 예수의 얼굴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숨겨져 있던 '그림'이라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기억을 더듬어 예수의 초상화를 남기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완성된 초상은 그의 주인을 기쁘게 하였고 왕은 자신의 궁궐 한 곳에 소중하게 보관하며 자신의 신앙을 다져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시대를 거쳐 더 성스러운 전설로 변모한다. 이 성스러운 기적이 담긴 전설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점점 더 신비로운 내용이 덧붙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으로 자신의 주인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던 전령사 아나니아스는 어느덧 서서히 그의 이름이, 그리고 그의 행적이 말끔하게 지워지게 되었다. 대신 하나의 기적이 더 등장하게 된다. 


이야기는 전령사가 예수를 만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이름이 없어진 전령사의 서신을 받은 예수는 더운 날씨에 흐르는 자신의 땀을 네모반듯한 아마포 수건에 훔쳤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예수가 닦은 땀은 그대로 예수의 얼굴을 한 하나의 상이 맺혔고 예수는 그 아마포 수건을 전령사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렇게 전령사의 손으로 전달된 아마포에 새겨진 예수의 성상을 본 아브가르 5세는 그 즉시 오랫동안 앓고 있던 병이 말끔하게 치유되었다.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이 오래된 전설은 오늘날 종교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기록물 중 하나로 취급된다. 바로 이 기적적인 사건 이후 수세기동안 서방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된 성물, 바로 '이콘 εἰκών의 탄생을 그린 첫 번째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시나이 산에 설립된 성녀 카타리나 수도원에 그려진 「전능하신 그리스도 Christ Pantocrator」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비잔티움의 이콘이다. 이 이콘에서 예수의 얼굴과 왼쪽과 오른쪽의 상이 각각 다른데 이는 그리스도의 이중적인 본성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른쪽 상 (두 번째 그림 좌측)은 그의 신성을, 왼쪽 상은 인성 (두 번째 그림 우측)을 나타낸다. 



그리스어로 '에이콘'이라는 발음에 가까운 이콘은 그리스어로 '그림' 혹은 '유사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이 단어가 가진 본래의 뜻대로 이콘은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천사와 12명의 사도들을 표현한 기독교인들의 예술이었다. 그림으로 그린 '성화'와 조각으로 새긴 '성상'으로 나뉘는 이콘은 오랜 전 방랑 생활을 하던 수많은 초기 기독교인들은 어느덧 안정을 되찾았을 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오래된 핍박과 방랑을 마치고 드디어 자신들의 터전을 갖게 된 이들이 드디어 예술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 세상을 놀라게 한 기독교를 알고 싶었던 각국의 신도들을 위해 그림으로, 조각으로 교리를 설파하던 시절에 이콘은 그들에게 그들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인간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림으로 통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이렇게 200년대부터 발전한 기독교인들의 예술은 2세기가 지나며 교회를 장식하는 화려한 예술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콘은 특히 다른 종교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하였다. 이콘이 발전할 동안 세상도 변해가기 시작하였다. 따뜻한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는 오래된 고대 왕국들을 하나하나 통일시키기 시작한 로마는 어느덧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다 이윽고 동쪽만 남게 되었다. '비잔티움'으로 불려진 이 제국에서 언젠가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들 사이에 오래전부터 숨겨진 하나의 의문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여호와가 사랑하는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모세로부터 전달한 한 규율로부터 말이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였던 모세가 하나님으로 직접 받은 그 고귀한 규율에 따르면 어떠한 형상으로든지 직접 사람의 손으로 우상을 새기지 말라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스러운 예술품인 이콘 또한 우상인가, 아니면 그 성스러운 그림에 담긴 성인들을 공경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어떻게 고작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신성한 하나님을 자신의 미천한 머리로 묘사할 수 있단 말인가?


이윽고 이 작은 의문은 커다란 논란을 낳게 되었다. 비잔티움은 어느 날 자신들의 영토에 쳐들어온 이슬람 제국으로 인해 백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 이콘에 더 많은 정성을 들여 자신들의 기도를 하늘로 올렸다고 한다. 본디 이콘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성스러운 힘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정의해야 하나, 이 힘든 시기에 사람들은 그 본질을 잊은 채 오직 눈앞에 있는 그림을 향해 기도를 올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비잔티움 백성의 정성과 달리 이슬람 세력은 쉴 새 없이 위협하였으며, 설상가상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무정부'라는 불안정한 정세까지 맞이하여 내부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이때 내외로 큰 위기를 맞이한 비잔티움에 한 명의 영웅이 등장하게 된다.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난 이 청년은 자신이 지닌 언변으로 힘 하나 들이지 않은 채 몇 년 후 고위직까지 올라가는 수완을 발휘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청년의 말 한마디로 이슬람의 침입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여 이윽고 많은 백성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인기가 날로 치솟는 그의 야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청년은 자신의 영토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억지로 자리를 앉아있는 꼭두각시 황제를 조용히 눈여겨보다 717년 3월 25일에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반란은 성공하였다. 청년은 손쉽게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2년 동안 재위한 '테오도시우스 3세 Theodosius III'의 시대는 저물고 '레오 3세 아사우리아 Leo III the Isaurian'의 시대가 새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렇게 비잔티움은 아사우리아 왕조라는 새로운 왕조가 출현하게 된다.



테오도시우스 3세 (좌)의 모습을 새긴 솔리더스─Solidus: 로마의 금화를 뜻한다,─와 레오 3세의 모습을 새긴 솔리더스.



레오 3세가 비잔티움의 황제로 우뚝 선 이래로 이슬람 제국은 더 이상 유럽으로 진출할 수 없게 되었다. 철벽 같은 황제의 군대를 뚫을 수 있는 왕국이 어디 있을까? 그는 이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서방의 태양이나 다름없었다. 백성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던 외세가 물러났음에 환호하며 새로 등극한 황제를 향해 환호하였다. 그렇게 비잔티움 제국은 안정과 평화를 찾게 되었다. 외세를 평정한 황제는 자연스럽게 내정으로 관심을 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자신의 절대적인 종교관을 백성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하였다. 오랜 시절부터 신자들 사이에서 싹튼 거대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성상을 우상으로 보는 관점을 가진 사람, 즉 '성상파괴주의자'였던 것이다. 





「클루도프의 시편 Chludov Psalter」은 9세기, 성상파괴시기 직후에 제작된 독특한 기록물이다. 윗그림에서 예수에게 쉰 포도주를 먹이기 위해 스펀지가 부착된 장대를 든 인물이 하단에 그려져 있는데 그는 성상파괴옹호론자인 총대주교를 풍자한 것이다. 총대주교의 머리는 사방으로 뻗친 머리카락에 얼굴까지 훼손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성상파괴논쟁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째서 그 수많은 이콘이 성상주의파괴자들의 손에 의해 파괴되었는지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다. 훗날 그 길고 긴 폭력의 시대에서 살아남은 성상옹호론자들이 성상주의파괴자들을 이단으로 낙인찍어 그와 관련된 모든 문서와 기록물들을 폐기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오 3세가 왜 성상을 파괴하기 시작했는지 많은 추측은 존재하지만 정확한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파괴의 역사가 그 황제의 손으로 어떻게 시작되었을지 확실하게 짐작해 볼 수 있는 한 단서가 있었다. 


726년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현재 산토리니로 불리는 테라 섬과 테라시아섬에 집채만 한 해일이 밀려들어왔다고 한다. 섬사람들은 유난히 조용한 섬에 의구심이 들었다. 무엇보다 바다가 뒤로 물러나는듯한 착각 때문에 더 이상한 낌새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윽고 저 멀리서 거대한 해일이 무서운 힘으로 섬을 휩쓸었고 섬사람들은 아무런 수도 쓰지 못한 채 해일에 휩쓸려 몰살당했다고 한다. 그 거대한 해일은 바로 에게 해 깊은 곳에서 터진 해저 화산으로 인해 생겨난 해일, 즉 오늘날 쓰나미라고도 불리는 지진해일이었기 때문이다. 


레오 3세는 아연실색하였다. 어떻게 평생에 볼까 말까 한 대재앙이 자신의 치세에 덮쳐올 수 있단 말인가. 황제는 곰곰이 생각하였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어째서 공평하고 정의롭게 다스리는 자신을 향해 이렇게 큰 분노를 표출하셨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는 자신 스스로의 실책을 찾을 수 없었다. 도리어 비잔티움을 곤경에서 구한 자신은 오히려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아 합당치 않던가. 그래서 그는 결론을 내렸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를 저버린 백성들에게 있다는 것을,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지 못한 이 한 가지 사실이 자신의 유일한 죄라고. 


황제는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안일한 조치를 버리고 특단의 강수를 취하였다. 앞으로 이콘을 섬기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세의 율법을 저버린 이단자로 취급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황제는 밀려오는 거대한 분노를 애써 누른 채 신하들을 소집하였다. 그러고선 만민을 향해 황제는 공표하였다. 짐의 위대한 궁궐 앞에 세워진 우상은 용납하지 못한다, 고 말이다. 


신하들은 경악하였다. 황제가 말한 우상은 황제의 궁궐 앞에 서있는 거대한 대문, 칼케 대문─Chalke : 그리스어로 '청동'이라는 뜻을 지님 에 새겨진 그리스도 상을 의미하였다. 그 말인즉슨, 황제는 이콘을 이단으로 판명하겠다는 뜻이었다. 황제의 공표에 신하들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예수님의 땀이 상으로 맺힌 이후로 신성하고 거룩한 성물이었던 이콘을 어떻게 우상으로 규정한단 말인가. 신하들은 황제를 극구 말렸다. 하지만 황제는 자신 앞을 막는 신하들을 무자비하게 베어버린 채 칼케 대문으로 향하였다고 한다. 


그날, 콘스탄티노플을 상징하던 성스러운 그리스도 상이 인간들의 손에 의해 무너졌다. 그 대신 세워진 거대한 십자가는 앞으로 1세기 동안 두 번에 걸쳐 성상파괴주의자들과 성상옹호론자들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증표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학자들은 비잔티움을 포함하여 세계의 종교사가 뒤집어지는 이 사건에 '성상파괴운동', 혹은 '성상파괴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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