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운딩에 대한 동기부여
골프 라운딩에서 한 타라도 줄이려고 노력을 하고 열심히 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개인별로 뭔가 목표를 설정하고 동기부여가 되는 그 무엇이 있어야 실력도 늘고 골프가 재미있어서 다음 라운드를 기대하게 된다. 아마추어 골퍼의 경우 그 목표는 개인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연습한 대로 샷이 되는지 필드에서 확인하고 싶다.
동반자들에게 민폐는 절대 끼치지 않겠다.
깨백(100타 미만 스코어) 혹은 싱글 스코어를 기록하고 싶다.
자주 라운딩 하는 동반자를 이기고 싶다.
단체모임에서 메달리스트medallist를 하거나 상품을 받고 싶다.
부부끼리 즐거운 게임을 하고 싶다.
그런데 이러한 목표만으로 골프가 재미있고 열심히 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프로선수들의 경우 경기에 출전을 할 때 우승을 목표로 한다고 하지만 우승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고 우승을 모두 다 하는 것은 아니다.
2022년 8월 3일 충남 태안에 위치한 솔라고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한국 여자 프로골프 점프투어 11차전에서 프로 데뷔 이후 3번째 경기만에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국가대표 출신 황유민(19)은 우승 소감에서 "프로가 되고 나니 대회에 상금이 걸려있어서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골프다이제스트 2022.8.3.) 프로의 경우 우승 타이틀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마지막 홀까지 한 타라도 줄이겠다고 노력하는 이유가 상금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말이다.
매번의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많은 상금을 받기도 하지만, 컷오프 되어 탈락하게 되면 상금이 하나도 없어 숙박비나 캐디 비용 등 대회 참가에 따른 모든 비용을 선수가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상금순위에 따라 다음 해 출전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상금 자체로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2021년 한국 선수들이 출전했던 남녀 대회 총상금을 누적 집계한 결과 153명이 상금 1억 원을 넘겼다. 남자 57명에 여자는 96명이었다.
가장 많은 상금을 번 선수는 임성재 선수로 상금만 48억 9300만 원이었다. 그는 2020년 11월 마스터스에서 2위를 하는 등 2020~21년 미국 프로골프 PGA 투어 시즌 35개 대회에 출전해 상금 22위의 성과를 냈다. 고진영 선수는 41억 2204만 원으로 남녀 합계 2위다. 미국 여자 프로골프 LPGA 투어 시즌 5승으로 투어에서 3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다. 한국 여자 프로골프 KLPGA 투어 28개 대회에 출전해 시즌 6승으로 역대 시즌 최고 상금액 15억 2137만 원을 달성한 박민지 선수는 남녀 상금 6위이자 여자 중에 상금 2위에 올랐다.(헤럴드경제 2021.12.13.)
파란색은 남자 선수 상금랭킹, 핑크색은 여자선수 상금랭킹. 금액은 12월 8일 환율 기준. (헤럴드경제 2021.12.13.) 여기에서 우리는 고진영이 박민지에 비해 1승이 적지만 상금에서는 3배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여자 프로골프 투어에서 뛰는 것이 한국 여자 프로골프 투어보다 그만큼 동기부여 요소가 확장되어 있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 선수들이 미국 여자 프로골프 투어 자격을 따기 위해서 연말에 퀄리파잉 스쿨qualifying school에서 경쟁을 벌인다. 최혜진과 안나린 등 한국 선수들도 좋은 성적으로 2022년 시드권을 따냈다. 만약 한국 여자 프로골프 투어가 세계에서 상금이 제일 많다면 아무도 미국을 가지 않을 것이다. 미국으로 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상금이 그들을 동기 부여시키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남자 선수 임성재도 국내 투어 활동만으로 48억 원에 해당하는 상금을 받기는 불가능할 정도로 국내 남자투어 상금 규모가 빈약하기에 미국 투어에서 활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 약간의 내기가 동기부여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골프라는 것이 이론과 상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돈이 들어간다.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서는 연습장에 돈을 갖다 주고 열심히 연습을 하든지, 훌륭한 코치를 만나서 코치한테 돈을 주고 잘 배우든지, 아니면 열심히 필드에 나가면서 골프장에 돈을 어느 정도 내어야지 골프를 잘 치게 된다. 골프를 잘 친다는 것은 그만큼 돈과 정성을 많이 투자했다는 것이다.
누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지만 골퍼들 사이에 자주 회자(膾炙)되는 이야기가 있다.
60타는 나라를 먹여 살리고(국가대표로 활동할 정도의 실력)
70타는 가정을 먹여 살리고(각종 아마추어 대회에서 상금과 상품을 받아올 실력)
80타는 골프장을 먹여 살리고(골프에 재미를 느껴 라운딩 빈도수가 많아짐)
90타는 친구를 먹여 살리고(내기에서 이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질 확률이 높음)
100타는 골프공 회사를 먹여 살린다(OB, 해저드 등 분실구가 다수 발생)
여기에서 ‘먹여 살린다’는 의미는 먹여 살리는 돈이 누구의 호주머니 속에서 지출되느냐는 것이다. 그 돈은 자발적으로 기부하듯이 누가 임의로 내어 놓는 것이 아니다. 비즈니스냐, 친구 간이냐, 부부간이냐 등 라운딩 성격에 따라 골퍼 개인에게 분담되는 금전의 기준은 다양하다. 그중의 하나의 방법이 ‘내기’이다. 프로가 상금으로 동기부여가 된다면 아마추어는 약간의 ‘내기’로 동기부여가 된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내기가 일상화되어 있는 측면이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 국민이라면 한국 팀 승패 맞추기 내기를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직장에서 커피내기 사다리 타기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명절에 모여 가족 간에 윷놀이를 해도 뭔가 내기를 걸어야 한다. 기원에서 바둑을 두어도 방내기를 하여 커피 값을 내도록 한다. 탑골공원 장기판에서도 천 원짜리 소주나 박카스 한 병 내기를 한다. 당구장에서 먹은 짜장면 값은 내기에 진 사람이 낸다. 화투를 아무 내기 없이 한 시간 친다고 생각을 해보라. 정말 무릎만 아프고 재미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도 뭔가 내기가 걸려 있으니 화투판이 재미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내기는 도박과 같이 위법적이고 거액이 오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소소한 것을 걸고 즐긴다고 생각을 하면 된다. 이처럼 우리는 내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있어서 골프 라운딩에서도 내기가 없으면 다소 심심하고 무료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사실 골프에서 내기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비용 계산에 있어 구조적인 것이 있다. 골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이 경기를 마친 후 N분의 1로 각자 계산이 된다면 타수에 관계없이 즐기는 명랑 골프를 쳐도 되지만, 식사비나 캐디 피 등 프런트front에서 정산이 되지 않는 추가적인 공통경비가 발생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이렇게 추가적으로 발생되는 공통비용을 마련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내기’가 진행된다. 그런데 내기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평소보다 좀 더 진지하게 공을 치게 되어 타수가 줄어든다. 혹자는 골프를 잘 치려면 두 가지를 해야 하는데 하나는 '열심히 연습'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기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골프를 자주 치는 친구들과 핸디캡을 평균해서 적용해보기로 하였다. 골프장 난이도에 따라 스코어 차이가 발생하지만 평균 핸디캡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필자도 친한 친구들과 2년 정도 공을 치면서 매번 친 핸디캡을 엑셀 시트로 누적 관리하면서 최근 10회 평균 핸디캡을 적용하여 스트로크 게임을 하였다. 그 결과 4명 모두 평균타수가 줄어들었다. 이미 수십 년간 공을 쳐왔기에 이를 줄이기는 어렵다고 생각을 하고 시작했지만 20회 이상 라운딩 결과를 평균 내어보니 개인별로 평균 5~7 타 정도를 줄였다. 물론 천 원짜리 내기여서 여기서 일등을 하면 명예는 본인이 가지고 자기 돈을 보태어서 그늘 집 음료비나 점심값을 계산해야 한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내기의 장점은 첫째, 신중을 기하여 정확히 치려한다. 둘째, 규칙대로 경기를 진행하고 이를 지키려 한다. 셋째, 골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샷을 개선하기 위해 연습을 하거나 이론적 지식을 늘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 손실 기피 편향
사소한 내기지만 내기의 결과가 안 좋았을 경우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사람들은 손실을 싫어한다. 똑같은 대상을 놓고도 그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실망감은 그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의 두 배에 달한다.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 ‘손실 기피loss aversion’라고 한다.
동전 던지기 내기를 한다고 가정을 하자.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당신이 X 달러를 따고 뒷면이 나오면 100달러를 잃는다. 그러면 X가 얼마가 될 때 내기를 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략 200달러라고 답한다. 즉, 200달러를 딸 가능성이 있어야만 100달러의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의미이다.(리차드 탈러 외 1인, 넛지, 웅진싱크빅 2010, pp.61-62.)
우리는 심리학이나 마케팅 이론에서 손실이 이익보다 더 크게 영향을 미치기에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것은 빼앗길 때가 더 고통스럽고 상실감이 크다고 한다. 게임이론에서도 이익도 중요하지만 손실을 보지 않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프로들은 버디도 좋지만 보기 하는 것을 꺼린다. 골프 중계방송을 보면 어느 선수가 오늘 노보기 플레이를 보여준다며 경기를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즉, 3 언더파를 기록한 경우라도 파 15개, 버디 3개는 잘 친 것으로 이야기하고, 파 9개, 보기 3개, 그리고 버디 6개에 대해서는 같은 결과이지만 샷을 조금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해설하는 경우를 간혹 볼 것이다. 이는 '보기'라는 타수를 잃는 손실이 '버디'로 타수를 만회한 것보다 심리적으로 2배 이상 부담을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80대 주말 골프라면 첫 홀에 보기를 하지 않고 파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90대 주말 골퍼라면 첫 홀에 더블 보기 이상을 절대 하지 않을 생각으로 티샷과 게임 운영을 해야 한다. 첫 홀부터 더블 보기 이상을 한다면 시작부터 상실감이 들어 남은 홀에 대한 전반적인 진행에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내기를 하는 경우 내기 결과 손실 수준에 대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어느 정도 있어야 된다. 나는 이 회복탄력성 수준이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그린피의 50% 수준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카트 사용료를 포함해서 20만 원 정도 그린피가 나오는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면 10만 원 정도 추가적인 비용이 나올 것으로 예상이 된다. 캐디 피, 그늘 집 식음료대, 식사비, 교통비 등 추가되는 비용이 대략 이 정도는 될 것이다. 9~10만 원의 추가적인 지출이 있으면 동반자를 위해 1~2 만원 보태 준 것이고 7~8만 원을 내면 성공(?) 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본다.
내기는 즐겁게 운동하기 위한 수단인데 너무 과도한 액수의 내기를 하면 골프보다 돈이 우선이 되는 주객전도(主客顚倒) 현상이 생겨 다툼의 소지가 생긴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아 핸디캡이 5 이상 차이가 나면 이길 확률이 아주 희박한 것이 골프이다. 내기를 크게 하는 모임에는 절대 가지 말아야 하며, 혹시나 해서 간다면 결과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 에피소드: 주머니 속 몇만 원
아내는 내가 골프장에서 내기를 해서 늘 이기는 줄 안다. 그 이유는 골프를 치고 집에 와서 세탁물을 내놓을 때 바지 주머니에 항상 만 원짜리 한두 장과 천 원짜리 몇 장을 넣어놓는다. 아내는 세탁물을 사전에 점검하다가 그 돈을 찾으면 수백만 원을 발견한 듯이 좋아한다.
골프라는 운동은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오는 하루가 걸리는 행사이다. 아침에 가지런히 옷을 챙겨주고 문 앞까지 배웅하는 아내의 정성이 있다면 그날 골프는 출발부터 기분이 좋아 79타 이하 싱글을 칠 듯이 잘 맞을 것이다. 반면 문 열고 나가는 소리에 아내가 깰까 까치발로 살금살금 나와야 하는 처지이거나, 아니면 뒤통수를 작렬하는 한마디를 듣고 나오면 정말 그날 공은 출발부터 잘 안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골프를 치고 온 남편의 골프복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얼마 안 되는 불로소득에 대한 아내의 사소한 기쁜 기억이 남아 있다면 다음에 공을 치러 갈 때 '좋은 소리'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억만장자라 하더라도 가족으로부터 받은 의미 있는 작은 선물에 감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골프를 치고 왔을 때 사소한 금액으로 잠시나마 아내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
*각주) 메달리스트: 매치 플레이의 예선 경기로 스트로크 플레이에서 상위 16명으로 제한하는데 그 수위에 들어 있는 사람들을 메달리스트라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