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서 보는 것과 위에서 보는 느낌 달라... 가장 높은 곳에서 2시간
▲ 백남준 선생님의 <다다익선>을 그리고 모니터에 스티커를 오려 붙였다. ⓒ 오창환
지난 15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 <다다익선(多多益善)> 재가동 행사가 있었다. <다다익선>은 백남준의 가장 큰 작품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설립된 1986년부터 무려 2년간 제작, 설치하여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춰서 완성된 작품이다.
당시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1003개의 모니터 정도 규모의 비디오 아트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 작품이 제작된 지 이미 수십 년이 흘렀고 계속된 고장으로 2018년 마침내 가동이 중단되었다. 발열이 많이 나는 브라운관을 수십 년을 틀었으니 고장 날 만도 하다. 그 후 3년에 걸쳐 브라운관 모니터 일부를 LCD 모니터로 대체하는 등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재가동하게 된 것이다.
백남준이 <다다익선>을 만들게 되기까지
<다다익선>은 원래 10년간 전시하기로 하고 설치된 작품이다. 그런데 그 전시가 34년간 이어져 왔고 이제 영구 전시를 논하는 상황까지 온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백남준이 세계적인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흔히 '세계적'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백남준 선생님이야말로 진정 '세계적'인 아티스트라는 말이 어울리는 분이다. 그는 젊은 시절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인 플럭서스에서도 대표적인 아티스트였고, 그 이후에 비디오 아트라는 미술 장르를 직접 만들어 스스로 대표 작가가 된다.
플럭서스(Fluxus)는 1960년대에 형성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으로, 형태를 갖춘 미술을 부정하고 공연과 퍼포먼스를 중요시하였다. 유럽·미국·아시아 등지로 파급되어 전세계적인 미술사조로 자리 잡았는데 백남준은 여기서 가장 대표적인 작가였고, 가장 인기 있는 작가였다. 이 경력만으로도 이미 백남준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라고 할 만하다.
플럭서스가 시대적 사명을 다하고 서서히 사그라지고, 플럭서스 작가들도 뿔뿔이 흩어졌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플럭서스 작가들이 그후 아티스트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플럭서스는 어떤 고정된 형태의 작품을 부정하기 때문에, 고정된 형태의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미술가로서는 상당한 핸디캡이었다.
1970년대는 TV가 대중화되고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가는 시기였지만, 아무도 TV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 백남준은 그것에 개념을 부여하고, 기술을 연구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여 비디오 아트라는 예술 장르를 만들어 낸다. 진정 세계적인 사건이다.
선구자는 외로운 법. 백남준도 초기에는 사람들의 이해 부족과 경제적 곤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서서히 비디오 아트의 지평을 넓혀나갔다. 1984년 1월 1일 인공위성을 통해 전세계에 생방송된 텔레비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백남준의 연인이자 아내, 그리고 예술적 동지였던 구보타 시게코 여사가 쓴 <나의 사랑, 백남준>을 보면 뉴욕에서 독일로 옮겨간 1977년부터 1987년까지가 백남준의 예술세계가 활짝 꽃을 피우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시대이다. 동시에 그 부부에게도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고 한다. 그때 만든 작품이 <다다익선>이다.
다다익선을 그리러 과천으로
새롭게 불켜진 <다다익선>을 그리러 과천을 향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경복궁에서 개관하여 1973년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하였다가 과천에 건물을 신축해 이전했다. 약 만 평 정도의 규모로 김태수 건축가가 설계하였는데 1984년에 착공하여 1986년에 완공하였다.
먼저 제6 전시실에 올라가서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을 보았는데, 이 전시는 <다다익선>의 제작 배경과 그 후 작품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아카이브, 그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해석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알차고 흥미로운 전시다. 이 전시는 2023년 2월 26일까지 이어진다.
<다다익선>은 비디오 아트를 이용한 조형물인데 이렇게 큰 조형물은 넓은 공간에 설치해서 멀리서 보거나 가까이서 보면서 그 차이와 변화를 감상하게 된다. 다다익선은 여건상 멀리서 보는 조망을 나선형 복도로 대체해서 아래에서 보는 것과 위에서 보는 것을 비교하면서 보게 된다.
백남준 선생님은 복도를 죽 타고 올라가서 위에서 보는 조망을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로 생각하신 것 같다. 왜냐하면 탑의 중간에 있는 모니터를 다 눕혀 놔서 위에서 봐야 온전히 작품의 화려한 자태를 볼 수 있도록 해 놓았기 때문이다. 복도 끝은 상당히 높고 게다가 난간이 낮게 되어있어 살짝 현기증이 난다.
<다다익선> 위로 원뿔형으로 된 건물 천정에 글자가 있어서, 작품과 관련된 글인가 하고 자세히 봤더니 이렇게 되어 있다. "천구백팔십오년십일월십오일 · 우리 미술 발전에 길이 빛날 전당을 여기에 세우매 오늘 좋은 날을 가리어 대들보를 올리니 영원토록 발전하여라." 건물의 상량문이다.
이 때는 1980년대다. 가난한 나라에서 최초의 현대미술관을 지었던 사람들의 감격과 긍지가 엿보여서 괜스레 코끝이 찡했다. 행여 이 건물을 리노베이션 하더라도 촌스럽다는 이유로 이 글을 없애버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 현장 여건상 서서 그릴수 밖에 없었는데, 수많은 모니터를 비례를 맞춰서 그리기가 어려웠다. ⓒ 오창환
불꺼진 <다다익선>은 마치 생명이 없는 동물 같지만, 불을 켜는 순간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살아난다.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불이 켜진 2시간 동안 서서 그림을 그렸다. 나는 보통 A4 사이즈에 그림을 그리는데 이번에는 수많은 모니터가 A4에는 안 들어갈 것 같아서 A3 사이즈를 가져왔는데 빽빽이 들어찬 모니터의 비례를 맞춰서 그리기가 어려웠다.
오후 4시가 되자 모니터의 불이 꺼지면서 2시간에 걸친 비디오 쇼가 끝났고, 내 그림도 완성되었다. 집에 오는 길에 갤러리 아트숍에서 2000원을 주고 <다다익선> 스티커를 샀다. 그리고 백남준 선생님에 대한 나의 오마주라고 생각하면서 그 스티커를 내 그림 속에 조심스럽게 잘라 붙였다.
▲ <다다익선> 현장에서 실제로 보면 이렇게 탑 전체를 볼 수는 없는데 카메라의 파노라마 기능으로 탑 전체를 찍을 수 있었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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