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무직'인데
“6개월 쉬는 것조차 힘들어해요.”
“정말 많은 시간이 생겼는데,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빠가 ‘무직’인데 하면서, 자신감을 많이 잃었더라구요.”
배우자에게 퇴직자는 어떤 모습일까? 퇴직에 관한 연구모임을 하면서 가장 큰 기대를 한 인터뷰 그룹은 퇴직자의 배우자들이었다. 인터뷰는 모두 네 그룹(퇴직 예정자, 퇴직자, 청년 재직자, 퇴직자 배우자)으로 나누었다. 그룹당 4명에서 5명이 참석하였다.
그룹별로 각각의 특징적인 부분이 있었다. 퇴직 예정자 인터뷰에서는 퇴직에 대한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이미 퇴직한 분들은 새로운 인생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청년 재직자 인터뷰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했으며 그들이 제시하는 대안을 귀담아들었다.
나는 퇴직 연구를 시작하면서 보고서와 논문, 언론에서 관련된 기사를 검색했다. 특이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퇴직자나 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나 인터뷰는 많았지만, 배우자나 가족에게 관심을 가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나는 퇴직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의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사자가 보지 못하는 모습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장소는 시내의 카페로 정했다. 퇴직자 배우자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커피 한잔하면서 가볍게 퇴직 이야기를 해 봅시다, 하고 인터뷰이를 모셨다. 퇴직한 배우자의 이야기를 꺼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랑보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서로 서먹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대화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퇴직 전과 후, 배우자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물었다. 시간이 남아도는 것은 분명한데 그 시간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귀에 들어왔다. 좋아하는 운동에 온종일 매달리거나 밤늦게까지 유튜브에 빠져 신체리듬이 깨져 버렸다고 한다. 미리 퇴직을 준비하지 못했으니 그럴 법하였다.
배우자의 자존감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배우자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직장생활만 한 퇴직자가 사업을 시작하고 새로운 일을 배우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덕분에 관리직으로 퇴직한 분에게 사회는 전쟁터와 같을 것이다. 주민센터와 은행 창구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부탁해야 한다. 이것도 몰라요! 무시받기도 한다. 대 놓고 싫은 표정을 내색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한풀 꺾일 수밖에 없다.
집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시세끼, 집에서 밥을 먹으려니 배우자의 눈치가 보인다. 아들이 자기소개서에 아빠 직업을 ‘무직’으로 적는 모습을 보고 자존감은 또 한 번 꼬리를 내렸다. 가족 식사를 하고 나서 선뜻 카드를 빼낼 수 없다. 골프를 치던 퇴직자는 좀 더 비용이 적게 드는 파크 골프로 바꾸었다고 한다.
집안에서 퇴직한 배우자의 자존감을 살리는 일은 가족이 할 일이다.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인정해 주는 것부터 시작하자. 가족의 지지를 바탕으로 집안에서 세워진 자존감은 집 밖에서도 당당해질 것이다.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참석자들은 배우자가 퇴직 후에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직장 다닐 때는 동료와 직원 간 관계에 무심했던 배우자가 퇴직 후에는 관계를 잘 보살피는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젊었을 때부터 계속되던 모임이 질병이나 죽음으로 회원 수가 줄어들었다. 관계 단절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더욱 소중하게 모임을 가꾸어 가는 분도 있었다.
‘장수하는 사람들의 비결은 바로 소식과 작은 모임이에요.’ 참석자 중 한 분이 단호하게 말했다. 관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행복은 관계에서 나온다, 는 말을 다시 한번 새겼다.
퇴직자 배우자들은 원하는 시책을 명확하게 요구했다. 하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취미와 자격증뿐만 아니라 증가하고 있는 ‘노노케어(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형태)’를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분은 ‘아이 돌보는 교육’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자기 아이를 양가 부모님이 돌봐주었기 때문에 육아에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 자녀들이 손자녀를 맡기면 난감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참석자들은 손자녀 돌봄 수당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아이를 키우는 책임은 크지만, 금전적 보상은 기대하기 어려워 손자녀 돌봄을 자처하는 조부모가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퇴직자의 처지에서는 혈육을 돌보는 기쁨이 있을 수 있지만, 오랫동안 직장에 헌신하고 다시 손자녀 돌봄에 시간을 쏟는 것이 억울할 수 있다. 만약 정부에서 수당을 지급하게 되면 퇴직자에게 생활비에 보탬이 될 것이다. 부모는 육아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며, 아이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받을 수 있다.
대화 중에 내게 감동을 주는 참석자가 있었다. 자신은 아직 직장에 다니며 일하는데 배우자는 노는 게 꼴 보기 싫어서 집안일을 많이 시킨다고 했다. 그러던 중 퇴직자가 소화기관에 염증이 있어 불편을 느끼는 것을 발견했다. 배우자는 밥이라도 따뜻하게 먹여야겠다고 생각해서 웬만하면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챙겨준다고 했다. 삼식이에 대한 사랑이 전해졌다.
참석자들의 이야기 속에 퇴직한 배우자를 바라보는 안타까움과 사랑을 함께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