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발에 오줌누기'식 교육은 그만
청년 직장인 다섯 명을 초청하여 퇴직에 관한 생각을 들었다. 그들에게 아직 먼일이니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 이미 진행했던 퇴직자와 퇴직예정자의 인터뷰와는 달리 그들은 질문지를 미리 읽어보고 카페 미팅룸에 등장했다. 나는 ‘퇴직’이라는 문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퇴직의 의미에 대해서 청년 직장인은 대체로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또 다른 시작’, ‘휴식과 즐거움의 시간’,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한편, 재정적으로 어려워질 것이라는 염려와 함께 ‘조직에 속했을 때 가진 안정감’을 잃게 되면 정체성의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청년도 있었다.
건강 문제에서는 ‘암’에 대한 걱정이 많았으며, 뇌혈관, 심혈관, 허리 질환에 대해서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참석자 몇 명은 치매 예방을 위해 책을 읽겠다, 건강을 위해 생활 습관을 바꿔 보겠다, 고 다짐했다. 젊은 층에서도 중대 질환이 발생하는 사례가 주위에서 끊이지 않으니 경각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재정 분야에서는 청년 재직자의 적극성을 알아챌 수 있었다. 주거비, 자녀 교육비, 의료비, 노후 생활비를 걱정하면서 재테크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부동산에 관하여 공부하고 있다거나 실제로 투자를 하는 직원도 있었다. 막연하게 연금에 기대거나 퇴직 후 일자리를 찾겠다는 지금의 50대나 60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어느 참석자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휴직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부부가 집에 머무는 동안 많이 싸웠다고 했다. 지금은 퇴직하고 나서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나 운동을 찾아보고 있다고 한다. 퇴직자의 5대 리스크 중 하나가 ‘황혼이혼’이다. 잘 돌보지 않으면 쉽게 깨질 수 있다.
(5대 리스크: 금융사기, 창업 실패, 중대 질병, 성인 자녀, 황혼이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청년 재직자들에게 가장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듣게 된 질문이다. 답은 크게 두 가지다. 건강과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하는 일과 장기적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달라는 것이다.
먼저, 청년 참석자는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 공간 조성을 주문했다. 지금 노년 세대에게는 생활체육 종목으로는 낯선 ‘농구, 야구,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노인 세대들도 부끄럼 없이 버스킹 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했던 퇴직자 한 분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분은 직장을 그만둔 후, 아파트 부녀회원을 따라 춤을 배웠다고 했다. 서면역을 지나면서 버스킹을 하는 무리를 보고 자신도 그곳에서 춤을 한번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단다.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자신의 끼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청년 재직자는, 지금의 퇴직 교육은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면서, 퇴직 후 길게는 40년 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현재 교육 시스템은 터무니없이 짧다. 후반기 삶을 준비하기 위해 적어도 5년 전부터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자기 계발 휴직도 적극적으로 시행할 것을 주문했다.
20년 이상 직장생활을 남겨 둔 청년 재직자에게 퇴직을 묻는 것이 성급한 일이라고 핀잔을 주는 사람이 있겠다. 녹취록을 두세 번 읽고 난 후, 답변을 정리하면서 ‘나는 퇴직을 묻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청년에게 그들의 미래를 물었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