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퍼포먼스 마케팅이라는 일을, 퍼포먼스 마케터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다. 요즘에는 전문성에 따라 마케터를 세분화한 이름들이 쉽게 보인다. 콘텐츠 마케터, 브랜드 마케터, 그로스 마케터, 퍼포먼스 마케터, CRM 마케터.. 종류는 또 뭐가 이렇게 많은지. 전문성에 따른 마케터의 역할 구분이 명확한 회사도 있겠지만, 회사에 따라, 개인에 따라 각 직무가 하는 일을 규정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다. 시장에도 이렇게 여러 이름의 마케터들이 튀어나와 혼란스럽기도 하고, 요즘 인하우스 마케터로 일하면서 나를 퍼포먼스 마케터라는 이름에 가둬놓는 건 좀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내 안에 폭발하는 생각들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처음부터 마케터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던 건 아니다. 선택의 순간에서 조금 더 관심이 갔던 일들, 조금 더 재밌었던 일들을 선택해서 하다 보니 퍼포먼스 마케터라는 이름을 가장 오래 쓰며 일하게 됐고, 지금도 그 포지션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경험들은 어떤 게 있었나? 현재에 매몰되어 살다 보니 과거의 기억이 흐릿하다. 그래서 꺼내본다.
나는 3년 동안 에이전시에서 일했다. 처음 1년은 그냥 내가 직접 카카오 광고를, 네이버 구좌 부킹을, 페이스북 광고를, 유튜브 광고를 운영할 수 있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매체 운영 스킬을 배우고 경험해보는 데에만 정신이 팔렸던 것 같다. 에이전시에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브랜드의 온라인 광고를 직접 운영하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했고, 힘들었지만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났다. (경험성애자라서 경험하는 거 엄청 좋아함)
1년 동안 에이전시에서 빡세게 굴려진(?) 덕분에 기본적인 온라인 광고 매체에 대한 이해, 기본 스킬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배우고 나니 그제야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뭘까?' 하는 질문이 내 안에 샘솟았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을 미디어 플래너라고도 할 수도 있고, AE라고도 부를 수 있었고, 퍼포먼스 마케터로도 부를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처럼 하나의 답을 내리기는 어려웠을 거고.
2년 차에는 브랜드 런칭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에이전시 퍼포먼스 마케터가 할 수 있는 일들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나는 BTL 광고를 전문적으로 했지만, 이 캠페인을 통해 ATL 광고와 협업하며 ATL 광고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BTL 광고를 진행하면서도 브랜딩과 퍼포먼스 한 곳에 매몰되지 않고 두 영역을 융합한 통합 마케팅의 관점을 이해하게 됐다. 콘텐츠 마케팅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고. 내 시야를 넓혀준, 마케팅이란 것에 어렴풋이 감을 잡게 해 준 캠페인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 런칭부터 1년 넘게 이 브랜드를 담당하고, 브랜드의 크고 작은 이슈를 함께 하면서 정말 해볼 건 다 해봤다는 생각을 했었다.
유일하게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앱 마케팅 쪽이었는데, 3년 차에 게임 앱 광고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할 기회가 생겼다. 게임 앱 마케팅이라는 영역은 완전 다른, 배워야 할 게 넘쳐나는 또 다른 새로운 영역이었다. 앱 광고 상품들을 이해하고, 트래킹 툴을 이해하고, 더 많은 데이터를 이해하고 활용해야 했다. 거기다 IOS14 업데이트까지 겹치면서 머리 터지는 줄 알았다... :) 앱 쪽은 웹보다도 기술적으로 더 빠르게 변화하고, 외부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인들도 많아서 만만한 영역이 아니었다. 이때 공부도 많이 했다. 쉽지 않았지만 1년 동안 여러 개의 게임 앱 런칭, 퍼포먼스 캠페인을 하면서 아 그래도 '앱 마케팅해 봤다!'라는 말은 할 수 있을 정도는 된 것 같다.
써놓고 보니 에이전시의 생활이 이런저런 경험하기는 참 좋은데 기억 미화가 좀 된 것 같기도 하네. 그래도 마음 맞는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폭풍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상 기억 미화 전문가였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왔던 것처럼, 또 새로운 경험을 쌓을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조금 다른 길을 가보고 싶어졌다. 여러 고민들을 하다가 브랜드에 조금 더, 그리고 고객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다. 광고 말고도 마케팅으로 더 큰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인하우스 퍼포먼스 마케터로 이직을 했다. 인하우스 마케터의 생활은 다음에 기회되면 또 적어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