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사고방식

특히 예술가에게는 그림 잘 그리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필수적인 능력이다

by Rinnie

초등학교 2학년쯤인가, 집에서 가까운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배웠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에는, 우선 깊이가 낮은 어린이 풀에서 물장구치는 방법을 배우고, 숨 쉬는 방법을 배우고, 어느 정도 물에 뜨는 방법을 배운 뒤에야 자연스럽게 깊은 어른 풀로 넘어가서 제대로 된 영법을 배울 수 있었다.


어른 풀은 대부분 고작 1.4m 정도려나. 그렇더라도 어린이들에게는 발도 닿지 않는 깊고 무서운 곳이다. 수영을 하지 않고 서서 버티려면 벽이나 레인을 붙잡고 서있어야만 한다. 그때 수영 선생님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발이 닿지 않는 물속에서 위험해지지 않으려면 딱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첫 번째는 온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물에 떠오르는 것,
두 번째는 차라리 온 힘을 다해 내려가서 바닥을 딛고 힘차게 솟아오르는 것.


나는 그 선생님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이 말은 내 마음속에 아주 오래 남아 있었다. 아마 다른 이유는 아니고, 두 번째 방법을 실험해 본답시고 내 수영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친구들과 물속에서 솟아오르며 장난치던 기분 좋은 기억 때문일 것이다. 천천히 가라앉았다가 빠르게 돌진하듯 솟아오르는 기분이 꽤 짜릿했거든.


그러고 한참 뒤 고등학교 1학년, 그 당시는 코로나19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온 세상이 셧다운 된 상태였다. 나는 학교 가는 것을 즐기는... 그렇게까지 좋은 학생은 아니었고 외향형도 아니었지만 그와 상관없이 우울감이 극심했다. 사실 중학생 때부터 세상에 대한 답답함을 자주 느꼈고, 동시에 나에 대한 답답함도 크게 느끼곤 했다. 어쩌면 그저 전형적인 사춘기였을지도...


그 당시에 나 스스로를 회복시키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생각이 휘몰아치고 스스로 상처를 헤집어보기도 하는 시간을 보냈다. (나 스스로도 몰랐던 자기애가 그때도 꽤 있었나 보다. 나를 그렇게까지 회복시키고 싶어 했던 마음을 보면.) 그렇게 점점 나아가고 있던 어느 날에는 문득 초등학생 때 수영장에서 수영을 처음 배울 때 들었던 깊은 수영장에서의 생존법칙에 대한 생각이 마구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삶의 원칙과 이 수영장 생존법칙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됐다. 수영을 배울 때에도 쉽게 쉽게 물에 뜨는, 일명 태생부터 수영 재능충이 있는 반면에, 어릴 적부터 이상하리만큼 물에 대한 공포가 있어 자꾸만 가라앉는 사람이 있다. (사실 공포까지는 없어도 처음엔 가라앉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시를 들자면 태어나길 둔감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걱정이 없거나, 혹은 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어서 딱히 걱정이 없는 아이(물론 그 사람들도 각자의 걱정이 있겠지만 적당히 비유를 하자면..), 이들은 처음 물에 들어가도 쉽게 떠오르는 아이들이다. 살아가는 데에 이들처럼 적당히 둔감하거나 유연하게 잘 대처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지. 진심으로 축복 같은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물에 공포가 있는 사람이 수영 재능충을 질투하거나 시기할 필요도 없다. 이건 어차피 내 선택의 영역이 아니고, 물에 뜨는 건 배우면 그만인 거다. (애초에 물에 뜨는 것 그 자체는 누구든 금방 배울 수 있고 가장 초반에 배우는 기초단계라서 사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다.)


태생부터 예민하고 환경이 저를 도와주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물에만 들어갔다 하면 자꾸만 긴장을 해서 몸에 힘을 주고 가라앉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력 때문에 아예 바닥에 제대로 닿지도 못한다. 어중간한 곳에서 발버둥만 친다면 익사하기 딱이다. 해결되는 건 없고 그저 고통스러울 뿐이다. 차라리 생각을 바꿔서, 물속 깊이 내려간 후 발로 바닥을 밟고 힘차게 솟아올라보는 방법도 있다. 내가 왜 고통을 느끼는지, 왜 우울한지, 왜 슬픈지, 왜 힘든지...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억지로라도 미친 듯이 분석하고 자꾸만 본질을 찾아나가면 결국 어떠한 정점, 바닥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바닥을 만난 직후에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솟아오른다. 단순히 빠르게 솟아오르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짜릿한 기분이 든다!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폭발하는 것이다!


사실 수영장에서는 물에 뜨는 것보다 바닥까지 닿는 일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이건 그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부력 때문에 바닥에 닿는 일은 오히려 영법을 어느 정도 익혀야만 시도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꽤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물에 쉽게 뜨는 사람들은 물에 뜨는 게 왜 어려운 것인지도 잘 모르고 그게 재능이라는 것조차 모를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바닥을 찍고 솟아올라본 사람들은 나중에 수영하는 방법도 쉽게 배울 수 있다. 물의 저항을 이기고 움직여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에 부유하기만 한다면 이상한 데로 흘러가기 쉽지만, 바닥까지 가보는 일은 내가 핸들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


바닥까지 내려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내 흉터를 파내서 내 눈으로 관찰해야 하는 일이라 매우 고통스럽다. 하지만 흉터에 새 살이 돋도록 하는 방법은 오로지 다시 상처를 내서 피부 속에 있는 속살이 자연스럽게 올라올 수 있도록 하는 것밖엔 없다.


물속 중간 지점까지 빠져버렸던 것은 자의이건 타의이건 무의식이건, 무언가 부정적 상황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라면, 물속 중간 지점부터 바닥까지 내려가보는 일은 사실 아예 다른 구간(phase)이긴 하다. 계속 들고 있는 수영 비유로는 부력 때문에 더 이상 내려가기 어려운 것도 맞지만, 내가 말하는 바닥까지 가는 길이란 아주 강한 자의로 나의 속마음을 직면하고 파헤치는 것이다. 부력, 물의 저항을 뚫고 헤쳐나가는 것이 고통스러울지언정, 이것만큼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 없다.


어차피 계속 가라앉고 있는 거,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발버둥 치다가 위험에 빠지지 말고 차라리 바닥을 찍어보는 것이 훨씬 낫다. 바닥 한 번만 치고 올라오면 무조건 고속성장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꾸역꾸역 해내는 성장이 아니라 미친 듯이 쾌감, 만족이 넘치는 행복한 고속성장! 아주 좋은 응원을 건네자면, 물의 깊이가 어떤지도 모르고 유유자적하게 떠있는 사람들과 달리, 당신은 이미 수영장 깊이의 반쯤은 내려와 있다는 것이다. 그럼 조금만 더 노력하면, 빠르게 솟아올라 그들을 제치는 건 일도 아니다. 이 원리는 장담하건대, 삶에 있어서 불변의 법칙이다. 만성우울 같은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고민하던 인간관계, 프로젝트의 방향성 등 삶 모든 곳에서 활용 가능하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법칙한테 이름이 있더라고. 바로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한다.

내 경험상 깨달음의 오르막은 저 그래프보다 훨씬 가팔랐다. 이 더닝 크루거 효과를 계속해서 경험하다 보면 결국 우매함의 봉우리는 조금씩 낮아지고, 깨달음의 오르막은 거의 직각이라고 느낄 정도로 한 번에 머릿속에 꽂힐 때가 많다. (이 그래프가 진실이 아니라고 하는 말들도 많이 봤지만... 일단 나에게는 굉장히 도움이 되는 그래프였다.)


나는 이 원리를 고등학교 1학년 때 스스로 깨달았다. 그러고는 2학년 때쯤 거의 6~7년 만에 다시 수영장을 방문했다. 수영의 매력은 참 여러 가지가 있어서 원래부터 물에서 노는 걸 좋아했지만, 이 경험 이후로는 수영을 완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다시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는 오랜만에 수영을 하는 게 체력적으로도 수영기술적으로도 꽤 힘든 일이었어서 두 바퀴도 힘들었다. 하지만 하다 보니 점점 늘고 욕심이 생겨서 지금은 무려 40바퀴(2km!)까지도 수영할 수 있다. (이건 그냥 스스로 뿌듯해서 하는 자랑ㅋ)




이쯤 되면 수영장이고 뭐고, 더닝 크루거이고 뭐고. 내가 내 흉터를 어떻게 파내야 할지, 내 결핍과 슬픔과 아픔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하고 무서울 것 같다. 수영장 바닥을 향해 깊이 내려가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면서, 이걸 초보자인 나에게 어떻게 하라는 건지 따지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나는 약 6년간, 아무도 내게 이걸 알려주지 않아서 나 혼자 매일 같이 연구해 온 이 방법을 여러분에게 소개할 것이다. 딱히 어렵지도 않고 누구나 초등학생 때부터 해봤을 만한 일이다. 그게 자의가 아닌 타의여서 문제였겠지만. 난 지금부터 수영장 바닥으로 쉽게 내려갈 수 있도록 스테인리스로 된 아주 튼튼한 사다리를 여러분의 수영장에 설치해주고자 한다.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던 어린 시절 사다리를 붙잡고 바닥에 쉽게 내려가던 기억이 있어서 쓰는 표현이다.)


모든 것의 해답은 "기록"이다.


기록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도 자주 다루겠지만, 이 글에서는 간단하게 왜 기록을 해야만 하는지 다뤄보도록 하겠다. 기록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고 유형이 있지만 그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일단 크게 3단계 진화 시스템이 있다.


1단계: 내가 까먹더라도 적어두기만 하면 찾아볼 수 있는 것
2단계: 나 자신과 내 생각을 문자로 객관화하는 것
3단계: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최고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하는 최고의 촉진제


보통의 사람들은 기록을 1단계 정도로만 이해한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기록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2단계, 문자가 많은 것을 객관화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3단계는 많은 사람들이 기록이 이런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지점은, 2단계다. 2단계를 적당히 경험하는 정도로만 하면 안 되고, 아주 끝까지 해내야 한다.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이나 예쁜 미사여구는 갖다 치우고, 아주 솔직하고 날 것으로. 머릿속에서 먼지처럼 떠다니기만 하고 실체는 알 수 없었던, 깊고 깊은 생각들을, 더불어 단순하고 쓸데없는 생각들까지 무엇이 되어도 좋으니 최대한 많이 쌓아야 한다. 2단계에서 이 과정을 거쳐야만 수영장의 바닥을 찍는 것부터 솟아오르는 모든 것을 겪을 수 있다. 이 단계를 쉽게 실천하기 위해 써볼 수 있는 방법은 추후에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3단계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어보았을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덧붙여주도록 하겠다. 인간의 뇌는 연관성을 가장 큰 무기로 사용한다. 우리는 제 눈으로 지켜보고 귀로 듣고 오감으로 느끼는 세상 모든 것들을 통해 생각이 꼬리를 물고 꼬리를 문다. 친구랑 수다 떨 때 1분만 지나도 주제가 확 달라져있는 이유도 같은 이유이다. 기록을 잘 이용하면, 이 연관성을 아주 폭발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진짜" 예술가들은 꼭 정신병이 있어야 한다는... 그런 막무가내의 비관적인 스테레오 타입이 즐비하다. 예술가를 포함하여 어떤 직업이든 "탁월한 창의적 사고"를 갖기 위해서는 1단계와 2단계를 통해 나의 힘든 마음을 먼저 극복 및 해결하고 3단계에 돌입해야 한다. 3단계에 돌입하는 순간, 나름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시도 때도 없이 미친 듯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책상 앞에 3시간씩 앉아 머리카락을 쥐어뜯은 후에야 겨우 나온, 정말 별 것도 아닌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 하염없이 영감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축내지 않아도 된다. 3단계를 겪게 된다면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온 세상이 아이디어이고 결국 "작업"마저 매우 즐거운 행위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겠지만 우선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는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2단계를 무리 없이 잘 진행하기 위한 "가장 쉬운" 기록 방법을 소개할 것이다. 그 기록 방법을 잘 습관화한다면, 3단계로 돌파하기 위한 진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 과정은 단순히 기록 방법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기록을 통해서 나를 나 스스로 구원하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한다. 기록은 정말 거짓말 한 톨 없이 삶을 구원할 수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정말 최고의 기술이다.


깊은 수영장에 빠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이 방법은, 특히 동시대의 예술가에게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필수적인 능력이다.




사실 브런치 첫 글을 어떤 주제로 써야 할지 몇 주 동안 고민이 많았다. 이 수영장을 비유로 하는 이야기는 혼자 오래 간직하고만 있었는데, 작년에 한동안 힘들어하던 J에게 지나가듯 '너는 지금 더 가라앉아서 너를 일어설 수 있게 하는 발판을 찾고 있는 거야.'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던 적이 있다. 사실 위로의 목적이라기 보단... 실제로 내가 그런 경험을 해서 대충 그런 얘기를 한 거였다. 그래서 맥락이 많이 삭제된 상태...ㅋㅋ 이 친구에게는 흉터를 파내야 한다는 사실을 굳이 말하진 않았다. 어차피 잘 해낼 것이기도 하고. 그러고 며칠 뒤 유학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친구들의 편지를 읽는데, J가 내 그 한 마디에 너무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했길래... 그 편지를 읽으며 나도 한참을 울었다. (내 왼쪽에는 한국인 아저씨와 오른쪽에는 외국인 청년이 있었지만... 알 게 뭐야. 나는 지금 심란한 유학길인데...) 내가 무심결에 전해준 한 마디가 그런 울림으로 남았을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아주 소중한 이 이야기를 브런치 첫 글로 자세하게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J야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