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파동아트, 멈춤으로부터 비상

East West Design Lab. 양자파동예술가포럼

by Quantum 김남효

이 붉은 꽃잎 언덕에 다시 서 있구나

오늘도 너를 마주하고 있구나.

처음엔 네가 너무 밝아서 눈이 부셨다.

캔버스에 붉은 물감을 한 번 바르고 또 바를 때마다

네가 점점 더 뜨거워져서 숨이 막힐 뻔했다.

너는 타오르고, 나는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됐다.

파란 연꽃들이 네 품에 들어가길 기다렸다.


꽃잎 하나하나가 네 열기를 받아들이면서

서로를 껴안는 모양이 됐다.

너는 뜨겁고, 파랑은 차갑고,

그 사이에서 나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너, 하얀 새야.

너는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날아오를 수도 있는데

왜 자꾸 쳐다보느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붓끝이 네 목덜미를 스치자

네가 대답하는 것 같았다.

“아직은 내려다보고 싶어.

땅이 어떤 느낌인지,

물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더 천천히 알고 싶어.”


하얀 6호 캔버스를 앞에 두고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이 작은 사각형은 이제 곧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꿈틀대는 나만의 양자장이 될 것이다. 나는 붉은 아크릴 물감을 붓에 듬뿍 묻혀 화면 전체에 펴 바른다.


"너는 어디에서 온 에너지니?"

내가 묻자 캔버스의 붉은 빛이 일렁이며 답한다. 그것은 그저 색깔이 아니라, 세상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는 뜨거운 생명력의 파동이다. 나는 그 파동에 무게를 더하기 위해 아크릴과 복합미디엄을 섞어 층층이 쌓아 올린다. 매끈했던 평면은 어느새 거친 숨을 몰아쉬는 입체적인 '살'로 변해간다.


이전에 그렸던 붉은 도시와 숲속의 백마가 정적인 관찰자였다면, 오늘 이 화면 속의 존재들은 조금 더 자유롭기를 바란다. 나는 다시 붓을 들어 가장 순수한 흰색을 고른다. 무한한 확률로 중첩되어 있던 양자장의 바다에서, 나의 의지가 하나의 '입자'를 선택하는 순간이다.


화면 중앙에 하얀 새 한 마리를 그려 넣는다.

뒤이어 두 마리, 세 마리가 붉은 꽃의 군락 위로 비상한다.

"이제 너희는 파동이 아니라 실체란다."


내가 속삭이자 새들은 복합미디엄의 거친 질감을 타고 힘차게 날개짓한다. 아크릴 물감이 굳으며 만들어낸 불규칙한 요철은 새들의 비행이 남긴 에너지의 잔상이다. 검은 배경은 우주의 심연처럼 깊고, 그 속에서 붉은 꽃들은 저마다의 주파수로 공명하며 붉은 빛을 내뿜는다.



나는 이 그림과 대화하며 깨닫는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결국 우리 내면의 파동이 관찰이라는 행위를 통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푸른 별빛이 쏟아지던 밤의 기억과 기하학적인 우주의 질서가 이 작은 6호 캔버스 안에서 붉은 꽃과 하얀 새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작업을 마치고 붓을 내려놓는다. 캔버스 위에는 아크릴의 물성과 나의 영성이 중첩된 새로운 우주가 숨 쉬고 있다. 비상하는 흰 새들은 이제 나를 떠나 관객들의 마음속으로 날아가 새로운 파동을 일으킬 준비를 마쳤다. 이것은 나의 기록이자, 우주가 나의 손을 빌려 써 내려간 짧은 서사시이다.


오늘도 나의 내면은 양자파동으로 피어나며, 또 하나의 세계를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