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정치론_스피노자
신은 인간 실존을 다스리는가
그리스도교는 계시종교라고 일컬어진다. 가톨릭 신학으로 따진다면 예수 이래로 그 어떠한 새로운 계시도 공식적으로는 인정되고 있지 않지만, 예수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절대적인 구원의 계시로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타당하다. 비록 새로운 계시는 일어나지 않으나 인간과 신의 교감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교회의 지향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 혹은 계시인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복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따라 저마다의 영적인 깨달음이 왔다고 신자들은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경험을 두고 무신론자나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일반적으로 운과 같은 확률이거나 그저 미신일 뿐이라고 말한다. 예언과 같이 영적인 체험을 통해 자신의 깨달음을 얻거나 그로부터 운명적인 도움을 얻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계시는 무엇인가. 영적인 체험이란 무엇인가? 신은 인간의 실존을 다스리는가?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에서 예언의 확실성은 수학적인 확실성이 아니며 오히려 도덕적인 확실성이라고 이야기한다. 도덕적인 확실성이란 신은 인간을 때로는 시험하기 때문에 만일 어떤 예언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신의 시험에 넘어가서 전해야 할 예언과 다른 것을 전하게 된다면 그것은 신 앞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이므로 도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말그대로 '확실'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언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스피노자는 성령(ruagh)이라고도 불리는 상상력으로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성경에서 성령은 신의 정신으로 해석되는데 이는 인간의 일반적인 지식과는 달리 초월적이므로 예언자들에게 거룩한 영감을 줄 수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성령을 인간의 비범한 상상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비범할지라도 상상은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상이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사고가 요구되는데 이것의 재료가 표징(signum)이다. 표징에 대해서 스피노자는 예언자에 따라서 저마다 다르게 나타났으며 상상의 유형에 따라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렇게만 보면 스피노자 또한 예언을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를 뒤집어서 설명한다. 곧 신은 예언자의 역량에 따라 그 메세지를 부여했으며 예언자들은 사변적인 사유에는 무지했다. 하지만 신은 전지하므로 그가 예언자들에게 내리는 계시는 오직 그의 목적과 내용에 의해 유효한 것이다. 따라서 자연적인 것과 정신적인 인식, 즉 물질적, 이성적 사고를 그에 요구헤서는 안된다.
표징이니 상상력이니 하는 "원리"는, 계시의 작동방식은 그것의 확실성을 설명하지 않으며 확실성의 증명도 필요하지 않다. 인간이 예언을 만들어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예언 안에 숨겨진 성경의 이념에 자기 자신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계시는 실존과 믿음의 영역이다. 다만 인간은 그 목적과 내용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각자의 방향을 개척해나가야 한다. 신은 인간에게 문제를 주고 인간은 이를 해석하여 답을 낸다. 그러나 그 결론은 같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