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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우할배 Feb 19. 2022

처음 써 본 연애편지

돌아보면 언제나 부끄럽다 #6

제103 보충대의 3일은 군 생활 가운데 가장 널널한 기간이었다. 일조점호와 일석점호에서 머릿수 헤아리는 것 외의 모든 영내 생활이 자유로왔다. 자대 배치 후 힘든 생활을 고려한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움에 주머니까지 넉넉하니 금상첨화였다.    


3일째 되던 날, 연병장에는 지역 명칭이 쓰여진 팻말들이 세워졌다. 으스스하였다. 인제, 원통, 화천, 양구, 홍천 등의 이름이 기억에 남아 있다. 화장실에 쓰여 있던 말도 겁을 먹기에 충분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버스 타고 배 타고 또 걸어야 갈 수 있다고 기간병이 겁주던 '인제', '원통'만 아니길 빌었다. 점심 식사 후 발표가 났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홍천'이었다. 춘천에서 한 시간 좀 더 떨어진 곳에 있었다. 11사단이란다. 그곳 교육대에 또 3일간 다시 대기병 생활을 하며 자대 배치를 기다려야 한단다. 삼 세 판인가. 군대도 숫자 3을 좋아하나 보다.    


11사단 정문을 들어서며 연병장에서 훈련을 받는 병사들을 보니 안동 훈련소보다 강도가 훨씬 높아 보였다. 후반기 교육이란다. 저런 훈련을 또 받아야 하다니 에구~.        


때로는 예측과 관계없이 어떤 일이 갑자기 다가오기도 한다.


교육대 대기 첫날 일석점호 때였다. 내무반장이 점호 시간에 쓸데없는 농담을 하면서 여배우들의 인물을 평가했다.    


"여배우 중에는 누가 뭐래도 윤정희가 제일 예쁘지."

라는 말에


"윤정희보다는 문희가 훨씬 더 예쁩니다."    

라는 말이 생각지도 않게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내 반응이 잘못이라는 건 금방 깨달았다. 멍한 표정으로 한참 말이 없던 내무반장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했다.    


"넌 뭐냐....? 이새끼 빠졌네. 점호 끝나는 대로 따라 내려왓."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겠다. 문희가 더 예쁘든 윤정희가 덜 예쁘든 내 군대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별 희한한 일로 터지겠구나. 에그~    


점호가 끝나고 내무반장을 따라 교육대 본부로 내려갔다.


"야, 거기 앉아."


내무반에서와는 달리 목소리가 부드러웠지만 나는 겁을 먹고 있었다.


"너무 겁먹지 말어. 안 잡아먹어."    


뭐 이런 군인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보통 인간의 목소리였다.


"너, 사회에서 뭐하다 왔냐?"

"대학 졸업하고 왔습니다."

"그래...그럼 이것 좀 작성해 봐."    


그는 무슨 근무 일지 같은 것을 주면서 일을 시켰고, 그것이 끝나자 다시 물었다.    


"무슨 과 나왔냐?"

"국어과 졸업했습니다."

"음, 그래? 잘 됐네...그러면 내 부탁 좀 하자."

"예...?"    


하사가 이병에게 부탁이라니? 그는 어디에선가 주간지 한 권을 가져와서 내밀었는데 '선데이 서울'이었다.


"너, 내일부터 하루에 편지 3통씩만 써라. 그것이 너 임무다. 그러면, 여기 있는 3일간 모든 사역 면제다."    

'선데이 서울' 제일 뒤편에는 '펜팔란'이 있었는데, 그는 18~20세 사이의 여자 주소 6개에 밑줄을 그어 두었다


"밥 먹으러 갈 필요도 없다. 밥은 대기병이 타다 줄 것이다. 내일부터 니 자리는 매트리스 뒤다."    


그렇게 나는 2,3일 차 대기병 기간 동안 쌓아놓은 매트리스 뒤에서 배설을 위한 출입 외에는 바깥으로 나가지 않은 채 먹고 자고 편지만 썼다.     


연애편지뿐만 아니라 내 손으로 위문편지도 써 본 적이 없었다. 무슨 소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시를 인용하면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말을 누구에겐가 들은 적이 있었다.    


몇 개 알지 못하는 시를 그때 다 써먹은 거 같다. 처음 것은 김춘수의 '꽃'이었다. 워낙 머리를 쥐어짠 것이라 아직까지도 얼개가 기억이 난다.    


 < 우연히 '선데이 서울'을 뒤적거리다 운명처럼 시선을 끈 이름이 ○○씨이다. 망설임 끝에 펜을 들었다. 나는 11사단 본부에 근무하는 하사관이다. 글을 통해서나마 진정한 사귐이 이루어지길 원한다. 내가 ○○씨에게 의미를 부여한 것처럼 나도 당신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우리의 사귐이 꼭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ㅎㅎ 나에게는 힘든 작업이었다. 차라리 사역을 나가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보상이 있었다. 마지막 날 편지를 가져다줬을 때 그는 고급 정보를 알려줬다.    


"야, 이번에 너와 같이 온 대기병들은 모두 신병중대 창설에 투입된단다. 11사단 출신으로 관절염 안 걸린 사람 없다고 할 정도로 여기는 군 생활이 힘든 부대로 유명하다. 그런데 새로이 부대를 창설하면 기존부대보다 3배는 힘이 든다."


"내일 사단 본부에서 신병을 뽑으러 올 것이다. 그 때, 이력서를 쓰라고 하고 글씨로 사람을  뽑을 것이다. 최대한 정성 들여 쓰도록."    


마지막 날 저녁 무렵에 사단 정보처와 부관부에서 몇몇 병사들이 나왔다. 그들은 대기병들에게 종이 한 장씩 나눠 주고 인적사항, 학적 사항 등을 적게 하였다.    


내 경필 쓰기는 신통치 못하다. 그러나 내무반장에게 귀띔을 받은 터라 한 글자 한 글자 그림을 그리듯이 정성껏 썼다.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그리고 나는 사단 정보처에 남게 되었다. 약 200명 가운데 3명이 뽑히는데 그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 후기

사단 정보처에 근무하게 되면서 식당에서 가끔 그 내무반장과 마주쳤다. 그가 술을 사겠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내가 쓴 연애편지는 답장이 없었는 것 같다. 나처럼 메마른 사람의 편지가 상대를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 앞에서도 얘기했습니다만, 은혜를 쉽게 잊어버린다는 건 옳은 말인 듯합니다. 내 군대생활에 엄청난 행운을 이끌어 줬던 그 고마운 내무반장에게 감사의 인사도 못했고, 그의 이름조차 잊어버렸습니다.    


내가 군 생활을 할 때는 많이 완화되었다고 했습니다. 전신이 맹호부대였던 11사단은 훈련이 빡세기로 유명했답니다. 오죽하면 헌병들이 11사단 마크를 단 휴가 병사들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을까요?    


전언으로 듣기에 신병 중대 창설에 투입되었던 그 대기병들의 고생은 엄청났던 모양입니다. 그 교육대 내무반장은 나를 그 고생에서 꺼내 준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펜팔에 성공했더라면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었을 텐데 재주가 모자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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